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4.16 소생 역사조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20-04-21 16:53
조회
108
4.16 소생 역사조 후기

“주제도 없는 주제에~” “주제는 있니?” 라고 불리는 저희 조는 오늘 이 불명예를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조 주제와 글 쓰는 방식에 대해 얘기를 나누긴 했는데, 토론 시간엔 뭔가 있었던 것 같더니 정리하려고 보니 구도가 잘 안나오네요. 일단 쓴 글들을 모아보면 경제적 문제, 앎의 문제, 청년, 중년이 느끼는 정치 감성의 문제 등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정치’에 대한 주제로 모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존재의 조건과 삶 모두가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지만 특히 저희가 읽은 텍스트들과 연결해 보면 반추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지요. 또 하나는 세대에 대한 것인데, 텍스트를 읽고 느끼는 부분이 4-50대와 20대가 매우 다른 지점이 있었습니다. 서로 고양되는 지점도 다르고, 어떤 부분은 아주 냉소적으로 보는 지점도 있어, 이런 걸 대담 형식으로 구성해 글을 써보면 어떨까, 라는 논의를 했습니다. 차이점들을 좀 더 확연히 드러내는 데 용이할거란 생각에서였죠. 대담은 무엇보다 질문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래서 다음 시간에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심으로 질문을 뽑아보는 것까지 얘기 나누었습니다. 마지막 주 발표가 주제 발표에서 조별 학습 내용 공유 발표로 바뀌었는데, 텍스트를 다시 정독하면서 질문을 뽑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역사 팀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3,4,5,장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1905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 투쟁을 준비하며 1901-2 에 씌여진 글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책의 서문에서는 이 책의 주요 주제가 ‘정치 선동의 성격과 주요 내용’ ‘우리의 조직적 임무’ ‘전 러시아적 전투 조직을 여러 지역에 동시에 건설하는 계획’ 에 관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서문을 통해 보면,  1901년 6월 해외에 있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조직이 모여 모두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의견 대립으로 성과 없이 끝이 났습니다. 통합을 위해, 대강의 원칙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의견 대립은,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레닌은 이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합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맑스주의의 내용을 수정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새로운 과제를 찾아야 한다는 베른슈타인의 주장과 내각에 들어가 인민들의 생활 개선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밀레랑의 태도 모두를 “기회주의” 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비판의 자유’를 말하는 자들이었으나, 레닌이 보기엔 사회주의에 부르주아적 사상들과 부르주아적 요소들을 도입할 자유로 보였던 것이지요.

일부러 자신의 눈을 감아 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주의 내의 새로운 비판적경향이 기회주의의 새로운 변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17)

러시아내에서도 ‘비판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이었고 그 동맹의 기관지인 <노동자의 대의>였습니다. 이 잡지는 ‘경제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노동자들은 정치 투쟁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노동자운동과 이를 지도하려는 사회민주주의 운동 모두 당장은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죠. 경제투쟁은 작업장의 상황을 폭로하는 ‘경제 폭로’를 지렛대 삼아 벌이는 투쟁입니다.

그러나 레닌은 노동자의 활동성을 촉구해야 한다는 경제주의자들을 비판하며 지식인의 활동성을 강조하며, ‘전면적인 정치 폭로’에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치 폭로란 경제적 착취를 포함해 뇌물에 찌든 관리, 폭력, 전횡, 권리박탈 등을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행위입니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억압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중략) 이 같은 억압이 각각의 구제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를 선동해야 한다. (중략) 전면적인 정치 폭로 … …"(85)

레닌은 <노동자의 대의>에서 주장하는 노동조합주의 정치인 기회주의적 정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주장합니다.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운동이란 존재하는 사회 체제의 종식을 향한 것이고, 국가에 대한 도전입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활동은 노동자들이 정치 투쟁에 나서도록 독려할 수 있는 ‘정치 교양’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경제주의자들이 촉구하는 ‘노동자의 활동성’이 아닌 ‘지식인의 활동성’이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혁명적 이론이 없다면 혁명적 운동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꾸려는 ‘혁명적 운동’ 이기에 그에 맞는 ‘혁명적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선전해 낼 도구가  ‘러시아적 신문’ 입니다. 경제주의자들에 맞서 ‘모든 것을 생각하도록 각성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생생한 정치 활동은 생생한 정치 선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정기적인 신문 배포를 통해 정치 교양을 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231쪽 참조) 이 때의 신문은 ’집단적인 선전가, 집단적인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조직가‘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저는 요즘 이 책들을 읽으며, 우리 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맑스와 레닌이 프롤레타리아트에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부르주아에 계급적으로 착취 당하며 노동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삶의 양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안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부르주아적 욕망을 지향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시대에, 당위적인 언어가 아닌, 한 발을 내딛는 것, 저희 조가 봉착해 있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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