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9주차 후기

작성자
경숙
작성일
2020-07-06 00:19
조회
80
 

이번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마트롱의 <개인과 공동체>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어내느라 숨가빴던 한 학기였습니다.  마치 스피노자가 환생한듯한 마트롱의 책 내용은 다 소화하지 못했지만 제 생애 가장 긴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이 남았습니다.  혼자라면 결코 읽지 못했을 책을 공동체에서 함께 읽을수 있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내 신체가 무엇을 하기 전에는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서로의 역량을 증대시킨 공동체가 글쓰기의 역량도 증대 시킬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세이가 15일로 잡혔습니다.  이번 강의는 에세이 쓸 때 어떤 포인트를 잡고 쓸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랑시에르는 정치를 폴리스라고 부릅니다.  이 사회에는 분할선들이 작동한다고 합니다.  정상과 비정상, 옳음과 그름, 이것과 저것의 분할등 아주 다양한 분할선들이 작동합니다.  사회가 유지된다고 하는 것은 그 분할선들이 재생산 된다는 말입니다.  자본주의적 가치가 재생산되는 것은 가치있는 것과 없는 것, 이익과 손해, 이렇게 딱 분할선이 있습니다.  랑시에르의 정치란 이런 분할선의 재생산이 아니라 이런 분할선들을 문제삼고 흐리는 일련의 행위입니다.

푸코는 정체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주체화의 과정을 경유합니다.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부모로 주체화 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엄마의 주체 형성 과정을 거칩니다.  그 중에 우리는 어떤 하나의 엄마성을 자신의 주체로 삼습니다.  엄마는 ~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치 못할 경우에는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계속 갖게 됩니다.  그런 여러 주체화의 과정 중에 하나의 주체성을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정체성입니다. 이게 Identity입니다.  동일성.  그러니까 왜 사람들은 그 다양한 주체성들을 다 버리고 그 중에 하나의 주체성에 고정되어 그것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걸까요?  사회는 이 정체성들 중에 어느 하나에 우리를 붙잡아 놓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정체성과 자기를 동일시하고 자기와 하나의 주체성을 동일시하는 감정이 강할 수록, 이제 이 정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 정체성에 고정될수록 역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역량은 자기 자신을 관계성 속에서 실험하는 과정에서 증감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다양한 주체성이 아닙니다.  그 중 하나의 정체성에 나를 고정시키려는 힘에  종속될수록 슬픔은 커집니다.  그래서 규범적이고 모범적인 사람들에게 슬픔의 정서가 커보입니다.  슬픔이라는 것이 꼭 찡찡거리는 슬픔이 아니라 자기를 늘 비하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나의 주체는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주체화 될까요?  그것이 주체화 과정입니다.  스피노자는 실존의 본성인 코나투스와 그 실존이 자기의 역량을 펼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더 기쁨을 향유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개체의 실존을 사유합니다.  스피노자는 '개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단순히 정치에서 정념이 중요하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념을 사유하게 됐을 때 정치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로 사유의 과정이 진행되어야 합니다.우리는 왜 정념으로부터 해방을 이루지 못하는가?  일차적으로 정념을 아직 이해못하고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계에서든지 무슨 이성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정서적인 것 때문에 빈정이 상합니다.  내가 어떤 공동체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 관계로부터 발생시키는 자기의 정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누군가 하나가 흔들리지 않으면 관계가 깨지지 않습니다.  서로가 빈정을 상하게 해서 깨집니다.  우리가 자신의 정념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것인가가 궁극에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럴려면 내가 왜 정념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가를 스피노자의 논의로 잘 풀어야 합니다.

마트롱이 계속 말하는 것은 정념의 해방이든 이성의 능동화든 좋은 정치적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스피노자는 개체를 복합물로 봅니다.  복합물이란 무수히 다양한 통일성을 가진 개체들의 조합입니다.  나라는 개체, 저사람이라는 개체, 국가라는 개체는 각각의 코나투스가 있습니다.  하나의 일관된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개체 안에는 너무나 상이한 코나투스를 가진 개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멈춰있는 경우가 없으며 아주 복잡하고 역동적입니다.  개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개체들로 이루어진 복합체가 갑자기 이전과 다른 양태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념을 해방하는데 있어 좋은 정치적 조건을 형성한다는 것은 이 관계성을 어떤 방식으로 실험하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가족 관계를 다른 방식의 관계로 형성할 수 있을까.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체들의 운동이 활성화될수록 즉 개체들의 역량이 커질수록 공동체도 다양해집니다.  자기 변형은 동시에 타자 변형입니다.  변형이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상호적입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나의 변형을 일으킬 수 있는 관계이면 그 또한 나로부터 자기 변형을 일으킵니다.  공부 공동체나 종교 공동체는 자기 역량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크며 상호 변형이 잘 일어납니다.  가능한 윤리로써 실현될 수 있는 작은 장은 스승과 제자와 친구들로 이루어진 배움의 공동체입니다.  정치적 조건을 형성한다는 것은 정치적 조건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조건들을 어떻게 더 다양하게 형성할 수 있느냐가 민주주의 본질입니다.  자신이 어떤 장을 능동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능동적으로 구성하거나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조건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자기 자신을 실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가?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지복에 이르기 위한 자기 역량의 실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량, 기쁨이 더 커지는 방식으로 정치적 조건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치적 조건인가?  자기 역량을 실험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 변형입니다.  자기 변형을 꾀하려는 개체의 노력은 다 정치적 노력입니다.

이 정념으로부터 해방을 이루려는 나의 이해과정에서 어떤 지점에서 나는 타자를 필요로 하는가.  그래서 이런 정치적 조건이 중요합니다.  겉치레만 치르는 관계들이냐 아니면 속속들이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들이냐가 정치적 문제입니다.   그 정치적 조건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형성할 것인가?   왜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가를 같이 문제 삼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나를 괴롭히는정념을 문제 삼아야 합니다.  다들 출발점은 나를 예속시키는 정념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과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의 정치적 조건 즉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지점에 대해서 다르게 사유하는 바를 쓰셔야 합니다.

타인의 시선 속에 자기를 노출시키고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수련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많이두려워 합니다.   프라이빗한게 뭔가요?  자기의 감정과 자기의 견해.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자기와 동일시합니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속에 있으면 아무래도 이것을 조금 점검하는 역량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자기의 감정과 견해에 자기를 내맡겨 버리는 경향들이 되게 심해집니다.  그런 지점에 있어서도 어떤 정치적 조건 즉 함께 살아감이라고 하는 것이나를 위해 필요로 하는 지점입니다.  공동체의 문제는 이렇게 다각적으로 생각을 해보셔야 합니다.

보살정신의 핵심은 일체 중생이 남김없이 해탈을 얻는 순간까지 저는 윤회하면서 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발원합니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혁명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체 중생의 해방이 다 이루어지는 순간 맨 마지막으로 나도 해방되곘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로지 윤회가 의미 있는것은보살이 되는 자의 윤회가 의미있는겁니다.

우리가 대통령이나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먼저 경제적인 것을 잘 살려달라고 합니다. 경제적인 것을 잘 살리면 도덕성은 그 다음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에선 다른 것이 작동합니다.  우선은 도덕적으로 깔끔한 정부가 되어야 경제적인 배분도 깔끔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이 두가지를 같이 사유할 수 있습니다.  도덕성의 문제가 뭘까요?  일종의 정념과 이성의 문제입니다.  도대제 정치에서 도덕적인 것은 뭘까요?   그것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다음에 천지 불인도 다시 한번 생각을 좀 해보세요.  우리는 자연에 속해 있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자기 코나투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개체들의 평면으로 생각합니다.  스피노자가 맨 마지막에 이룬 것으로서의 천지는 지복의 상태라고 말 할 수 있는것 아닐까요?법가의 천지 불인은 너무 냉정한 것으로 갖고 왔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군주의 역할과 그런 문제들을 아무튼 열심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주 다양하게 사유하고 글을 써오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얼마만큼 사유를 촉발시킬지는 각자의 역량만큼 써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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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6 13:03
    정치를 사유하는 관점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분할선, 주체성, 배치 등등 궁금한 개념들도 점점 많아지네요. 그만큼 이번 학기 공부에 많이 촉발된 거겠죠? ㅎㅎ 선생님들의 글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