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슬라보예 지젝

니체는 햄릿에 관해 ‘사람이 진심으로 광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 햄릿은 무슨 뜻인지 알까? 확신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적었다.(…) 그에게 고통을 주고, 미치게 만들었던 것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그의 의심과 클라디우스의 죄에 대한 궁극적 증거 찾기는 그것이 확신을 벗어나는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 참기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더욱 극단적인 방법은 현실감을 잊는 것이다. 폴 러셀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이르프나 솜강 등지에서 벌어진 참호 전투에 대한 분석에서, 바로 코앞에서 수만명이 죽는 모습을 목격한 군인들이 당시 상황을 영화처럼 여겼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잔혹한 사람들의 노력에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전체 상황을 실제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어이가 없었고, 왜곡되어 있었으며, 잔인하고, 불합리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전쟁을 영화라고 생각해야만 끔찍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진정한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아야만 명령을 따르고 군대에서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었으며, 현실세계가 여전히 합리적이고 정신병원과 다르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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