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마이너스

[니체 마이너스] 13주차 후기

작성자
hilde
작성일
2019-12-23 13:46
조회
182
오랜만에 태미 샘이 [니체 마이너스]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래서인지 세미나 분위기가 밝아진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세미나에 나오겠다고 하니 반갑다. 13주차 세미나에서 우리는 니체가 과학을 비판하는 지점, 기계론적 영혼회귀와 니체의 영혼회귀와의 차이점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채운 샘의 강의는? 아쉽게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채운 샘의 강의가 기대된다. 우리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도 있고 토론하면서 그냥 넘어간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도 있고 그것에 대한 채운 샘의 생각도 들을 수 있기에.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번역에 비문이 많아서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고 투덜댔지만 우리의 집단지성을 이용해 한 문단씩 해석해 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자, 그럼 먼저 니체가 과학을 비판하는 지점에 대해 살펴보자. 니체는 과학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과학적인 공리주의와 균등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공리주의와 균등주의는 논리적 동일성, 수학적 균등성, 물리적 균형을 절대시하기에 미분화된 차이에 대한 사유를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과학은 니체가 중시하는 힘의 참된 이론을 반영하지 못한다. 힘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행위를 추동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동일하지도 균등하지도 않다. 그것은 어디로 어떻게 뻗어 나갈지 모르는 일종의 미지수인데 그것을 척도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과학을 니체는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과학적 경향이 현대 사유인 허무주의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았다. 과학과 허무주의의 결합, 거기서 생산되는 것은 ‘아디아포리adiaphorie’의 원리다. 그 원리는 양들을 균등화시키며 차이를 부정한다. 양들을 균등화시키며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과학이 반응적 힘에 기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과학은 바로 이러한 반응적 힘들로부터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소임으로 삼는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은 ‘영원회귀의 기계론적 긍정과 열역학적인 부정’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들뢰즈에 의하면 기계론은 영혼회귀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 기계론은 영원회귀를 긍정하지만 ‘그로부터 양적 차이들의 최종 상태를 최초 상태와 동일한 것으로 고려함으로써 영원회귀를 동일한 것의 반복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기계론은 사물의 운동성, 차이성을 배제하고 균등성과 동일성을 재생산한다. 열역학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총량이 불변인 양적 차이들을 무화시키는 것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결국 기계론은 동일성의 보존을 열역학은 차이의 무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과학적 원리가 허무주의와 연결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과학이 차이성을 무시하고 균등성과 동일성만을 생산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의문이 생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인간은 균등성과 동일성을 중시하기에 과학이 동일성과 균등성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우리는 차이성을 오히려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과학적 원리는 우주론으로서의 영원회귀와는 동떨어져 있다. 우주론은 동일성을 지향하는 회귀가 아니라 미세한 차이를 생산하는 반복이다. 니체의 영혼회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니체의 영혼회귀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처럼 되돌아오지만 미세한 차이가 생성된다. 그런 사실은 우리도 감지할 수 있다. 매해의 사계절은 매번 다르게 작동된다. 작년의 겨울과 올해의 겨울에는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온도, 바람의 강도, 강수량 등의 차이로 작년과 올해의 겨울은 동일할 수가 없다. 이처럼 니체의 ‘영원회귀는 같은 것의 영속성도, 균형 상태도, 동일자의 머무름도 아니다. 그것은 차이의 반복 원리, 즉 아디아포리의 반대이다.’

한 가지 더 첨가하자면 영원회귀의 동일성과 과학의 동일성은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영원회귀의 동일성은 사계절처럼 순환의 반복성을 말하면서 그 속에서 차이남이 생기지만 과학의 동일성은 차이성을 제거한다. 과학의 동일성은 차이를 생성하는 우주론과 모순되므로 허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인간은 우주론적 순환의 사유를 통해서만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니체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 주에는 ‘권력의지는 무엇인가?’(102쪽)와 ‘니체의 용어’(107쪽)를 읽어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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