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 표트르 크로포트킨

우리는 ‘자유의 남용’을 겁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복종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들만큼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실책과 오류를 범합니다. 후자는 사회교육을 받았지만 자신의 이성이 이끄는 방향으로 행동하려고 애씁니다. 잘못 이해되고 특히 잘못 해석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이념은, 특히 연대성의 개념이 충분히 수립되지 못한 곳에서, 사회적 양심을 분노하게 만드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자유의 원칙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될까요? 해방된 출판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검열을 옹호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유의 남용’이 이런 사람들의 견해에 찬성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까요? (…) 반사회적 행동을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개인은 자신을 위해, 국가는 모두를 위해’와 같은 규칙을 거부하고, 우리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충분한 용기를 스스로 찾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투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투쟁은 삶입니다. 그때 그런 투쟁은 우리가 대부분의 행위에 대해, 이미 확립된 개념의 절대적 영향 하에서 하는 것보다 더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이를 통해, 통용되고 있는 많은 도덕 개념들은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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