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말하지 않는 역사는 없다. 아무리 역사를 불태우고 찢고 속일지라도 인간의 역사는 침묵하길 거부한다. 지금의 시간이 그것을 원하든 않든 알든 모르든 간에, 지나간 시간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서 지금의 시간 속에서 고동친다. (…) 기억이 진정 생생히 살아 있을 때는 역사를 가만히 바라보지 않고, 역사를 만들라고 서로 등을 떠민다. 따분함을 느끼는 박물관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 기억이 살아 있다. 그리고 기억은 공기 속에서 우리를 숨쉰다. ‘망각을 망각한다’. 에스파냐 작가 라몬 고메스 델 라 세르나는 너무도 기억력이 나빠서 어느 날 자신이 그렇게도 기억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기억해낸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를 기억함은 과거의 저주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고, 현재의 발목을 붙잡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유롭게 길을 가게 하기 위함이다. 몇 세기 전만 해도 ‘기억하다’라는 말은 ‘깨어나다’와 같은 뜻으로 쓰였고,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그 의미 그대로 쓰이고 있다. 깨어 있는 기억은 우리들처럼 모순된다.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변한다. 기억은 닻이 아니라 캐터펄트가 되려고 세상에 왔다. 기억은 출발항이 되고 싶어하지 도착항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억은 그리움을 증오하지는 않지만, 희망과 그에 따른 위험과 변화를 더 좋아한다. 그리스인들은 기억이 시간과 바다와 자매간이라고 믿었는데, 그들이 옳았다.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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