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옹야 22~28/술이 1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3-11 21:28
조회
199
22. 子曰 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공자께서 말하셨다. ‘제나라가 한 번 변하면 노나라에 이르고, 노나라가 한 번 변하면 도에 이른다.’

孔子之時 齊俗 急功利 喜쥕詐 乃覇政之餘習 魯則重禮敎 崇信義 猶有先王之遺風焉 但人亡政息 不能無廢墜耳 道 則先王之道也 言二國之政 俗有美惡 故 其變而之道 有難易
程子曰 夫子之時 齊强魯弱 孰不以爲齊勝魯也 然 魯猶存周公之法制 齊由桓公之큹 爲從簡尙功之治 太公之遺法 變易盡矣 故 一變乃能至魯 魯則修擧廢墜而已 一變則至於先王之道也 愚謂 二國之俗 惟夫子爲能變之而不得試 然 因其言以考之 則其施爲緩急之序 亦略可見矣
공자 당시에 제나라의 풍속은 공리를 우선시했고 과장과 속임수를 기뻐했으니 바로 패도정치의 남은 습속이었다. 노나라는 예와 교를 중시하고 信義를 숭상하였으니 오히려 왕도정치의 유풍이 우선시되었다. 단지 사람들이 죽고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폐지되고 실추됨이 없을 수가 없을 따름이었다. 도는 선왕의 도다. 두 나라의 정치와 풍속에 아름다움과 나쁨이 있으므로 그것이 변화하여 선왕의 도로가는 것에 어려움과 쉬움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공자 당시에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했으니, 누가 제나라가 노나라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노나라는 오히려 주공의 법이 존재하므로 제나라는 환공의 패도정치 때문에 간략함을 따르고 공(功)을 숭상하며 다스려 태공의 남은 법이 변하고 다하였다. 그러므로 한번 변해야 노나라에 이를 수 있고 노나라는 폐지되고 실추된 것만 행하면 될 뿐이니 한 번 변화하면 선왕의 도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건대 두 나라의 풍속은 오직 공자만 변화시킬 수 있으나 시험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으로 고찰해보건대 그것을 시행할 때 완급의 순서를 또한 대략 알 수 있다.

23. 子曰 觚不觚 觚哉觚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난 술그릇(觚)이 모나지 않으면 고(觚)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고(觚)라고 할 수 있겠는가.

觚 稜也 或曰 酒器 或曰 木簡 皆器之有稜者也 不觚者 蓋當時失其制而不爲稜也 觚哉觚哉 言不得爲觚也
程子曰 觚而失其形制 則非觚也 擧一器 而天下之物 莫不皆然 故 君而失其君之道 則爲不君 臣而失其臣之職 則爲虛位 范氏曰 人而不仁 則非人 國而不治 則不國矣
고(觚)는 모난 것이다. 누군가는 술그릇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목간이라고도 한다. 모두 물건에 모가 나 있는 것이다. 모나지 않다는 것은 그 당시 기준을 잃어서 모가 나지 않은 것이다. 고재고재(觚哉觚哉)는 모난 술그릇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모난 술그릇이 그 모양과 제도를 잃으면 모난 술그릇이 아니므로 하나의 그릇을 들 때 천하의 사물이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군주가 그 군주의 도를 잃으면 군주가 될 수 없고 신하가 그 신하의 직분을 잃으면 빈자리가 된다. 범씨가 말하였다. 사람이고서 인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나라이고서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나라가 아니다.

24.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 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가 물었다. 어진 사람에게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고 비록 말해 주더라도 쫓아 거기로 들어갑니까? 공자 말씀하셨다. 어찌 그렇겠는가. 군자는 가게 할 수 있어도 빠뜨릴 수는 없다. 속일 수는 있어도 해로운 지경까지 속아 넘어가게 할 수는 없다.

劉聘君曰 有仁之仁 當作人 今從之 從 謂隨之於井而救之也 宰我信道不篤 而憂爲仁之陷害 故 有此問 逝 謂使之往救 陷 謂陷之於井 欺 謂£9之以理之所有 罔 謂昧之以理之所無 蓋身在井上 乃可以救井中之人 若從之於井 則不復能救之矣 此理甚明 人所易曉 仁者雖切於救人而不私其身 然 不應如此之愚也
유빙군이 말했다. ‘유인(有仁)의 인(仁)은 마땅히 인(人)이 되어야 한다.’ 지금 이를 따른다. 종(從)은 우물에 따라 들어가 구제하는 것을 말한다. 재아가 도를 믿되 돈독하지는 못하여 인을 행하다가 해를 입을까 근심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물은 것이다. 서(逝)는 가서 구제함을 말하고, 함(陷)은 우물에 빠짐을 말한다. 기(欺)는 이치가 있는 것으로 속이는 것이고 망(罔)은 이치가 없는 것으로 속이는 것이다. 몸이 우물가에 있어야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 만약 우물에 그를 따라 들어간다면 다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치는 매우 명백하여 사람이 알기 쉬운 것이다. 어진 사람은 비록 사람을 구제하는 데 절실하여 그 몸을 삿되게 돌보지 않지만 응당 이와 같지 어리석지는 않다.

25.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넓게 배우고 예로써 요약하면 크게 엇나가지 않을 것이다.

約 要也 畔 背也 君子 學欲其博故 於文無不考 守欲其要故 其動必以禮 如此則可以不背於道矣
程子曰 博學於文而不約之以禮 必至於汗漫 博學矣 又能守禮而由於規矩 則亦可以不畔道矣
약(約)은 요약하는 것이고 반(畔)은 위배되는 것이다. 군자는 그가 넓게 배우길 원하므로 문에 대해 고찰하지 않음이 없고 그것의 요점을 지키고자 하므로 반드시 예로써 움직인다. 이와 같다면 도를 등지지 않는다. 정자 말씀하시길 널리 배우기만 하고 예로써 요약하지 않으면 반드시 널리 한만(汗漫)함에 이를 것이다. 널리 배우고 또 능히 예를 지켜 기준에 말미암지 않으면 도에 위배되는 것이다.

26.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天厭之 天厭之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시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시며 말씀하셨다. ‘내 맹세코 잘못을 한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南子 衛靈公之夫人 有淫行 孔子至衛 南子請見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蓋古者 仕於其國 有見其小君之禮 而子路以夫子見此淫亂之人爲辱 故 不悅 矢 誓也 所 誓辭也 如云所不與者之類 否 謂不合於禮 不由其道也 厭 棄絶也 聖人道大德全 無可不可 其見惡人 固謂在我有可見之禮 則彼之不善 我何與焉 然 此豈子路所能測哉 故 重言以誓之 欲其姑信此而深思以得之也
남자는 위나라 영공의 부인이며 음란한 행위를 했던 적이 있다. 공자께서 위나라에 이르시자 어쩔 수 없이 남자가 만남을 요청하니 공자는 거절하시다가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나셨다. 옛날에는 그 나라에서 벼슬을 하면 그 임금의 부인을 뵙는 것이 예였다. 그러나 자로는 공자께서 그 음란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욕되다고 여겨서 기뻐하지 않았다. 시(矢)는 맹세이며 소(所)는 맹세하는 말이다. 예컨대 ‘맹세코 최경과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부(否)는 예에 합당하지 않음이니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염(厭)은 버리고 끊는 것이다. 성인은 도가 크고 덕이 완전하니 정해진 가(可)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 그가 악한 사람을 만나면 진실로 나에게 있어 만날만한 예가 있다면 저 사람의 악행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을 어찌 자로가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거듭 말씀하시고 맹세하신 것이니 그가 이 말을 믿고 깊이 생각하여 터득하길 원하신 것이다.

27.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 久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의 덕이 지극하구나! 사람들이 이 덕을 갖게 된 지 오래되었다.

中者 無過不及之名也 庸 平常也 至 極也 鮮 少也 言民少此德 今已久矣
程子曰 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 天下之正道 庸者 天下之定理 自世敎衰 民不興於行 少有此德 久矣
중(中)은 넘치는 것도 모자란 것도 없는 것을 이름하고 용(庸)이란 항상적인 것이다. 지(至)는 지극한 것이고 선(鮮)은 적은 것이다. 백성들의 덕이 적어서 지금은 이미 오래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고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바른 도이고 용은 천하의 바른 이치이다.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한 이래로 백성들은 덕을 흥기시켜 행하지 않아 이 덕을 간직한 이가 적게 된 지 오래었다.

28.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
자공이 말하였다. ‘만약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순도 이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겼다.’

博 廣也 仁 以理言 通乎上下 聖 以地言 則造其極之名也 乎者 疑而未定之辭 病 心有所不足也 言此何止於仁 必也聖人能之乎 則雖堯舜之聖 其心猶有所不足於此也 以是求仁 愈難而愈遠矣
박(博)은 넓음이다. 인(仁)은 이치로 말한 것이다. 위와 아래에 통하고, 성(聖)은 지위로 말한 것이므로 그 극에 간 자의 명칭이다. 호(乎)는 의심하여 아직 정하지 않은 말이다. 병은 마음에 부족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는 어찌 인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반드시 성인이라야 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오순 같은 성인이라도 오히려 그 마음에 부족한 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으로 인(仁)을 구한다면 더욱 어렵고 더욱 멀어질 것이다.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인한 사람은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以己及人 仁者之心也 於此觀之 可以見天理之周流而無間矣 狀仁之體 莫切於此
자기로써 남에게 미치는 것은 인한 사람의 마음이다. 이것으로 살펴보건대 천리는 두루 흘러서 틈이 없다. 인(仁)의 본체를 나타낸 것이 이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가까운데서 취해 비유한다면 인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譬 喩也 方 術也 近取諸身 以己所欲 譬之他人 知其所欲亦猶是也 然後推其所欲 以及於人則恕之事而仁之術也 於此勉焉 則有以勝其人欲之私而全其天理之公矣
程子曰 醫書 以手足츁痺 爲不仁 此言 最善名狀 仁者 以天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 認得爲己 何所不至 若不屬己 自與己不相干 如手足之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 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仁至難言 故 止曰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欲令如是觀仁 可以得仁之體 又曰 論語 言堯舜其猶病諸者二 夫博施者豈非聖人之所欲 然 必五十乃衣帛 七十乃食肉 聖人之心 非不欲少者亦衣帛食肉也 顧其養有所不贍爾 此病其施之不博也 濟衆者豈非聖人之所欲 然 治不過九州 聖人 非不欲四海之外亦兼濟也 顧其治有所不及爾 此 病其濟之不衆也 推此以求 修己以安百姓 則爲病可知 苟以吾治已足 則便不是聖人 呂氏曰 子貢有志於仁 徒事高遠 未知其方 孔子敎以於己取之 庶近而可入 是乃爲仁之方 雖博施濟衆 亦由此進
비(譬)는 비유이고, 방(方)은 방법이다. 가까이 자신에게서 취하여 자신이 운하는 것을 가지고 타인에게 비유하며 그가 원하는 것도 또한 같은 것을 알고 난 연후에 그 원하는 바를 미루어 남에게 미쳐야 한다. 이는 서(恕)의 일로서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힘쓴다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겨서 그 천리의 공덕을 완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의서에 손발이 마비되는 것을 불인(不仁)이라고 했다. 이 말은 인(仁)을 가장 자 형용한 것이다. 인한 사람은 천지 만물을 한 몸으로 삼으니 내가 아닌 것이 없다. 자신이 무엇인지 인식한다면 어디에 이르지 못하겠는가. 만약 자신에게 소소시키지 않으면 저절로 자기와는 상관이 없게 되니 마치 손발이 불인해지면 기가 이미 통하지 않아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성인의 공과 쓰임이다. 인은 지극히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다만 말씀하시기를 내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우며 내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하며 가까운 곳에서 취해 비유할 수 있다면 인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이는 이와 같이 인을 살펴서 인의 본체를 터득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또 말씀하셨다. 논어에는 ‘요순도 부족하게 여겼다’고 말씀하신 것이 둘이다. 널리 베푸는 것이 어찌 성인이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반드시 오십 세가 되어야 비단옷을 입고 칠십 세가 되어야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므로 성인의 마음에 젊은 사람 역시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봉양함에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니 이는 그 비풂이 넓지 않음을 부족하게 여기신 것이다.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어찌 성인이 바라지 않았겠냐만 그러나 불과 구주(九州)를 다스리고 있었으니 성인이 사해의 밖까지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또한 다스림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니 이는 그 구제하는 것이 많지 함을 부족하게 여기신 것이다. 이로 미루어 구해보면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성인이 부족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나의 정치가 이미 족하다면 곧 성인이 아니다.
여씨가 말하였다. ‘자공은 인(仁)에 있어 뜻이 있었으나 한갓 높고 원대한 것을 일삼아 그 방법은 알지 못했다. 공자께서 자신에게 취하 것으로 가르친 것이니 거의 인에 진입할 수 있다.

7. 述而 1장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조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기를 우리 노팽에 견주노라.

述 傳舊而已 作 則創始也 故 作 非聖人 不能 而述則賢者可及 竊比 尊之之辭 我 親之之辭 老彭 商賢大夫 見大戴禮 蓋信古而傳述者也 孔子刪詩書 定禮樂 贊周易 修春秋 皆傳先王之舊 而未嘗有所作也 故 其自言如此 蓋不惟不敢當作者之聖 而亦不敢顯然自附於古之賢人 蓋其德愈盛而心愈下 不自知其辭之謙也 然 當是時 作者略備 夫子蓋集群聖之大成而折衷之 其事雖述 而功則倍於作矣 此又不可不知也
술(述)은 옛것을 전하는 것일 뿐이며 작(作)은 처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으나 술은 현자라면 할 수 있다. 절비(竊比)는 그를 높이는 말이고 아(我)는 자신을 친근히 부르는 말이다. 노팽은 상나라의 어진 대부이고 <대대례>에 보이는데 아마도 옛것을 믿어 전술 한 학자인 듯하다. 공자는 시, 서를 편집하고 예악을 정리하였으며 주역을 부연하고 춘추를 편찬하였으니 모두 선왕의 옛것을 전하였고 일찍이 창작한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다만 감히 창작을 하는 성인을 자처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감히 드러내놓고 스스로 옛 현인에게 붙이지 않았다. 이는 그 덕이 더욱 높아질수록 더 겸손해지는 것이니 자신도 그 말씀이 겸손한 것임을 알지 못하신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창작은 대략 갖추어졌으니, 공자께서는 성인을 집대성하여 절충하셨다. 그러므로 공자가 하신 말씀은 비록 조술한 것이지만 공은 창작의 배가 된다. 이것은 또한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참석하지 못한 내용이라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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