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세미나

11.10 인생세미나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1-11-07 19:27
조회
120
인간이 환경의 모든 귀퉁이에서 기어왔다는 것을, 그곳에 스스로를 은닉했다는 것을 인정하라. 당신이 평생 연루되어야 할 다루기 어려운 관계물과 함께하기에, 환경이 실제로 인간의 신체와 마음 내부에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세심한 관용을 베풀며 일상생활 속에서 정치적으로, 기술적으로, 과학적으로 당신 안에서 전진하고 있음을 인정하라. 비인간적으로 인간을 떼어내려는 헛된 시도를 단념하라. 그 대신 당신이 참여하고 있는 배치 내의 비인간들과 더 정중히, 전략적으로, 세심하게 관여하도록 노력하라. (282)


<생동하는 물질>은 생태정치학이라는, 다소 생경한 분야에 대해 말하다가 마지막에는 우리의 자아를 이루고 있는 물질성에 대한 통찰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는가. 자기인식을 할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성의 자장 안에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인들을 예로 듭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고유가, 이전까지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에 달마다 들이닥친 태풍들,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의 사망자와 고문당한 사람들, 원거리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생산된 시금치, 고춧가루, 닭고기, 소고기에서 발견된 병원"이 현재 미국인의 자기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말이죠. 먹거리에서 전쟁까지, 그리고 이상기후와 죽고 산 사람들. 이 모든 것은 '생동하는 물질'로서 평등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애초에 나의 활동과 물질의 활동은 동일한 평면 위에서 나타나고 있지요.

이런 생동하는 물질을 의식하면, 생태학적 환경주의에서처럼 '원래' 되돌려야 하는 환경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태학적 환경주의는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으로 환경을 바라봅니다. 따라서 오염된 환경에 대해 인간이 책임감과 죄책감을 갖게 되지요. 환경은 가만히 있었는데 인간이 설친 결과 결정된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생태학적 환경주의는 자칫 비인간 물질이 인간의 행위를 제한하고, 인간은 그에 저항하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게 합니다. 사실 인간은 '환경'을 떠나 살 수 없고, 그 안에 속해 있음에도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생태학적 환경주의는 그 환경이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장애물로 여기게 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환경과 더 가까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긴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전에는 쟁기로 밭을 갈았지만 지금은 광물의 원자 단위까지 파악하면서 더더욱 환경과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되었죠.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으로서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바라볼 때 역시 복잡한 물질과의 관계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바이러스는 단순히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얽힘 속에서, 이전이라면 절대 건드리지도 않았을 바이러스와 접촉하고 그 변이를 촉진시키는 가운데 팬데믹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팬데믹은 사실 극복하거나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이 그렇게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말, 살, 흙> 2장까지 읽어옵니다.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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