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1주차 <자본주의 리얼리즘>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9-03-08 16:16
조회
132
규문에 와서 이렇게 소규모 세미나를 참여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소수정예(?)의 팀원들이어서 그런지, 주제가 흥미로워서 그런지 스파크가 튀듯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우리가 놓여있는 지금 현재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해주고 있어서 각자의 방식으로 가슴이 콕콕 찔리는 책읽기를 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재밌었다고는 말했지만 왠지 후기를 쓰려하니 그 많은 이야기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리얼리즘

지금 TV를 장악하는 프로그램들은 무엇일까요? 언제나 흥행성이 목적인 상업 영화나 드라마는 논외로 하고, 오디션프로그램과, 리얼리티 프로그램(관찰 예능)이 매우 유행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스타’ 또는 ‘상금’을 내걸고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을 발굴해냅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에서는 기존의 스타들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더 참신하고 더 새로운 스타일을 내 놓으라는 요구에 맞춰, 흔히 스타성이나 ‘뜨는 것’에는 관련이 없이 자기 색깔을 가진 것처럼 여겨졌던 인디 뮤지션들이 등장하지요. 남들이 모르는 음악·예술 취향을 고수하는 ‘홍대병’이 대두대고 있는 경향은, 바로 이런 인디나 언더들이 점점 더 성공과 흥행을 목표에 둔 채 잘 팔리기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가 보여주는 것처럼 힙합이 오로지 성공만을 향해 개처럼 달려가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핵심은 그것에서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연예인의 소소한 일상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가식 없는 생활 모습을 보며 왠지 우리 자신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왠지 모를 위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거기에는 분노도 짜증도 이유모를 허탈함도 없는 클린한 일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카메라에 들어올 자격이 없지요. 우리가 예능은 언제나 우리를 안온하고 즐겁게 해줘야 하는 목표를 가진 듯 이의제기 불가능한 것들을 보여줍니다. 귀여움, 먹방, 힐링되는 일상 등. 현실의 지지부진한 문제는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그런 문제들은 어디서 다뤄질까요? 뉴스나 신문 같은 언론에서 다뤄지지만 문제는 언제나 도덕이나 개인의 책임, 법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더 나은 법이 제정되거나, 더 합리적인 소비, 더 증진된 인권 등의 문제로 치부되지요. 아무리 TV나 유튜브를 돌려봐도 거기서는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사실 제 친구들 사이에서 ‘자본주의’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가끔 자신이 소비 중독이라고 “난 자본주의적 인간이야”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본주의에게 아무런 타격이 되지 못합니다. 냉소 같지도 않은 냉소는 금방 사라지고, 결국 또 먹고사는 문제, 경쟁과 취업의 문제에 매달립니다. TV에서는 행복한 것들이 계속 재생됩니다. 한쪽에서는 너무 권태롭고 공허한 일상이 있고 한쪽에서는 마냥 좋기만 한 쾌락이 있습니다. 환상이 상영되고 있는가 하면, 그 뒤에는 냉소가 깔려있습니다. 이 두 면을 다 포함한 것까지가 바로 자본주의의 ‘리얼리즘’이다, 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자본주의”라고 소리 내어 발음해도 왠지 지금과 무관한 옛날의 단어 같기도 하고 어딘가 어색하기도 합니다. 현실은 그냥 현실인데, 딱딱한 그 말이랑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그냥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는 ‘자본주의’라는 딱딱한 말이 잘 떠오르지도 않게 하는 이 부드러운 목넘김이 바로 자본주의의 ‘리얼리즘’함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자발성의 함정 : 자기통제

다음카카오 회사의 제주도 사옥에서는 직원들이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일을 하며 운동시설부터 편의시설까지 회사 같지 않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구글의 경영 방법을 모방한 것이라고 합니다. 할당량이 부과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크리에이티브’를 요구하는 방식의 경영을 하는 회사는 요즘 대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좋은 회사’의 전형입니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성에 의해서 더 창조적이고 더 자유롭게 경쟁하라는 이 탈관료주의적 경영은 굉장히 혁신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려있어’라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인센티브. 이미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는 급료를 받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더 노동하기를 원합니다. 이미 억압이 사라진 혁신적 회사들에서는 이제 자기가 자신을 통제합니다. 즉, 자기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게 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데 초과근무를 원하게 되어버립니다.

이는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많은 학생들은 ‘동기부여’를 필요로 합니다. 공부자극 문구, 공부 자극 영상이 유행합니다. 예전처럼 공부를 하라고 때리거나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동기를 마련해 더 오래 앉아 있기를, 더 많은 것을 외우기를 강요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많은 학교나 학원에서 내거는 모토는 ‘자기주도학습’입니다. 제가 나온 고등학교 역시 그것을 하나의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감시하고 제지하기를 욕망합니다. 모든 결과의 책임이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처럼,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없으면서도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능동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립니다. 결과가 어쨌든 유일하게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자발성, 유연성, 노마디즘를 말하는 경영 구호와 교육의 구호는 굉장히 유사해보입니다. 마치 모터를 하나씩 나누어 준 듯, 포스트포드주의의 통제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추동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과 영성

저희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심각성과 그것의 외부 없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의식적으로 다시 담론화하고 재정치화 하기 위해 금욕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크 피셔의 대안이 조금 맥 빠진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이란의 청년들도 생산성에 대한 강박을 가질까? 하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달을 여행하는 동안 만난 청년들의 모습은 늘 바쁘게 안절부절 못하며 사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모습과는 상당히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그냥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가게 문을 열어놓고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인 것처럼, 관광객인 저희가 뒤적거리다 가버려도 잡지 않았습니다. 더 성공해야 한다는, 더 이윤을 내서 증식해야 한다는 의도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그들도 차를 타고 학교를 가고 돈을 벌지만, 누구도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저희는 혹시 자본주의가 침투할 수 없는 영역이나 틈 같은 것이 이들이 가진 ‘영성’, 즉 이슬람이라는 종교이자 삶의 양식과 관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슬람 은행에서는 이자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타우히드 존재관에서는 하나(一 )이 곧 여럿(多)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일’을 직접 표출하는 것으로서, 평등하다. 그러나 각각의 존재하는 것은 표출의 정도를 다르게 하고 있기에, 같은 것은 이 세계에 하나도 없다.”([현.혜.탄] 나카자와 신이치의 <녹색자본론> 연재 (4)) 따라서 이들에게 이자는 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란에서 저희가 본 모습은 라오스나 다른 동남아 나라에서 본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자본주의가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p11) 따위의 말은 적용되기 어려워보였습니다. 적어도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침투가 불가능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피셔가 고려하지 못한 하나의 대안이 이슬람의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체 3

  • 2019-03-08 19:04
    그냥 생각없이 들어본 적이 있었던 신자유자의가 만만찮게 무서운 놈이었음을 실감하네요...
    다음 시간에는 어떤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기대됩니다 .....

  • 2019-03-09 19:56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시작에 알맞는 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미로운 문제의 구도와 생각할 거리들, 그리고 몇몇 의문점들을 우리에게 남겨준 것 같네요. 앞으로 우리가 다른 텍스트들을 만나며 질문들을 어떻게 구체화하게 될지, 또 관점을 어떻게 이동시키게 될지 기대됩니다!
    * 다음주에는 <자본주의 역사 강의>(백승욱, 그린비)를 2강까지(~128쪽) 읽어오시면 됩니다. 발제는 제가 1강 진우샘이 2강을 맡았고, 간식은 민호가 준비해주기로 했습니다~ 다음주에 뵐게요^^!

  • 2019-03-09 22:18
    저도 할 말이 서로 많았던 세미나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ㅎㅎ 세미나 주제가 우리 삶과 너무나 밀접하다보니, 텍스트와 강렬하게 접속할 수 있어서겠죠~ 담주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