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청문회] 2학기 8주차 공지 '국가는 길들임 기계다'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8-10 11:45
조회
94
어느새 이번 학기도 2주가 남았네요. ‘정치’ 혹은 ‘국가’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우리가 이 주제를 각자의 삶에서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 본인은 계속 그런 주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어렵다고 말씀하시지만, 제 느낌에는 그렇습니다. ㅋㅋ 어쨌든 지금은 맛만 보는 수준이지만, 아마 계속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문제의식이 더 촘촘해지겠죠?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문제를 공부하면서 문제의식이 넓어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 학기가 그렇게 마무리됐으면 좋겠네요!

다음 시간에는 《농경의 배신》 끝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평상시처럼 인상 깊은 문제들을 메모하시되, 이번에는 어떤 문제로 다룰지 대략의 개요도 준비해주세요. 남은 시간 동안 또 재밌게 읽고 수다 떨어보죠~

자세한 후기는 호진쌤께 부탁드리고, 대략 토론 때 나왔던 텍스트 내용을 다시 환기해보겠습니다. 일단 저자는 국가가 구성원의 삶을 보호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국가의 성립과 함께 인류가 풍요롭게 살아가는 기술들이 발명됐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고고학적으로 살펴봤을 때, 수렵·채집민의 삶이 정착 농경민보다 풍요롭고 건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농경·관개 기술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국가는 진보와 풍요, 규모로 판단될 게 아니라 삶을 다르게 조형하는 공동체 양식(?) 같은 것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국가가 거대한 길들임의 체계라는 것을 강조하죠. 국가의 독특함은 이전에 서로의 생존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 다양한 생물을 한데 모아놨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길들임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을 배제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국가를 ‘집’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인 도무스로 이해하죠. 이때 도무스는 노아의 방주처럼 수천의 생물을 한곳에 모아놓은 일종의 창고인데, 이곳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공진화가 일어나죠. 저자는 전염병 같은 질병도 그 중 한 결과라고 봅니다. “다종 생물 재정착 캠프는 포유류가 전례 없이 근접해 한데 모여 있는 역사적 집합체였을뿐더러 포유류에 의지해 살아가는 온갖 박테리아, 원생동물, 유충류, 바이러스의 집합체이기도 했다.”(147) 그러고 보면, 지금 코로나19의 발생도 세계를 하나의 도무스로 통일시키려는 욕망의 결과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제는 국가 간의 장벽들도 해체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 다양한 기후에서 자라던 것들이 한곳에 모이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도 세계에 경계가 없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길들임은 도무스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해집니다. 가령, 도무스 안에서 길러지는 식물은 이후에 인간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장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의 본성을 거세당한 것이죠. 장자가 국가를 비판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는 신분과 관계없이, 어떤 삶을 누리든 타고난 본성이 훼손된다고 보죠. 이는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역량을 방지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관점에서는 국가로 환원되지 않는 수렵·채집민이 적입니다. 여기에 실제로 수렵·채집민들이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령, 그리스인들이 주변의 비(非)그리스인들을 바바리안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들의 언어가 자신들과 다름을 ‘바-바’라고 조롱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국가 안에서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일련의 흐름들이 있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과밀화된 내부를 관리하는 ‘인구 기계’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성벽은 외부에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적의 침입을 막기보다 내부의 노동력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예방합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만리장성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보다 백성들이 나라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저자는 문자, 곡식 위주의 일상생활 같은 것들도 국가의 체계 속에서 발명된 삶의 양식이라고 보죠.

그러나 이런 분석들만으로는 뭔가가 찝찝하더라고요. 국가가 어떤 점에서 인류를 다르게 살도록 했는지 분석하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우리는 국가 안에서 살아갑니다. 국가가 해체되는 지금의 흐름도 ‘전세계’를 하나의 도무스로 통합하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점점 더 과밀화되는 가운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죠. 여기서 장자에 대해서도 얘기해봤는데, ‘장자는 국가 안에서의 삶을 고민하지 않았다’, ‘장자는 반(反)국가를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국가 없는 삶을 꿈꾼 것 같지 않다’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실제로 장자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죠. 다만 우리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그를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국가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장자가 반(反)정치를 얘기했더라도 국가 없는 삶을 얘기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인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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