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 세미나

중계세미나 5주차 후기

작성자
희진
작성일
2021-05-26 21:27
조회
196
지난주부터 “주역계사강의”(남회근 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역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데 책을 반절만 읽고 참여해서... 이번에도 세미나에서 오고 간 많은 얘기를 담지 못하고 제가 꽂힌 부분만 적겠습니다.^^

이번 텍스트 중 가장 꽂혔던 부분은 저자가 인생의 가치를 묻는 부분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공자가 명언을 한마디 남겼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천지의 화육에 참여하여 그것을 돕는 것이다.”(66쪽) 화육이란 만물을 만들고 기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천지의 화육을 보완하여 만물을 돕기 때문에 천, 지, 인을 한데 묶어 우주의 삼재라고 한다고 합니다.(67쪽) 뭔가 거창하고 어렵게 다가옵니다. 솔직히 최근에는 인생의 가치를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예전엔 행복, 사랑, 자유.. 이런 것 정도나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지의 화육을 돕는 데에 인생의 가치가 있다니요. 와, 이거.. 인간에게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큰데...^^ 하면서도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감동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왜 이 부분에서 감동을 느꼈을까요? 아마 지지난 주에 읽은 중용의 지성무식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도올은 이 장을 읽고 중용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사는 이 장에서 천지만물의 모습을 찬탄하고 있는데 도올은 그 구절을 처음 읽고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그냥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데 자사는 무엇에 찬탄하고 도올은 그 구절에서 무엇을 읽었길래 눈물까지 쏟는거야, 너무 감정적인 거 아니야 하면서 말이죠. 이어진 도올의 설명에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장은 천지만물의 지성무식(至誠無息), 즉 천지만물의 ‘지극한 성실함이 쉼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흙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30억년에 가까운 지성무식의 수고로운 작업에 의하여 축적적으로 달성된 것이라네요. “이 지각의 암석권이 수분, 공기, 온도의 기후조건과 고등식물과 토양생물의 종합적 영향에 의하여 장기간에 걸쳐 분해되면서, 매우 어렵게 흙이 형성된 것이다.”(「중용, 인간의 맛」, 314쪽) 우리는 나무를 볼 때 나무가 그 모습대로 있는 것을 그저 당연하게 여깁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도 원래 그래 왔으니 별 수고로움 없이 변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나무를 포함하여 천지만물이 쉼 없는 지극한 성실함으로 지금 모습으로 있다는 겁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올 때 어찌 수고로움이 없었을까요.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매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게 나무의 지극한 성실함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가만히 눈을 감고 느껴봅니다. 천지만물이 지금 모습대로 있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쉼 없는 성실함으로 이 모습으로 있는 겁니다. 그리고 천지만물의 성실함 속에서 지금 내가 생성 중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천지만물은 변합니다. “저기 보이는 인수봉이 영원히 있을 것 같지만 어느 세월엔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묵묵히 그 의연한 자태를 버티고 있는 그 모습에 우리는 신적인 경외감을 표해야 하지 않을까? 자사의 천지예찬은 그것이 덧없는 것일 수도 있기에 더욱 애절한 찬사를 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한 仁한 마음으로 자사의 언어에 눈물을 쏟았던 것 같다.” (같은 책, 314쪽) 천지만물은 변하기에 인수봉도 영원하지 않을 겁니다. 영원하지 않기에, 인수봉이 지금 모습대로 있는 것은 천지만물의 지성무식에 의한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현재의 인수봉에 경외심을 갖게 되고 감사함을 갖게 됩니다.

인생의 가치가 천지의 화육을 돕는 것에 있다고 했을 때 감동한 것은 천지만물에 대한 이러한 경외심, 감사함을 잠깐이나마?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지만물의 지성무식에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탄, 이미 하고 있었겠지만 그것에 대한 자각이 일종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지의 화육을 돕는다.’가 굉장히 크게 다가오면서도 무겁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못할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인문 세계의 일체 현상은 단지 길흉회린(吉凶悔吝)의 네 종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61쪽) 그런데 이 길흉회린의 정체를 보면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상(象)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길흉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요? 길흉이란 인위적인 가정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이득과 손실에 대해 반응하는 일종의 심리 현상입니다. (중략) 천지간에는 절대적인 길흉은 없으며 절대적인 옳고 그름도 없고 절대적인 좋고 나쁨도 없습니다.”(61쪽) 저자는 돈을 잃어버린 경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내가 돈을 잃어버렸다면 나의 입장에서는 실이 되고 흉이 되지만 그것을 주워 쓴 사람에게는 득이 되고 길이 됩니다. 그러나 천지의 입장에서는 돈이 필요한 곳에 사용되었고 내가 쓰나 그가 쓰나 마찬가지입니다. 천지에는 길흉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득과 손실에 대한 인간의 상일 뿐입니다.

회(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이 悔자의 진정한 의미는 오직 불교에서 사용하는 번뇌라는 개념을 빌려야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란 고통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귀찮게, 나중에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입니다.”(62쪽) 회(悔)는 기존의 습에 익숙해진 신체가 낯선 힘들에 대해 귀찮게 그리고 불편하게 느끼는 반응입니다. ‘린(吝)’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처럼 길흉회린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잠시 나타나는 상(象)일 뿐입니다. 그것은 계속 변합니다. 천지만물은 오직 지성무식일 뿐입니다. 이것을 자각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몸을 지극히 성실히 하는 게 아닐까요. 그것이 천지의 화육을 돕는 것이고요. 많이 관념적이지만 요기까지^^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곡성만물(曲成萬物)’에 대한 설명입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우주에는 직선이 없으며, 모든 것이 원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원은 태극을 나타냅니다. (중략) 물리학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허공을 향해 끝없이 직진하면 결국 우주를 한바퀴 돌아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이 이치를 이해하면 『역경』에서 왜 ‘곡성만물’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직선이라고 하는 것은 곡선의 한 부분을 잘라내어 인위적인 설명을 붙인 가상적인 것입니다.”(119쪽) 솔직히 모든 것이 원이라는 것이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이 떠오르긴 했는데 연결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이 곡(曲)을 일상의 언어에 적용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역경』을 제대로 배웠다면 일상적인 언어도 다분히 예술적으로 둥글게 사용할 것입니다. 사람을 꾸짖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부드럽게 우회적으로 나무라면 꾸지람을 듣고도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대놓고 ‘머저리 같은 놈’이라고 욕한다면 그 사람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는 모두 머저리 같은 데가 있어!’라고 한다면 그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곡성만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첫 느낌은 ‘곡’이라는 큰 개념을 이러한 사소한 일에 적용하다니.. 왠지 시시하다.. 였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에 배웠던 ‘작은 일에 성실하라’는 것은 이런 경우가 아닐까요. 모든 것이 원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다시 내가 원인이 되어 모두에게로 돌아가는 순환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머저리 같은 모습은 내가 영향을 준 것이기도 하고 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머저리 같은 속성이 나의 속성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그러한 속성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우주에 직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와 상대방을 분리할 때 상대방을 욕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다르게 행동하지 않을까요? 서로에게 머저리 같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천지의 화육을 돕는다는 것도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럼 이번 주에 또 만나요~
전체 4

  • 2021-05-27 09:57
    어머 희진샘 후기 읽으니깐 저는 주역이랑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끌리네요. 담번에도 후기 길게 써주세요.

  • 2021-05-27 13:24
    샘~ 이렇게 후기를 잘쓰시니 또 당첨이 되신듯 합니다. ㅋㅋ 계사전과 중용을 연결해서 사유를 펼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샘 후기에서 제가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부분들을 읽어내고 스스로를 이해시키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 2021-05-27 16:17
    후기 잘 읽었습니다. 중용을 놓지 않고 계사전과 연결해서 밀고 나가니 공부에 도움이 많이 되는 듯 해요. 남회근 말씀 중에 한 놈이라도 패자.한놈을 중용과 연결해서 패 봅시다. ㅎㅎ

  • 2021-05-28 15:07
    어머~ 희진샘이 후기 장인이셨네요. 천지화육을 돕는 인간의태도를 중용의 지성무식과 연결해 풀어주셨네요.
    길흉회린과 곡성만물을 뽑아 설명해 주신것에선 선생님의 마음결이 보이는 것 같아 좋구요.
    공부하러 오시면 얼굴만 뵙다가 중계 세미나를 통해 희진샘과 함께 공부하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