절차탁마 NY

절차탁마 NY 에세이 후기입니다.

작성자
조율
작성일
2021-01-02 14:14
조회
349
앞서 희진샘께서 전체적인 에세이 후기를 써주셨기에, 저는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니체와 철학 공부는 올해가 처음이지만, 저는 몇년 전부터 불교와 인문학 공부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 다녔습니다.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부의 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공부의 장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순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저도 그 틈에 껴서 고민과 씨름하는 시간이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공부는 게을리 했지만, 몇년 동안 책가방 들고 왔다갔다 하며 공부했다는 기억은 남아 있어서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규문에서 니체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처음 왔을 때도, 스스로를 '공부 좀 하며 살았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첫학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첫번째 에세이를 쓰면서 이런 착각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니체의 텍스트와 채운선생님의 강의를 하나도 소화하지 못하고 써내려간 에세이에서 지금껏 공부를 대하던 저의 습관이 얼마나 수박 겉핥기식이었는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날 에세이를 발표하고 집에 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 혼이 난 아이처럼 속상해서 운 것도 아니고, 결과를 인정받지 못해 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껏 착각속에 살았던 제가 창피해서 혼자 몰래 울었습니다. 이 때 더 뼈저리게 깨닫고 정신차렸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착각과 무지로 인한 시행착오는 1년 내내 지속됐습니다. 

1학기 에세이가 끝나고 저는 그 동안 갖고 있던 생각, 공부를 만만하게 여기는 태도를 조금은 버릴 수 있었습니다. 니체가 피로 써내려간 글들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비우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머리를 비워서였을까요? 도무지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세미나 시간에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고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씩 더듬더듬 눈을 뜨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좀 이해한 것 같아서 재미를 붙여서 에세이를 쓰면 여지없이 깨지기 일쑤였습니다.

어려운 니체를 읽고 에세이를 써가면 번번이 잘못 인용했다는 도반들의 코멘트를 받았고, 저는 조금 억울했습니다. 채운 선생님의 첫 강의에서 각자가 니체의 텍스트를 멋지게 해석해보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내 나름의 해석을 했는데, 왜 틀렸다고 하시지?'  틀렸다는 말에 달리 반박할 내용도 근거도 없어, 토론을 더 이어가거나 따져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억울하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 결국 이대로 끝나면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아 마지막날 에세이 발표 때 이에 대해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생님, 자기만의 해석을 하라고 하셨는데, 왜 틀렸다고 하시는지요?"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하라는 말은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 모였다기 보다, 니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넘어가려고 모인 것이다. 우리는 평생 쌓아온 견고한 상식과 견해가 있기 때문에 뭘 읽어도 자기 방식으로 돌아간다. 니체를 힘들게 읽어서 겨우 50년간 형성해 온 견해 하나를 다르게 보는 게 성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렇듯 공부는 나의 생각을 뒤흔들고 다르게 보는 관점을 배우는 것인데, 읽고 싶은대로 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선생님 말씀대로 저는 지금껏 견고하게 쌓아온 상식과 견해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맞다는 태도로 살았지만 자유롭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고 매번 같은 지점에서 문제를 똑같이 겪었습니다. 니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르게 보기 위해 모였다면, 다르게 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선생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의 상식과 싸우는 것이다. 상식은 어느 시대나 비슷하다. 철학자들의 사유는 상식을 넘어가는 지점이 각자 다른데, 이것이 철학에서 개념이 중요한 이유다. 니체를 배운다면 니체가 스스로 세운 개념을 이해하고, 그 개념으로 무엇과 싸우려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처한 맥락에서 니체의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니체의 개념만을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니체와 자기 시대와 싸운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특히 니체가 살았던 시대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너무 가깝게 닮았으며, 니체가 자기 시대와 싸우려고 했던 것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서 넘어가지 못하는 것들이다. " 

자기만의 철학, 자기만의 해석은 니체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의 삶에서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것일 때 가능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니체의 텍스트를 가져와서 다르게 해석해보는 데 이용하라는 말씀을, 니체의 텍스트를 마음대로 이해해보라는 것으로 오해하며 공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견해를 갖기 보다는 제가 갖고 있는 상식과 견해가 더욱 견고해지는 데 니체를 이용했고, 결국 니체는 자기 합리화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면 나의 상식을 다르게 보려 하기 보다는 그들을 가치 판단하려 하고, 니체의 텍스트를 무기로 가져와 사용하면서 말싸움에 능숙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당초 공부의 목표였던 '고립에서 벗어나기'는 점점 멀어지고, 고립을 자초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도 철학공부를 그만하길 바라고, 내년에는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니 제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의 태도에 대해서도 한번 더 말씀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소화되지 않으면 그게 선이 되어버린다. 그걸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건 공부가 설익어서 그렇다. 그건 불교든 다른 공부든 마찬가지다. 누구를 평가하려고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낯설게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근기에 따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금방 되기도 한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공부는 성과가 없다. 지루하고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공부하는 자기 자신을 믿어야지, 공부하는 텍스트를 믿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필요로 하는가, 지금의 사유하는 방식으로는 자유롭지도 영혼의 평화를 얻지도 못하기 문이다."

어떤 공부든 어떤 철학이든 궁극적인 목표는 더 자유롭기 위해, 영혼의 평화를 얻지도 못하기 때문에 한다는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1년 동안 저는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을까요? 얼마나 더 영혼의 평화를 얻었을까요?

네번의 에세이를 발표하고 저는 먼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먼길을 돌아 걸으며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솔직함, 자유, 독립 등 제가 믿어 왔던 가치에 대해 의심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안에 의존하고 싶은 욕망, 관심받고 싶은 욕망이 있었음을 알고 독립과 의존, 자유와 인정욕구 등 상반된 욕망을 숨기기 위해가식을 키워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요즘은 영혼의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없을 때 혼자일 때 조차도 제 자신을 속이려 애쓰던 것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내년에 또 공부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규문의 다른 수업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도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제 상태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이 분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내년에는 니체가 아닌 좀 더 쉽고 편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놨는데, 제 얘기를 한참 듣고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로 정확한 병증을 진단받고, 시골병원에 가서 멀미약 처방 받으면서 요양하겠다는 거네요."

지금의 내 상태를 알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도 알지만 그 과정이 겁이 나서 그냥 이대로 병든 채로 살겠다는 제 마음을 꿰뚫는 비유였습니다. 물론 요양하며 사는 삶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대로 두면 병증이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저는 수술을 원하는 것일까요? 이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그냥 살아도 되는데 왜 힘든 공부를 다시 하려는 것일까요? 마지막 에세이 발표에서 채운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인정하고 타협하면 뭐가 달라지는가? 언젠가 또 허무함과 공허함이 찾아올텐데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가 갖고 있는 고립감과 허무함, 외로움 등의 병증은 함께 살아가기에는 저를 무겁게 하고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것에 대한 견해 하나는 다르게 보고 싶어졌습니다. 니체가 왜 긍정의 철학자인지 어떤 의미로 생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보는 철학인지 내년에는 꼭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역시나 니체의 얘기는 없는 에세이 후기였지만, 도반님들과 채운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후기를 썼습니다. 내년에도 냉철하고 차갑게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견고한 견해를 깨고, 자유롭지 않게 만드는 기존의 상식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틀렸다는 말을 듣고 억울해 하지 않고 다시 묻고 따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공부해 보겠습니다.
전체 10

  • 2021-01-02 16:42
    뭔가 내년 공부(=전쟁)의 출사표 같은 후기네요.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응원하겠습니다.
    샘 에세이에서 본인의 솔직함에 대해 회의하시는 부분에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가장 솔직하게 저 자신을 까발리는 듯한 태도가 도리어 자신에 대한 방치이자 기만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지라 더욱 와 닿았던 것 같네요.
    이번 후기에서는 강자의 이기심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배려하기 위해서 자신의 익숙한 견해를 배반하는, 그리고 그러한 상식적이고 습관적인 관점을 깨줄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건강한 이기심! 화이팅입니다ㅎㅎ

  • 2021-01-02 18:29
    우왕 1년 공부에 대한 솔직한 소회이자 무지하게 정성스러운 세미나 신청서 같아요. 올해 공부가 막힐 때마다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게 있으면 함께 나누고 싶어하시는 율샘 덕분에 풍성한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샘의 공부에 응원을 보내며, 올해도 잘 부탁드려요.^^

  • 2021-01-02 19:05
    율샘에게 니체는 무척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진다던 말씀이 떠올라요. 따듯함도 차가움도 책에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의 마음에 모두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올해는 니체의 따듯함을 발견하시길 그리고 뜨거운 마음으로 니체와 만나고 계신 율샘이 되시길 응원합니다.

    • 2021-01-02 19:07
      허걱 설샘! 미치도록 우아한 댓글인데여-_-?

      • 2021-01-02 19:44
        지나님, 규문에 어울리는 우아함을 댓글에 담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규문 댓글이 에세이만큼 힘든 저이지만 그만큼 율샘을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아자!

  • 2021-01-02 23:06
    도반들에게 냉철한 견해를 요청하는 샘의 모습이 강함을 발휘하는 것이네요! 샘 응원합니다~

  • 2021-01-02 23:55
    올해도 함께 공부하게 되어 기뻐요 샘~ 저도 냉철하고 차갑게 봐드릴 수 있도록 애써볼게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 2021-01-03 17:47
    제가 이글의 주인공과 제일 친한 사람 입니다.( 의쓱ㅋㅋㅋ). 저의 거울, 올해도 잘 해봐용~~

  • 2021-01-06 09:38
    이 뜨거운 후기를 이제서야 봤네요!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기록이 이렇게 울림이 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신축년도, 틀리고 묻고 따지고 힘겹게 힘겹게 가는 즐거움을 함께 하게되어서 기쁘네요 ㅎㅎ 함께 파이팅해요!

  • 2021-01-09 17:13
    이 글에 차마 신청하지 않은 채로 댓글을 달 수가 없어서 신청하고 왔습니다. 하하..
    우리 같이 파이팅 해봐요 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