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4학기 여섯 번째 시간 공지/ 동정의 기술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11-04 12:52
조회
167
공지가 많이 늦었습니다!

왜 성(性)일까? 기독교인들에게서 성은 매우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단순히 성욕을 죄악시하고 성적인 행위들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매우 정교하게 ‘동정’을 가치화했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이는 “개인과 그 자신의 성적 행위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의미”(300쪽)입니다. 푸코는 동정의 이러한 의미화로부터 성에 대한 비난을 볼 것이 아니라 이것이 “주체와 성적 행동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스나 로마의 도덕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중요성을 부여하는 전체적 맥락과 연결”(300쪽)되고 있음을 보라고 주문합니다.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고대인들에게 성은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성적 쾌락은 강렬하며 에너지를 소진시킬 수 있고 후손의 생산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배려의 주체는 아프로디지아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것들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놓여 있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플라톤은 처음 시라쿠사에 방문했을 때, 그 고장 사람들의 무절제함을 비판하며 식욕과 성욕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문제 삼습니다. 고대인들에게 성관계, 성적 욕망은 그 자체로 긍정하거나 부정해야 할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에 속하는 하나의 자연적 요소였죠. 문제는 그것에 지배당하게 될 경우에 초래되는 위험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인들은 성적인 욕망을 비난하면서 그것을 매우 특별한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매우 현란한 신학적 해석의 기예가 펼쳐집니다.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한 것은 창조주 신입니다. 인간을 두 개의 성별로 창조한 것도 신이죠. 그리고 성경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양성의 결합은 천지창조로부터 필연적으로 기인한 것인가? 인간이 천사들과 함께 살았던 낙원에도 성관계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양성의 성적 결합이 인류를 번성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며 이것은 타락 이후에 시작되었다면, 타락은 좋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의문들이 제기됩니다.

이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낙원에서의 인간은 무한히 번식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양성의 결합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탈선을 하고 천사로서의 가치를 상실함에 따라 육체적 결합은 번성과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대두되었다. 즉 하느님이 양성을 구별한 것은 사실이지만, 양성의 결합에 의한 번식은 하느님과의 분리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타락 이후 인간에게 죽음의 운명을 갖게 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종족을 유지하고 번성케 하는 방법은 육체적 결합과 출산이다. 따라서 육체적 결합과 출산은 그러한 죽음의 운명과 분리불가능한 것이다. 곡예와도 같은 논리로 인간의 삶에 속하는 한 요소인 성(性)을 삶이 아니라 죽음에 관한 것으로 바꾸어버린 것이죠. 이렇게 신학적 해석의 과잉 속에서 동정은 정념과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단순한 욕망의 포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됩니다. 동정은 현세에서 내세를 사는 것,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연쇄를 끊는 것이 됩니다.

동정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저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성적 욕망은 분명 우리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강렬하고 우리의 신체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러나 우리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를 악으로 규정하고 삶에서 제거하고자 할 때, 우리는 오히려 그것에 의해 규정되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육체의 고백》 2장 2번 ‘동정과 자기인식’을 읽고 과제를 해오시면 됩니다. 난희샘께서 간식을 맡아주셨습니다.
전체 1

  • 2021-11-05 21:13
    저는 동정, 한점 티끌없는 육신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이들이 처음부터 '알면서' 설정해놓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치 우리시대 '명품'처럼 그것은 상징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죠. 명품은 그것을 가지고 싶도록 하고 선망하게 만드는 기제죠. 명품을 가질 수 없는 내 삶은 얼마나 비루한가. 동정의 거울에 비친 내 육신은 얼마나 더러운가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