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꽃의 이데아

작성자
정호
작성일
2021-10-10 10:57
조회
173
 

꽃의 이데아

 

장미 정원이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향기 맡아봐. 정말이지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네. 바람 부니까 꽃잎들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거 같아. 여기 좀 봐. 이런 색감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겠어? 역시 자연은 위대해. 만개한 장미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이 착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장미 정원에서 만큼은 아름다움을 온전히 갖고 싶어 한다.

 

왜 그럴까.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변치 않는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누가 가르쳐 준 적 없지만, 일부러 찾아내려고 애쓰지는 않지만,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모든 의식과 사고를 넘어 있을 것이다. 육체가 활동하는 창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거라고, 모든 것에 작용하고 있는 거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이데아로서, 가령 컵의 세계에서는, 컵을 컵이게끔 하는 컵의 이데아로서, 커튼의 세계에서는, 커튼을 커튼이게끔 하는 커튼의 이데아로서 존재한다고 한다. 삶의 모든 사물에는 각각의 이데아가 있고 그것은 어떤 사물을 그 사물이게끔 해주는 거다. 이데아, 아득하면서도 동경되면서도 조금은 환상적인 단어다. 장미를 생각해보면 이데아는 영원한 아름다움이라 할까. 붉은 꽃잎의 본질이라 할까. 피어 있는 동안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향이라 할까. 수천가지의 장미 이름을 몰라도 이건 장미야, 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는 장미의 원형이랄까

 

그런 것들을 어떻게든 만져보고 소유하기 위해 사람들이 절정의 정원으로 모여든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 바쁘다. 이제 사진으로 남겼으니 장미를 소유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이 앨범 속에는 있다고 만족해할지 모르겠다 그 사실은 우리 인간이 영원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의 본질을 잘 모르며 유한한 몸을 갖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원치 않는 유한한 두 발로 무한한 궁극까지 걸어가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사진을 꺼내 들여다보곤 한다. 장미는 벌써 죽었지만 사진 속 장미와 자신은 아름답게 살아 있는 거라고 믿는다. 믿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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