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장자 세미나 5주차 후기

작성자
소정
작성일
2021-07-16 14:11
조회
114
권력과 말하기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신화를 통해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는 샤먼이나 재규어의 변종을 만들어내는 상징적 방식으로 샤먼이나 재규어를 현실의 속성을 잃어버린 마을의 조롱거리로 재탄생시켰다. 이러한 이야기는 권력자의 권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드는 장치를 작동하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는 근대와는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가 발견된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추장에게 말하기는 강제적 의무이고 부족은 추장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침묵하는 추장은 더 이상 추장이 아니다. 그리고 추장의 이야기의 요점은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전통적인 생활규범에 대한 칭송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분들다운 생활방식으로 행복하게 잘살았지. 그분들의 전례를 따르면 우리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추장의 이야기의 요지는 결국 이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공허한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장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기로부터도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력의 말,  권위의 말이 될 수 없다.

원시사회에서 폭력이 권력의 본질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서 권력과 제도, 명령권과 추장을 서로 분리시켜놓은 권위를 갖는 말을 행하는 이들은 예언자들이다. 말하기의 주인인 카시케-샤먼들이 열의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에 부족원들은 언제나 귀를 기울인다. 과라니족의 현자는 “모든 사물은 전체 속에서 하나”라고 언명한다. 그래서  그의 사고 속에서는 소멸하는 모든 것이 하나이다.  하나는 소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유한함의 기호이다. 인간의 세계는 불완전함과 부채 그리고 추함만을 내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러한 하나에 놓이게 된 것을 그는 우리가 진정한 언어의 고향, 즉 신들의 소멸하지 않는 대지이자 사악함이 없는 대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라고 불리지 않는 곳에 도달하고자 전혀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라니족이 경청하는 이는 하나를 떠나 도달할 수 있는 사악함이 없는 대지에 대해서 말하는 이들 현자, 즉 예언자들인 것이다.

원시사회는 국가 없는 사회이지만 원시사회 역시 공업화된 기술 사회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바꿔 말하면 모든 인간 집단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시사회가 최초로 여가 사회이자 풍요로운 사회라는 살린스의 표현은 적절하면서 흥미롭다. 즉 일단 에너지의 필요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나면 원시사회가 그 이상의 것을 생산하도록, 달리 말하면 어떤 목적도 없는 노동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거나 소외시키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질적으로 평등 사회인 원시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활동의 주인이자 그 활동에 의한 생산물의 유통의 주인이다.

원시사회에는 이웃보다 더 많이 일하거나, 더 많이 갖거나, 더 낫게 보이고자 하는 이상한 욕망을 지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전원에게 동등하게 나누어진,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과 재화의 사적 축적을 막는 지속적인 교환은 그러한 욕망, 즉 권력의 욕망인 소유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인 원시사회는 과도한 풍요로움을 향한 욕망을 허용하지 않는다.

원시사회에서 추장의 임무는 개인들, 가족들, 동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추장은 질서와 조화를 되찾기 위해서 사회가 그에게 인정한 위신 이외의 수단은 지니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언변만으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조용히 잠재우고 서로 비난을 멈추게 하며 언재나 상호 이해 속에서 생활했던 조상들을 따르고자 설득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추장의 말은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노력이 성공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원시사회에서 추장제와 언어활동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말하기는 추장에게 부여된 유일한 권력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말하기는 추장의 의무이다.  그러나 추장 이외의 남자들이 하는 다른 종류의 말과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이 남자들은 15~16세기에 수천 명의 인디언들을 이끌고 신들의 고향을 찾아 광적인 여행을 떠났다. 이 카라이들의 이야기는 예언적인 말들이었고 사회 자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인디언들에게 호소하는 매우 반항적이고 전복적인 말들이었다. 악으로 가득한 대지,  즉 현재 살고 있는 사회를 버리고 사악함이 없는 대지이자 신성한 행복으로 가득한 사회에 도달하자고 예언자들이 호소한 것은 사회구조와  규범 체계에 대한 사형선고를 뜻한다. 예언자들이 인간이 사는 세계가  악으로 가득하다고 주장한 것은 권력의 생성이 국가 없는 사회,  원시사회인 투피-과라니 사회를 죽음으로 이끌게 될 불행과 사악함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야만인들은 추장이 추장답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속적인 시도,  즉 통일화의 거부와 하나인 국가를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적어도 그것과 똑같은 정도의 진리로서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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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9 09:36
    추장의 권력으로 사회가 통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게 또 다른 식으로 사회의 질서를 구성하는지 참 신기하더라고요. 그리고 원시부족민들에게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충분한 기술을 갖췄다는 점에서 우리의 기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떤 기술은 더 많은 결여를 생산하는 반면, 어떤 기술은 필요를 충족하는 걸까요? <천지>편에 나왔던 두레박 이야기도 생각나고, 여러 모로 장자와 연결할 지점이 많은 텍스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