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8. 30 주역과 글쓰기 수업 후기

작성자
고원
작성일
2020-09-03 23:50
조회
119
이번주는 천뢰무망과 산천대축괘를 배웠습니다. 정이천은 천뢰무망을 ‘움직이기를 천도로써 하면 무망이고 움직이기를 인욕으로 하면 망이 되는 것’
(動以天 爲无妄 動以人慾則妄衣)라 했지요. 샘은 망동이란 맹자에서 나오는 ‘조장’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욕심이 앞설 때, 성과를 빨리 내고 싶을 때 싹을
끄집어 올리듯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는 것이 ‘망동’이라 했습니다. 한마디로 경거망동을 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무망은 無爲의 삶을 말합니다.
무위의 삶이니 항상할 수 있습니다. 공부에 있어서 보상을 기대하고 하는 것이 아니니 공부를 항상 되게 할 수도 있고 공부 자체로 기쁨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 그 자체가 원인과 결과이기 때문에 행위가 기쁘면 기쁨으로 그 자체로 복인 것입니다.  무망괘 괘사는
无妄 元亨 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우니, 바르지 않으면 허물이 있을 것이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무망에서 바름은 천리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정이천은 무망을 중용의 至誠無息으로 해석하여 천지운동과 같은 자강불식하는 군자의 삶이라 했습니다.
또한 성명을 바르게 함이 무망(各正其性命 乃无妄也)이라 하였습니다. 주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各正其性命’인 것 같습니다.
성리학자들은 천리가 아닌 것은 人欲이라 하여, 사람의 인욕은 편벽되이 타고난 기질과 연관 되는 것으로 봅니다.
기질 자체가 치우쳐 있기 때문에 치우친 기질을 바로 잡는 것이 ‘수련’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수련’이란 질문하는 것과 연관 됩니다.
매번 똑같은 글을 써서 똑같은 멘트를 받곤 하는데 치우친 나의 기질을 그대로 두고 다른 질문을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인가 합니다. ‘이대로 내버려 둬’는
성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망동하고 살겠다는 것이지요.  글쓰는 것으로 수련을 삼아야겠다고 늘 생각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제하나에도 평가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한 자강불식하는 글쓰기는 어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주희도 무망을 ‘기대하고 바라는 바가 없이 얻음이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샘은 기대하고 바라는 바가 없기 때문에 좋은 일이 오더라도 좋은 일에 연연해하지 않을 수 있고 나쁜 일이 오더라도 흘러 보낼 수 있다 했습니다.
외부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그게 가장 큰 자유인거죠. 끊임없이 외부 상황에 끌려가는 것은 마음의 동요를 불러들이고 망동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때가 자신의 행위가 진실했을 때이고 이것이 하늘의 때에 순히 합하는 것(順合天 時)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진실한지 여부는 자기 마음으로부터 찾는 것이라 했지요. 그런데 내 마음에서 찾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내 마음이 이미 외부의 가치와
척도로 때가 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상식과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철저하게 자기에게 돌이키기 위해 자기를 뒤집어 파헤쳐 보는 것이지요.
공부하는 학인들은 자기 스스로 파헤칠 힘이 약하니 토론을 하고 이야기를 듣는 거겠지요.  무망괘 효중에서는 구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라 했습니다.
九五 无妄之疾 勿藥 有喜 - 무망의 병은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쁜 일이 있으리라.
내가 아무리 망령되이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 삶이고 이게 무망한 것이라 했습니다.
샘은 구오의 중정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병을 이치로 볼 수 있어 병도 전적으로 긍정할 수 있다 했습니다. 병 또한 자연의 이치임을 안다면 억지로
약을 쓴다 하여 망동하지 않을 수 있고 근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산천대축괘는 점을 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길흉이 다르다고 합니다. 장사를 하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이 대축괘가 나왔다면 물건이 쌓이고 그치게
되니 흉한 괘가 되고, 공부하고 가르치려는 사람에게 나오면 좋은 괘가 됩니다. 대축괘는 ‘크게 쌓는다. 멈추다, 저지하다’ 의 뜻이 있는데 그침이 크게
쌓는 것이 되는 것이라면 정신적 역량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덕을 쌓고 이것을 나누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괘가 되는 것이지요. 대축괘의 괘사는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 대축은 정함이 이로우니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길하니, 대천을 건넘이 이롭다.
‘불가식’은 덕을 쌓아 세상에 나가 쓰는 것을 말합니다. 대상전은 ‘어진이를 기르는 것’이라 풀이합니다.
샘은 지혜를 전파하는 것으로 불교로 말한다면 '회향'하는 거라 했습니다. 보살정신을 펼치는 것이 대축괘의 길함이요 大川이란 번뇌의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대축괘의 효에서 산이 하늘의 강건함을 저지한다고 할 때 산이 저지하는 것은 내면에서 지혜를 쌓고 더 크게 쓰이는 것이
아닌 쓸데 없는 일로 에너지가 소진 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거라 했습니다. 물론 샘의 해석이지만 저는 이 말이 귀에 무척 와닿았습니다.
대체 강건한 양의 기운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더군요.

샘은 괘를 공부하다 보면 각자의 인생괘가 있을 거라 했지요. 저에게는 무망괘가 여러모로 그러했습니다. 지금 머리를 싸매고 산뢰이와 택풍대과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주역이 정말 어렵네요.  괘를 완하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힘들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인생의 등대로 삼을 만한 괘도 만나고 삶의 고비마다 들여다 볼 괘가 있으니 이런 맛에 하는 거겠지요.
전체 2

  • 2020-09-04 14:15
    보살정신...지혜를 쌓고 더 크게 쓰이기 위해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는 것! 저도 와닿네요. 산만하면 대천을 건널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겠습니다ㅠ

  • 2020-09-04 14:16
    저도 점치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길흉이 다르다는 말을 늘 담아 놓게 되더라고요. 그 해석에 따라 자기의 태도와 판단이 나올 것이니까 말이죠.
    무망괘를 받고 약 쓰지 않고 기쁠 수 있는존재가 되어야할텐데요. 공부를 할수록 경거망동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