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수중전 시즌2 역사강의 8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1-04 02:13
조회
59
171227 수중전 후기

 

늦은 후기 죄송합니다ㅠㅠ 수중전 마지막 강의 후기 올립니다/

 

마지막 시간은 [조선열전]을 비롯하여 중국이 다른 나라를 보는 시선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기>의 [조선열전], <삼국지> [위지] [동이전], <진서>의 [동이열전], <양서>의 [동이열전] 등 중국은 제국 밖의 ‘오랑캐’와 관계하며 계속해서 기록해 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에 어떤 부족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는지, 그 부족의 계열은 어디인지, 어떤 풍습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중국과 관계 맺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이번 시간에 강의를 들으며 알게 된 것은 의외로(?) 한반도 일대가 유목민 계열과 많이 섞였다는 것, 그리고 중국을 비롯하여 그 일대 민족과 국경이 무색하도록 계속해서 교류했다는 점입니다. 같은 오랑캐(?)더라도 유목민은 아무래도 저 중국 너머 서쪽에 있을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고, 또 중국 아닌 여진, 거란과는 교류를 덜 했을 것 같은 이상한 중화주의가 제 안에 있더군요...이번 시간을 기해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천하국가’라고 하여 문명이자 빛인 자신들이 중심에 있고 그 밖은 모두 바다라고 인식했습니다. 중국(中國), 중화(中華)는 중국 중심의 문화-야만 세계관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심이 있고, 그것과 멀면 멀수록 문명과 멀어진다는 ‘상상지리’를 가지고 중국 아닌 곳의 역사를 그렸던 것이죠. <서경>의 [순전]을 보면, 변방은 곧 유배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을 이민족의 땅이자 유배지라고 생각하고, 먼 곳으로 갈수록 죄의 크기가 더 큰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로 유배 가는 것도 정말 보통 죄인(?)이 아니면 어렵다고 합니다. 왕의 직할지인 ‘중심’부터 유배지인 ‘주변’까지, 중국의 세계인식은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갑니다. 저는 역사책은 주로 사건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데,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당시 사람들의 지리 인식을 통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령 <산해경> 같은 경우 <서경>과 달리 복수의 산과 강을 중심으로 지리를 그린다고 합니다. (<산해경>은 이상한 괴물들만 나오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ㅇ0ㅇ) 이런 심상지리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조선에 대한 중국의 시선을 보여주는 첫 번째 텍스트는 <사기>의 [조선열전]입니다. 사마천에 따르면 조선의 왕은 연나라 사람이고, 나라 자체는 진시황통일 이후 망명한 사람들이 세운 나라라고 합니다. [조선열전]의 특징은 왕의 최측근이었던 사마천이 전하는 생생한 고조선 멸망 르포입니다. 그러다보니 사건위주이고 기자 조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고조선 멸망의 발단과 공을 세우고 싶은 한나라 장군들의 알력싸움과 멸망 이후까지 아주 실감나게 전하고 있지요. 사마천은 이 전쟁이 누구도 얻은 게 없는 싸움이었다고 평합니다. 다만 한사군 설치 후 조선 일대는 중국의 느슨한 식민 통치를 받는 곳으로 중국에게 인식된 것 같습니다. 이후 <한서>에도 조선전이 있는데, 사마천의 이 [조선열전]을 답습하고 있지요.

 

<삼국지> [위서]와 [오완선비동이전]은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당시의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예, 삼한과 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보를 수록하고 있던 책이었거든요. 이중 재밌는 것은 왜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인에 대한 중국의 첫 번째 기록인데, 실제 가보지도 않고 상상하여 지었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 <삼국지>의 [동이전]이 중요한 이유는 최초로 부여에 대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치, 토질, 제도 등을 기록했는데 특히 군왕이 있는지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제도적인 수준이 어떤지 가늠해 봤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교과서에서 봤던~) 제천행사 영고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금과 은으로 장식하고 가무를 즐겼다고 나와 있다는데, 동이족에 대한 묘사로 음주가무가 끊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고 해요. 그리고 이런 것은 유목민의 특성이라고 합니다. 또 유목민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동명성왕에 대한 신화가 사실은 오리지널(?)이 부여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방 유목민족이 공유하는 신화 중 하나가 바로 그 활 잘 쏘고 거북이 등 딛고 물을 건너 도망치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것이 고구려에도 전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이 외래 민족에 대해 기록할 때 중시한 것은 책봉 시기와 조공 품목입니다. 책봉 시스템에서는 중국이 그들과 어떤 안정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중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언제 조공을 받았고, 무엇이 오갔는지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시한다면, 국가의 발전단계를 중시했다고 해요. 그래서 옥저에 군주가 없다는 기록도 중국 쪽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삼국지>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 것은 <신당서>입니다. 이 기록에서는 기미정책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습니다. 기미정책이란 문화적인 우월함으로 지배하는 것인데요, 가령 지배자의 자제를 당나라에서 유학 보낸 다음 본국으로 돌려보내면 그 자제는 적응을 못하고 당나라 식으로 문화를 개편하고 싶어 합니다. 일종의 정신개조 일까요=_= 당나라는 그런 사람을 식민지의 도독으로 삼아 두 나라간의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죠. 이런 ‘책봉’된 말갈, 발해, 고려, 백제, 신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중 재밌었던 것은 신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기록만 보아도 아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생활이 나타나 있고, 또 한편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모두 부녀가 한다는 특이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보고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이런 기록을 보면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개방된 사회였고 외부와의 인적 교류도 활발했던 동아시아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 특이한 예가 아니라 ‘모든’ 부녀가 물건을 사고판다는 것도 놀라운 이야기였고, 장보고 같이 본국에서 출세하지 못하면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도 많았다는 걸 보면 국경에 대한 의식도 생각보다 많이 가벼웠던 것 같으니까요.

 

<송서>의 [외국열전]에는 고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건을 ‘현도주도독’으로 삼고 또 ‘고려국왕’으로 책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네요. 예전에 사극만 봤을 때는 거의 후삼국 ‘내전’ 같은 역사였는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책봉’으로 정리된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그리고 이 ‘책복’ 시스템은 나중에 원나라 시대에 고려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양상을 만듭니다. <원사> [외이열전]에 따르면 원이 고려왕을 책봉하는 동시에 ‘심양왕’이라는, 심양 지역을 다스리는 고려 내부 지역의 관리를 별도로 두어 서로 경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고려왕은 있는데, 서열을 따져보면 원에게 직접 명령을 받는 심양왕이 더 높은 것 같은, 그런 미묘한 알력이 원나라시기에 고려에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원나라에서 과거를 보고 본국으로 귀국한 인재들도 많았고요. 거기다 왕은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아 부부간에도 권력다툼이 있었으니, 중앙 왕실부터 시작해서 변방 지역까지 어디 하나 인적 교류가 끊임없이 일어났던 동아시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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