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로마노 과르디니

노년의 삶은 말하자면 세잔의 정물화와 같은 성격을 얻게 됩니다. 여기 테이블이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접시 하나가 놓여 있고, 또 접시 위에는 사과 몇 개가 놓여 있습니다. 그 밖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환한 조명을 받으며 뚜렷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더 물어볼 것도 대답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비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것이 직접적인 그것-자체 이상의 무언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밀이란 본디 투명성에 속하는 게 아닐까? 존재자가 오직 어떤 심연을 자기 안에 품고 있음으로써만 모조품과 구별된다면, 그러한 심연을 이루는 것은 바로 비밀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존재 자체가 비밀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사물과 과정들이, ‘삶’이라 불리는 사태 전체가 비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 삶 속에서 일어나는 비밀의 파동을 교묘한 이해의 기술 따위로 제거하려는 철학자는 나쁜 철학자입니다. 철학자는 오히려 그 파동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이 파동이 계속 뚜렷해지는 과정을 체험해야 합니다.  -<삶과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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