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술이 2~7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3-16 19:22
조회
219
 

2. 子曰 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묵묵히 기억하고 배우는 것을 싫증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찌 있겠는가? (다른 해석: 나에게 무슨 어려운 일이겠는가?)”
識 記也 默識 謂不言而存諸心也 一說 識 知也 不言而心解也 前說 近是 何有於我 言何者能有於我也 三者 已非聖人之極至 而猶不敢當 則謙而又謙之辭也
지(識)는 기억이다. 묵묵히 기억하는 것은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보존하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지(識)는 앎이다.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앞의 설이 더 옳다. “어찌 내게 있겠는가(何有於我)”는 ‘어떤 것이 내게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 가지는 이미 성인의 지극함은 아니지만 감히 당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은 겸손하고 또 겸손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3. 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을 닦지 않고 배운 것을 풀어 말하지 않고 의로움을 들어도 따를 수 없으며 불선을 고칠 수 없다면 이것은 나의 걱정이다.”
尹氏曰 德必修而後成 學必講而後明 見善能徙 改過不吝 此四者 日新之要也 苟未能之 聖人猶憂 況學者乎
윤씨가 말했다. 덕은 반드시 닦인 이후에 이루어진다. 배움은 반드시 풀어 말한 다음(講) 명확해진다. 선을 보고 따를 수 있고 고치는 것에 게으르지 않는다면 이 네 가지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의 요체다. 성인도 오히려 걱정하시는데 하물며 배우는 사람임에랴.

4.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공자께서 편안하게 계실 때는 활짝 편 것과 같으셨고 밝고 온화한 것과 같으셨다.

燕居 閒暇無事之時 楊氏曰 申申 其容舒也 夭夭 其色愉也 程子曰 此弟子善形容聖人處也 爲申申字說不盡 故 更著夭夭字 今人 燕居之時 不怠惰放肆 必太嚴厲 嚴厲時著此四字不得 怠惰放肆時亦著此四字不得 惟聖人 便自有中和之氣
연거(燕居)는 한가하고 일이 없는 시간이다. 양씨가 말했다. “‘신신(申申)’은 편 모양이다. ‘요요(夭夭)’ 안색이 온화한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이것은 제자들이 성인이 처하신 것은 잘 형용한 것이다. ‘신신(申申)’자는 다함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요요(夭夭)’자를 드러내었다. 지금 편안하게 있을 때는 나태하고 게으르고 방만하고 방자하지 않으면 반드시 크게 긴장하게 되고 긴장할 때는 네 가지 글자를 나타낼 수 없고 나태하고 게으르고 방만하고 방자할 때는 또한 저 네 가지 글자를 나타낼 수 없다. 오직 성인만이 편안할 때 스스로 중화의 기운이 있다.”

5. 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구나, 나의 쇠약해짐이여. 오래되었구나, 내가 꿈에서 주공을 만난 지가.”

孔子盛時 志欲行周公之道 故 夢寐之間 如或見之 至其老而不能行也 則無復是心而亦無復是夢矣 故 因此而自歎其衰之甚也 程子曰 孔子盛時 寤寐常存行周公之道 及其老也 則志慮衰而不可以有爲矣 蓋存道者心 無老少之異 而行道者身 老則衰也

공자께서 젊은 시절에는 주공의 도를 행하는데 뜻을 두고자 하셔서 꿈속에서 그를 보기도 하였지만 공자께서 늙게 되어 행할 수 없게 되자 다시 그 마음을 반복할 수 없었고 다시 그 꿈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그 쇠함이 심한 것을 탄식하신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젊은 시절 자나 깨나 항상 주공의 도를 행하려는 것을 보존하셨는데, 그가 늙음에 이르자 뜻과 생각이 쇠하여 할 수 없게 되었다. 도를 보존하는 것은 마음이어서 늙으나 어리나 다름이 없으나 도를 행하는 것은 몸이라 늙으면 쇠한다.”

6. 子曰 志於道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에 뜻을 두고”

志者 心之所之之謂 道 則人倫日用之間所當行者 是也 知此而心必之焉 則所適者正 而無他技之惑矣
뜻은 마음이 가는 것을 일컫는다. 도라는 것은 인륜의 일상에서 마땅히 행하는 것, 이것이다. 이것을 알면 마음이 반드시 거기에 가게 되니 가는 것이 바르고 다른 갈림길의 미혹이 없다.

據於德
“덕에 의거하며.”

據者 執守之意 德 則行道而有得於心者也 得之於心而守之不失 則終始惟一 而有日新之功矣
의거하는 것은 잡아서 그것을 지키는 뜻이다. 덕은 도를 행하고 마음에 얻는 바가 있는 것이다. 마음에 그것을 얻고 지켜서 잃지 않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으며 나날이 새로워지는 공이 있다.

依於仁
“인함에 의지하고”

依者 不違之謂 仁 則私欲盡去而心德之全也 工夫至此而無終食之違 則存養之熟 無適而非天理之流行矣
의지하는 것은 그것을 어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하면 사욕이 다하여 없어지고 마음의 덕이 전일하다. 공부가 여기에 이르면 밥 먹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것을 보존하고 기름이 익숙하여 가더라도 천리(天理) 아닌 것이 없다.

游於藝
“예에서 노닌다.”

游者 玩物適情之謂 藝 則禮樂之文 射御書數之法 皆至理所寓而日用之不可闕者也 朝夕游焉 以博其義理之趣 則應務有餘 而心亦無所放矣
此章 言人之爲學 當如是也 蓋學莫先於立志 志道則心存於正而不他 據德則道得於心而不失 依仁則德性常用而物欲不行 游藝則小物不遺而動息有養 學者於此 有以不失其先後之序 輕重之倫焉 則本末兼該 內外交養 日用之間 無少間隙而涵泳從容 忽不自知其入於聖賢之域矣

노니는 것은 사물을 가지고 노는 마땅한 정서를 일컫는다. 예(藝)는 예악의 문장과 활 쏘고 말 타고 글씨 쓰고 계산하는 법도이다. 모두 지극한 이치가 깃든 것이고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아침 저녁동안 거기서 노닐면서 그 의리의 뜻을 넓히면 해야 함을 응하면 마땅히 남음이 있고 마음이 또한 놓을 것이 없다.
이 장은 인간이 배울 때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우는 것은 뜻을 세우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도에 뜻을 두면 마음이 바름에 보존하여 다름이 없다. 덕에 의거하면 도가 마음에 얻음이 있어 잃지 않고 인함에 의지하면 덕성이 항상 작용하여 물욕이 행해지지 않는다. 예에서 노닐면 작은 사물에도 버림이 없고 움직이고 쉬는 것에도 기름이 있다. 배우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그 선후의 순서와 가볍고 무거움의 도리를 잃지 말아서 본말을 모두 아우르고 내외를 서로 길러 일상에서 작은 간극도 없고 조용히 유영하여 갑자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7.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포 열 마리 이상만 가지고 온다면 나는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脩 脯也 十脡爲速 古者相見 必執贄以爲禮 束脩 其至薄者 蓋人之有生 同具此理 故 聖人之於人 無不欲其入於善 但不知來學 則無往敎之禮 故 苟以禮來 則無不有以敎之也
수(脩)는 포다. 열 마리의 포가 속(速)이다. 옛날에는 서로 만날 때 반드시 폐백을 들고 예를 차렸다. 포 열 마리는 그것의 지극히 약소한 것이다. 사람이 사는 데 동일하게 이런 이치를 갖추니 그러므로 성인은 다른 사람이 선에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었다. 단지 이유를 모르면 가서 가르치는 예는 없었으니 그러므로 만약 예를 갖추어 온다면 그를 가르치지 않음은 없었다.

이번 시간에는 성인의 용모나 배움에 대한 구절이 많았습니다. 성인의 특징은 정말 쉬거나 틈이 없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한가할 때는 확 긴장하지는 않으면서도 나태해지지 않는 경지라니...공자님의 쉬는 모습을 그린 이 구절은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또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활짝 펴고 또 온화한 모습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것 같은데 막상 내가 쉬는 모습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ㅠㅠ 한가할 때도 성인다우신 공자님!!
술이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옹야편보다 조금 더 많을거예요. 미리미리 읽고 외워보는 센스^^ 간식은 이응 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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