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4월 16일 예술팀 후기

작성자
이현숙
작성일
2020-04-21 19:28
조회
133
 

 

                                                                                                       예술은 창조적 노동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유대도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점점 ‘언(컨)택트’ 일상이 외려 자연스러운 분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작금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대면 자체를 제한하고 삼가는 느낌에서 얼핏 예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국이야 어지럽거나 말거나 봄은 새치름하니 순하고 곱습니다.

예술팀에서는 ‘노동과 예술’이라는 주제 하에 각자가 가진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작품)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수동적인 향유자로서 작품을 소비해온 터라 그렇다면 과연 나에게 ‘예술(순수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감각적으로 소비했을 뿐 한 번도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 느닷없이 맞닥뜨린 ‘생각하는 노동’은 한없이 버겁기만 합니다. 경험적 토대와 사유가 미약한 데다 수직적이고 평면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인 듯합니다.

이번 주에는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 2부 루카치와 브레히트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만 잘못 알고 이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하여 부득이 다른 분들의 발제와 몇 가지 자료를 참고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후기로 남깁니다. 이 책의 2부는 같은 마르크시즘 계열 이론가인 루카치(헝가리 작가, 1885~1971)와 브레히트(독일 극작가, 1898~1956)의 리얼리즘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토대를 제공한 사람이 루카치라고 하는데요. 그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 근거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노선이 예술의 내용이 되어야 하며, 그 내용에 부합하는 예술적 형식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의 예술관은 “마르크스주의 예술관을 협소하고 경직되게 해석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예술관은 리얼리즘과 표현주의에서 벗어나 예술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고 했습니다. 이 논쟁은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예술의 창조적 힘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더 큰 창조적 과정에 기여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브레히트는 루카치에 대해 형식주의라고 비판합니다. 루카치는 고전주의처럼 바람직한 내용과 그에 걸맞은 형식적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민중의 예술적 역량은 미숙하므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지지하는 교육받은 계급의 미적 기준, 즉 기존 사회의 미적 기준이 다시 새로운 사회의 미적 기준으로 재활용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브레히트는 “루카치식의 리얼리즘은 예술적 실험들을 억누르고 동시에 정치적 혁명화의 가능성도 억눌러서 의도와는 반대로 대중을 보수화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레히트의 연극 기법인 소격 효과(낯설게 하기)는 연극을 보는 관객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함으로써 동일시와 몰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야 대중은 기존의 미학적, 정치적 규범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는 ‘규범적인 것’의 ‘소외성’을 보여줌을 통해 일상의 외양과 역사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 같은 대결을 부각시킴으로써 그의 관객들에게 극장 밖에서 행동으로 활성화되기를 희망했”습니다.

“루카치는 역사적 ‘총체’를 바라보는 예술가를 상정하고 대중을 이끄는 ‘전형’을 보이는 당을 중시한 반면, 브레히트는 루카치와 같은 엘리트주의가 일으킬 소외를 비판하며 예술가의 특권적 위치를 버리고 공장 노동자와 유비될 만한 또 다른 노동자로 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술은 ‘열려져’ 있어 관객에 이해 완성되어야 할 것이지, 작가의 모순 화해로 ‘닫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시즘에서 예술의 대상은 사회적 현실입니다. 예술가는 사회적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예술작품 속에 담아서 예술작품의 향유자인 대중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대중의 정치의식은 성숙되어 정치적 실천의 주체로 성장할 것”입니다.

예술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모두 아우른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능동성을 가진 주체로 창작자이고, 그 작품은 객체입니다. 또 예술가가 작품 활동을 할 때 소재(주제)로 삼는 대상이 있을 테고, 그 작품을 감상하는 소비자(향유자)도 있을 것입니다. 예술은 이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예술의 대상, 예술가, 작품, 향유자까지 모든 계기의 상호작용”을 강조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미적 감각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 지워진 것인지 알 길 없지만, 그 기준이 어디서 유래해 어린 마음에 자리 잡았던 것일까요. “그 과정은 아름다움과 예술이라는 영역 밖의 세상으로, 예술이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반성까지를 포함하는 큰 문제로 우리를 확장시킬 것”입니다. “예술이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분석, 반성하고 혁명적으로 변경함으로써 예술의 바람직한 효과를 낳으려 했던 마르크스주의 예술론”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다음 주에는 각자의 고민을 조금 더 구체화해서 자신의 문제의식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형식으로 ‘입장문’을 써옵니다. 그리고 발터 벤야민 연구자인 수잔 벅 모스의 『꿈의 세계와 파국: 대중유토피아의 소멸』 2부까지 읽고 간단히 발제, 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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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1 20:57
    평소 예술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그것들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는 세미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예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