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 에이징 세미나

11. 5 예스에이징 7주차 공지 '삶이란 어렴풋한 것'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10-30 20:06
조회
148
지난 후기에 난희쌤께서도 쓰셨고, 저희 토론에서도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죠. “‘예스 에이징’이라고 할 때 ‘예스!’할 ‘에이징’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어떤 나이듦을 긍정할 것이냐는 거죠. ‘나는 주름이 생겨도 괜찮아’, ‘병들어도 괜찮아’ 등등 미용이나 질병의 차원에서 얽매이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에이징(나이듦)’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에이징’은 우리 몸에 일어나는 변화이고, 몸의 변화는 곧 관계 맺음의 변화와 직결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혹은 어떤 식으로 관계가 변형되든 상관없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고민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전반적으로 “예스 에이징!”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저희 나름의 해석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노년뿐만 아니라 청년, 중·장년 등 인생의 여러 국면들을 구분하고 규정할 구체적 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청년’으로 규정하는 저 자신도 제가 어떤 점에서 ‘청년’이라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저 ‘28살이면 그래도 아직은 청년이라 할 수 있겠지?’, ‘아직은 이렇다 할 골병도 없고, 체력도 쌩쌩하니 청년이겠지?’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들이 청년과 이후의 국면들을 구분 짓는 독특함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청년’을 규정할 수 없다면, 이후의 삶들에도 마찬가지겠죠.
“나라는 존재는 한번 몸을 받으면 곧장 죽지는 않더라도 소진되기를 기다리며 다른 존재를 따라 움직이는데 밤낮으로 잠시의 쉴 틈도 없어 어디서 마치는지를 알지 못한다. 어렴풋한 가운데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 자신의 운명을 알고는 있다 하더라도 이전의 모습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나는 이 몸을 가지고 날마다 변화와 함께 나아가고 있다.” - 《장자》 〈전자방〉 3장

장자는 우리의 삶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치는지, 어떤 국면들을 겪으며 어디로 향하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장자가 말한 대로, 삶이란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항상 어렴풋할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렴풋하다고 해서 되는 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분명 우리는 특정한 삶의 국면을 겪는 중이고, 여러 관계들에 머리를 아파하며, 몸이 보내는 불편한 신호들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놓인 관계와 주어진 몸, 이행 중인 삶의 국면들을 진단할 수 있는 앎을 스스로 구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청년이라면 어떤 관계와 몸, 삶의 국면을 겪고 있는지를 진단할 수 있어야겠죠. 그것은 비단 ‘청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세대들과의 관계도 포함이 돼 있을 겁니다. 나이듦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꼭 어떤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지를 질문하지 않아도 청년으로서 어떻게 변화(에이징)를 겪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479쪽(10장 젊은 노인)~639쪽(11장 노인)을 읽어 옵니다! 어느새 저희 세미나도 막바지에 이르렀네요. 각자 어떻게 에이징을 예스할 것인지 질문 하나씩 가져가면 좋겠네요! 그럼 다음 시간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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