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7월 15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07-03 15:37
조회
78
어느새 2학기도 에세이 발표만 남겨두고 있네요. 에세이 쓰는 건 언제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간에 토론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대략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학기의 주제는 정치와 정념입니다. 정치에서 정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아니라 정념을 통해 정치를 다르게 사유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채운쌤은 랑시에르, 푸코, 들뢰즈가 정치를 사유한 걸 설명하시면서 정치 자체를 다르게 사유하는 데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스피노자를 배우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를 어떤 차원에서 사유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막연하게 정치의 이미지를 과거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서 가져왔고, 그래서 정치를 정의를 구현하는 공적 활동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치에 대해 생각하려면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정치를 생각하면 답답했던 것도 정치에 대한 다른 사유를 발명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정치를 정서의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은 모두 정치의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념은 이미 타자와의 관계가 함축돼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정념의 예속으로부터 해방되는 자기변형은 필연적으로 타자변형을 동반합니다. 나와 타자를 동시에 변형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정치는 사유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헤지아, 불교의 포살자자 같은 실천들이 상호변형의 예입니다. 자기변형을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변형시킬 수 있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 혹은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가에서 벗은 선을 권하고[責善], 벗으로서 자신의 인(仁)을 도모한다(以友輔仁)는 말도 아마 이러한 맥락이겠죠. 이번 에세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나는 어떤 정념에 사로잡혀있고, 그러한 정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타자를 어떻게 필요로 하는지 나름대로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봉선쌤이 하소연하셨듯이 우리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탁 터놓고 얘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뒷담화를 하는 것 같고, 어떤 점에서는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죠. 하지만 그건 그만큼 우리가 특정한 정체성에 고착됐기 때문입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특정한 상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는 데서 허심탄회하지 못함이 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정념과 억견을 점검하는 데 게으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학에서는 직(直)이 내면의 떳떳함을 의미하는데요. 전통적으로 이 글자를 10개[十]의 눈[目]이 보아도 숨긴 것[乚]이 없을 정도로 떳떳하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비슷하게 《대학(大學)》 〈성의(誠意)〉편에서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군자의 진실함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열 개의 눈이 보고, 열 개의 손이 가리키니, 그 엄정함이여.(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단순하게 해석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내면의 떳떳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플하게 보여줍니다.

항상 마음 어딘가에 음흉한 구석이 있는 저로서는 이런 유학의 수양이 가끔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런 엄정함 속에서만 우리는 타자에 대해 ‘완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정념에 빠진 사람은 감사하는 것도 조건에 의존합니다. 그들은 타자가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는 한에서만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인간은 상대방에게 “정념으로는 불가능한 아주 폭넓은 시야와 그들의 진정한 이익에 대한 자각을 요구”합니다. 이들의 감사는 다르게 살고자 하는 자신의 발심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죠. 따라서 이들은 상대방으로 인해 자신을 변형시키는 과정, 내가 기꺼이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 자체에 감사합니다.

자유로운 인간들이 서로에게 완전히 감사하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매주 토론시간에 체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망치는 이유 중 하나가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인 것 같습니다. 이 욕심에 압도되면 글이 허세로 가득 차는 것 같아요. 아직 저의 신체는 이 허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이번에 쌤들하고 토론하면서 그런 욕심을 압도하는 다른 관념을 가지게 됐습니다. 제 문제의식에 대해 코멘트해주시면서 저의 어떤 것을 궁금해 하시고, 저는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막연히 잘 쓰고 싶다는 욕심보다 구체적으로 써야 할 방향을 어렴풋하게나마 잡은 것 같아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다른 욕망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이런 체험을 하게 해주실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모두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도반이기 때문입니다. 규문에서의 토론은 좋은 정치적 조건 형성이지만, 이건 외적 조건에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것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이번에 선생님들이 들려주실 에세이가 기대됩니다! ㅎㅎ 다음 주 수요일 8일은 쉬고, 그 다음 주 15일 오전 10시에 에세이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간식은 지난번처럼 조금씩 가져와주세요. 그럼 15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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