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 세미나

중계세미나 4주차 후기

작성자
손호진
작성일
2021-05-21 10:54
조회
234
중용세미나 4주차 후기

어느덧 중용 마지막 세미나 시간이었습니다. 중용의 1장 첫구절인 천명지위성,솔성지위도,수도지위교를 시작으로 달려왔습니다. 이번주는 중용 21장부터 마지막 33장까지 읽었습니다.

우선 성(誠)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은남샘께서 저에게 성(誠)의 개념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짧게 주역의 군자종일건건이 생각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성실하다는 의미의 성(誠)자에서 군자종일건건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군자종일건건은 무엇일까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것이 성실함일 거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물론 성실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요즘에는 그런 성실함도 타인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성실하다고 하지만 시키는 것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데 혼자만 주구창창 일을 해서 남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때론 그것이 민폐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마주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공부이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해 나가는 것이 誠이 의미하는건 아닐까? 성찰한다는건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익숙한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끊임없이 하는 것 역시 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오토바이는 막히는 구간도 잘 빠져나가고 시간적 효율성이 뛰어나 제가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중 하나입니다. 겨울에 눈길 넘어지는 사고도 있었고 며칠전 사고가 있었습니다. 입원을 해야해서 친구에게 강아지들도 부탁하고 가게와 집에있는 짐좀 챙겨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평소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것이 늘 걱정스러웠던 친구는 제 동생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고 여차저차 해서 온가족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걱정하실거 같아 오토바이 타고 다닌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이제 모든 사실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걸 알지만 나는 왠지 사고가 나지 않을 것만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사고가 나혼자 잘한다고 안나는건 아닌데 말입니다. 이번 사고처럼 뒤에서 불가항력적인 사고도 있으니 말입니다. 차사고도 위험하지만 오토바이는 보호장비가 없이 몸으로 감당해야해서 자칫 큰사고로 이어진다는걸 알고있고 타는 횟수가 많을수록 사고 확률도 늘어나겠지요.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고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사고로 그동안 지켜만 보고있던 사람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 제 걱정이 돼서 하는 이야기이겠지요. 모두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는걸 알면서도 편안함이 더좋아 익숙하게 행했습니다. 그것과 마주하고 결별하는 것. 익숙한 것을 의심하고 결별한다는건 혼자서는 할 수 없는거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사건과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다른 시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주역을 공부하고 기미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되니 이것이 큰사고가 나기전 기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속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한 사고의 위험은 계속 되고 그것은 더 커질 수 있기에 아쉽지만 퇴원후 오토바이는 팔아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2014년에 개봉한 역린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현빈이 정조로 나온 영화입니다. 그곳에 중용 23장이 나옵니다.

작은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나오고 겉에 배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도 이 말이 나오면서 현빈의 마지막 독백으로 끝이납니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그럼 작은일은 무엇일까요? 이장을 얘기할 때 정우샘께서는 그동안의 직장생활에 미루어 많은 사람들이 폼나고 자기를 드러내는 일을 하기를 원하지만 정작 작고 하찮게 여겨지는 일들을 깔끔하게 하는 사람들이 어떤일을 맡겨도 잘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말에 모두 공감을 했습니다. 정랑샘께서는 학교에서 상위권자가 문서를 만들어 올 때 매뉴얼 형식을 가지고 자기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명령권자의 말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초임 교사들은 상담시간을 기재하는 행위등 세세한 것을 너무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승진할 때 수첩을 가져와서 그것을 반영하는데 기인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럼 작은일이란 무엇일까요? 정우샘께서 말씀하신 작은일과 정랑샘께서 말씀하신 사례는 층위를 달리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의 정랑샘 얘기에는 방향성을 보지 않고 작고 소소한 일을 하려다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칠수 있다는 것과 그런 작은일로 자신의 권위를 부여하는 상급권자의 행태에 대한 일침이셨을 것이고 정우샘 말씀은 아마도 당장 드러나는 업무와는 상관없지만 소홀히 할 수 있는 일들일 것입니다. 예를들어 회의후 정리를 비롯하여 티가 나지 않는 세세하게 필요한 일들을 가리키는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정옥샘의 예가 인상깊었습니다. 공동체에서도 글을 쓰거나 남들 보이기에 폼나 보이는 일과 밥을하고 청소를 하는일등을 예로 드셨습니다.

저는 이번 세미나를 하고 작은일을 할 수 있는 건 우선 그 작은 일이 눈에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일이 눈에 보이려면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세계와는 결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됩니다. 위에서 성(誠)의 개념을 언급한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사심으로 그 작은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럼 사심이 있는 것은 어찌 알까요? 그런일을 하며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면 사심일까요? 뭔가 기대를 하는게 사심일까요? 저는 이 사심에서 더 깊게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저 작은일을 할 때 기꺼이 하는 마음을 내라는 표현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공부들이 그 작은일을 내 눈에 보이게 하고 지속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생각해보면 사실 크고 작은일은 없는데 왜 그것을 크고 작은 것으로 나누는 걸까? 라는 의문도 생깁니다. 공부를 하며 무언가의 해답을 얻고자 하고 그것으로 인해 삶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항상 달라지고 변하는 상황속에서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정답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인거 같습니다. 그러면 답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왜답을 얻고자 하는걸까? 나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야만 한다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해결되지 않는 사항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고 하는 과정들이 기존의 나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다르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형태로 나타나는 그것이 공부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한들 삶을 살아가며 또 크고 작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살아있는한 계속 일어나는 일일테니까 말입니다.

마직막으로 26장에 나오는 지성무식(至誠無息)으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성은 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誠)의 개념을 학인들과 나누며 어렴풋이 정의 내렸지만 끊임없이 자기를 들여다보고 질문하는 과정을 쉼없이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전제 되어야 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 사물과의 관계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부족함이나 미처 알지 못했던 점들을 인정하는데부터 시작해야 할것같습니다.
전체 6

  • 2021-05-21 11:48
    병원투혼 중 후기를 올리셨네요. 화요일 사고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지성으로 쓰신 후기라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음을 흔드네요.
    지성은 쉼이 없다고 하는데, 정(靜)한 것도 쉼이 없는 형태이겠죠. 정동의 변화만이 있다고 한다면요. 이번 사고로 기미를 읽으셨다고 하시니, 지금의 사고가 더 큰 병이 되지 않을 기미도 잘 포착하셔서 靜도 無息임을 경험하는 기회로 삼으시길요. 후기 감사히 읽었습니다.

  • 2021-05-21 16:10
    사고마저 공부의 기회로 삼으시는 선생님의 투혼 ㅠㅠ 잊지 않겠습니다!! 성실함이란 공부하면서 만나는 균열을 직시하고 만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이 그런 것처럼 생생불식하며:)

  • 2021-05-21 19:41
    오토바이 탄다고 해서 와 멋지다 했는데...이어진 글을 보고ㅠ 이번기회에 오토바이에 익숙해진 몸을 다르게 사용해보신다고 하니 저도 덩달아 기뻐지네요~ 작은 일, 문제해결상태 등 샘이 여러 관념과 싸우고 있는게 느껴지네요~ 호진샘 잘 읽었슴다~~

  • 2021-05-22 10:26
    사고가 나서 후기 정리하기가 힘드시다는 말을 듣고 우리가 공부한게 하필 성이고 자강불식인데 이럴때 뭔가 정리하는게 낫지 않냐고 했던 말을 서운하게 듣지 않으시고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도움이 많이 됐고 저에게도 큰 숙제입니다.

  • 2021-05-23 08:37
    공부가 삶과 연결된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행동이 삶이자,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쌤의 건강 회복을 기원합니다.^^!

  • 2021-05-26 06:55
    오 부상투혼 후기 잘 읽었습니다. 잘 안다고 자신하지만 사실 가장 잘 보지 않는 (혹은 보고 싶지 않는) 내 마음을 늘 세심히 성찰하는 것이 성(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만 해도 남의 문제는 명백히 잘 보고 쉽게 떠벌이지만 정작 내 문제는 온갖 변명을 들어 축소하거나 감추려는 모습을 봅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이렇게 스리슬쩍 숨길 수 있다고 믿는 그 마음을 무엇보다 정성을 다해 들여다보라는 말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공부한 것으로 늘 자신의 마음자리를 보라는 말을 들었는데 호진샘 글 읽으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십니다. 쾌차하시고 곧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