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옹야 9~15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1-23 01:57
조회
384
170115 격몽스쿨 후기

9.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구나 안회여. 한 대나무통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곳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 어질구나 안회여.”

簞 竹器 食 飯也 瓢 瓠也 顔子之貧如此 而處之泰然 不以害其樂 故 夫子再言賢哉回也 以深嘆美之
程子曰 顔子之樂 非樂簞瓢陋巷也 不以貧寠累其心而改其所樂也 故 夫子稱其賢 又曰 簞瓢陋巷 非可樂 蓋自有其樂爾 其字當玩味 自有深意 又曰 昔受學於周茂叔 每令尋仲尼顔子樂處 所樂何事 愚按 程子之言 引而不發 蓋欲學者深思而自得之 今亦不敢妄爲之說 學者但當從事於博文約禮之誨 以至於欲罷不能而竭其才 則庶乎有以得之矣

단(簞)은 대나무 그릇이다. 사(食)는 밥이다. 표(瓢)는 바가지이다. 안회의 가난함이 이와 같았으나 처하는 것은 태연하여 그 즐거움을 해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자꼐서 ‘어질구나 회여!’라고 거듭 ‘어질구나 회여!’라고 말씀하시며 깊이 감탄하시고 아름답다 여기신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안자는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와 누추한 곳 자체를 즐거워 한 것이 아니다. 가난이 그 마음을 얽매어 그 즐거움을 미루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의 어짊을 칭찬하신 것이다.
또 말씀하셨다.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와 누추한 곳이 즐거워할 만한 것은 아니다. 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이니, 마땅히 그 글자를 완미하여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깊은 뜻이 있다.
또 말씀하셨다. ‘옛날 주무숙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매번 공자와 안자의 즐거움을 찾게 하셨다. 그 즐거움은 어떤 것이었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정자의 말씀은 당기기만 하고 발하지는 않으셨으니, 배우는 사람들이 깊게 생각하여 스스로 그것을 터득하길 원하신 것이다. 지금 또한 감히 설명할 수 없다. 배우는 사람들은 다만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 약(約)하는 가르침에 마땅히 종사하여 그만두과 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 그 재능을 다하는 데 이르면 거의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10. 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염구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 너는 선을 긋고 있구나.”

力不足者 欲進而不能 畫者 能進而不欲 謂之畫者 如畫地以自限也
胡氏曰 夫子稱顔回不改其樂 求聞之 故 有是言 然 使求說夫子之道 誠如口之說芻畫 則必將盡力以求之 何患力之不足哉 畫而不進 則日退而已矣 此求之所以局於藝也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나아가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획을 긋는 것은 나아갈 수 있는데도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선을 긋는다고 이른 것은 땅에 선을 긋는것과 같이 스스로 한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씨가 말했다. ‘공자께서 안회가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다고 칭찬하시니 염구가 그것을 들었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염구가 공자의 도를 기뻐하기를 진실로 입이 고기를 좋아하듯 하였다면 반드시 힘을 다해 구했을 것이니 어찌 힘을 부족함을 근심하겠는가? 획을 긋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날로 물러설 따름이다. 이것이 염구가 예(藝)에 국한된 이유다.

11.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인 선비가 되어라. 소인인 선비가 되지 말아라.”

儒 學者之稱 程子曰 君子儒 爲己 小人儒 爲人이
謝氏曰 君子小人之分 義與利之間而已 然 所謂利者 豈必殖貨財之謂 以私滅公 適己自便 凡可以害天理者 皆利也 子夏文學雖有餘 然 意其遠者大者或昧焉 故 夫子語之以此
유(儒)는 학자의 칭호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군자의 선비는 자신을 위하여 공부하며 소인인 선비는 다른 사람을 위해 공부한다.’
사씨가 말하였다.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의(義)와 리(利)의 사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이익이라는 것이 어찌 반드시 재물을 쌓는 것만을 말하겠는가. 사사로움으로써 공정함을 없애고 자신에게 맞춰 스스로 편안하게 함으로써 천리를 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익이다. 자하는 비록 문(文)을 배우는 것에는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하건대 원대한 것에는 혹 미진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로써 말씀하신 것이다.

12.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
자유가 무성의 재가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인재를 얻었는가?” “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는데 다닐 때 지름길을 통하지 않고 공사가 아니면 일찍이 저의 관저에 오지 않았습니다.”

武城 魯下邑 澹臺 姓 滅明 名 字子羽 徑 路之小而捷者 公事 如飮射讀法之類 不由徑 則動必以正而無見小欲速之意 可知 非公事 不見邑宰 則其有以自守 而無枉己徇人之私 可見矣
楊氏曰 爲政 以人才爲先 故 孔子以得人爲問 如滅明者 觀其二事之小 而其正大之情 可見矣 後世 有不由徑者 人必以爲迂 不至其室 人必以爲簡 非孔氏之徒 其孰能知而取之 愚謂 持身 以滅明爲法 則無苟賤之羞 取人 以子游爲法 則無邪媚之惑
무성은 노나라 도성의 하읍이다. 담대는 성이고 멸명은 이름이며 자는 자우이다. 경(徑)은 길이 짧으면서 빠른 것이다. 공사(公事)는 향음주(鄕飮酒)와 향사례(鄕射禮), 독법(讀法) 따위이다. 지름길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드시 바르게 움직여서 작은 것을 보면서도 빠르게 하고 싶은 뜻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사가 아니면 읍재를 보지 않은 것은 그 스스로 지킴이 있어서 자기를 굽혀 다른 사람을 따르는 사사로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양씨가 말했다. ‘정치를 함에 다른 사람의 재능을 먼저 하니 그러므로 공자는 사람을 얻었느냐고 물은 것이다. 멸명과 같은 자는 그 두 가지 일의 작음을 보건대 그 바르고 큰 것의 정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반드시 우활하다고 여기겠지만 공자의 무리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것을 알아서 취하겠는가.’
내가 생각건대 자기를 지키는 것을 멸명을 본보기로 삼으면 구차하고 천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인재를 취하기를 자유로 법 삼는다면 삿되고 아첨하는 것에 혹함이 없을 것이다.

13. 子曰 孟之反 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달아나면서 군대 후방에 있고 문에 들어가려고 할 때 말을 채찍질하며 ‘감히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 전진하지 않아서이다’라고 하였다.”

孟之反 魯大夫 名側 胡氏曰 反 卽莊周所稱孟子反者是也 伐 誇功也 奔 敗走也 軍後曰殿 策 鞭也 戰敗而還 以後爲功 反奔而殿 故 以此言 自誇其功也 事在哀公十一年
謝氏曰 人能操無欲上人之心 則人欲日消 天理日明 而凡可以矜己誇人者 皆無足道矣 然 不知學者 欲上人之心 無時而忘也 若孟之反 可以爲法矣
맹지반은 노나라 대부이고 이름은 측이다. 호씨가 말하였다. ‘반(反)은 곧 장주가 말한 맹지반이라는 자가 그이다.’ 벌(伐)은 공적을 자랑하는 것이고 분(奔)은 패주다. 군대의 후미를 전(殿)이라고 한다. 책(策)은 채찍질이다. 전쟁에 패해 돌아올 때 군대의 후미에 있는 것을 공(功)으로 한다. 반(反)은 패주하면서 후미에 있었으므로 이것을 말할 때 스스로 그 공을 가린 것이다. 이 일은 <좌전> 애공 11년에 있다.
사씨가 말했다. ‘사람이 남보다 위에 있지 않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지킬 수 있다면 사욕은 나날이 줄어들고 천리는 나날이 밝아져서 자기를 자랑하고 남에게 뽐낼 수 있는 모든 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배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위에 있고자 하는 마음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니 맹지반 같은 경우를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14.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축타의 말재주와 송조의 미모가 없다면 지금 세상의 환난을 면하기 어렵구나.”

祝 宗廟之官 佞 衛大夫 字子魚 有口才 朝 宋公子 有美色 言衰世好諛悅色 非此難免 蓋傷之也

축(祝)은 종묘(宗廟)의 관원이다. 타(鮀)는 위나라 대부이니, 자(字)는 자어(子魚)다. 말재주가 있었다. 조(朝)는 송(宋)나라 공자이니, 미색이 있었다. 쇠퇴하는 세상은 말 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기뻐하니 이것이 아니면 환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5.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구인들 나갈 때 문을 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 도를 따르지 않는가?”

言人不能出不由戶 何故 乃不由此道耶 怪而歎之之辭 洪氏曰 人知出必由戶 而不知行必由道 非道遠人 人自遠爾
사람이 문을 통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으니 무슨 까닭으로 이 도를 통하지 않는가 라고 괴이하게 여기시며 탄식하신 것이다. 홍씨가 말하였다. ‘사람이 나갈 때 반드시 문을 통해야 함은 알면서 행동할 때는 반드시 도를 따라야 함은 알지 못하니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도를 멀리하는 것일 뿐이다.’

늦었습니다ㅠㅠ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가난해도 자신의 즐거움을 긋지 않는 안회와 획을 긋는 자 염구가 교차되어 나왔습니다. 둘 다 고치지 않는데 안회는 외부에 끌려가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키는데 염구는 반대로 공자님의 가르침을 두고 이리저리 따져봤을 때 실천하기 어렵다고 획을 긋는 것입니다. 이때 획을 긋는다면 남는 것은 퇴보일 뿐이라는 주가 무섭네요...

다음 학기는 2월에 시작됩니다.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한 모습을 2월 5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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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25 19:10
    그동안 '이 정도 했으면 잠깐 쉬어도 되겠지?' 하면서 나름의 합리화를 했는데, 뜨금했습니다. ㅎㅎ;; 획을 긋지 않는 호학자의 길은 멀리 있지 않지만, 제가 거기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