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4월 23일 아나키즘팀 후기

작성자
혜연
작성일
2020-04-24 23:15
조회
118

아나키즘조가 이번 주에는 지영샘이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시지 못해 규창샘과 얘기를 나누었네요. [빵의 쟁취] 나머지 부분을 읽고 만났습니다. 지난 주 토론 때 규창샘이 하셨던 질문 “민중은 코뮌을 통치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던 저는 크로포트킨의 도덕원리의 기원에 관한 것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인간을 보는 관점, 그리고 전체 과제물에 있었던 트로츠키의 인간에 대한 사유가 서로 공명되는 지점이 있어 정리한 후 함께 읽으면서 토론을 시작하였습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른 지점에 있지만 인간이 전위적 선도성이나 전제적 지배권으로 장악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즘과 연결되는 부분을 잡아서 써 본 에세이 개요에 규창샘이 여러 가지 팁을 주셨는데 감사했습니다.


규창샘은 지난주부터 에세이를 발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치적 행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투표를 해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 회의적이었고 나의 정치적 선택이 무효가 되는 경우에서 오는 허무함도 있었는데, 노자를 공부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이미 정치일 수 있고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정치적 활동은 유효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토피아를 넘어서는 정치적 활동’을 주제로 아나키즘과 무위지치를 연결해서 생각을 좀 더 해본다고 하십니다.


책에 담긴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크로포트킨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가 저에게 처음에는 늘 들어오던 윤리적 당위의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좀 식상하기도 하고, 외부로부터 선언적으로 다가오는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크로포트킨이 문명을 유지하기위해 인류가 애쓴 사례들을 다양하게 세세히 명증함으로써, 그 어떤 것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래되는 공동의 재산이 아닌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란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해나가니 내가 가진 것은 내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여겨왔던 생각이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태어난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막대한 유산을 이용할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이 아이는 성장하면서 이미 축적된 자본 덕택에 자신의 노동의 약간을 더함으로써 나름의 부를 획득하게 되겠지요. 이 아이가 획득한 부를 온전히 이 아이의 능력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풍요는 소수 사람들의 능력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기여한 것이고 또 인간이 기여한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모두가 공정히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롭게(평등하게) 공존해야 하는 이유로서 규창샘과 제가 함께 감명받았고 겸손으로 이어진다는 공통의 느낌을 나누었습니다.


규창샘이 흥미롭게 읽으셨던 부분이 있는데요, ‘파리의 어느 구역에 있는 집 한 채는 수천 파운드의 값이 나간다. 그 이유는 특정한 그 집에 그만한 가치의 노동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집이 파리 시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즉 수 세기 동안 노동자들, 예술가들, 사상가들, 학자들, 문학인들이 산업, 상업, 정치, 예술, 과학의 중심이 된 오늘날의 파리를 만드는데 공헌했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가 과거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고, 문학 작품들 덕분에 파리에 있는 거리 이름들이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가 18세기 동안 이어져 온 사람들의 고된 노동의 산물이고, 50여 세대에 걸친 전 프랑스 국민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신박하지 않습니까!


빵의 쟁취를 읽고 난 후 저의 에세이의 방향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의 통념과 완고한 태도로 타인의 삶에 섣불리 개입하려 했던 모습을 발견하고는 타자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는데 코뮌적 존재에 대한 사유없이는 타자를 제대로 만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나키즘과 코뮌적 존재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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