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7.24 세미나 후기

작성자
계숙
작성일
2017-07-25 13:14
조회
113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의 마지막 세미나였다. 이번에 발제를 맡게 되면서 나는 ‘혼자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부터가 좋았다. ‘혼자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은 고독함이 절절하게 뚝뚝 떨어진다기 보다는, 뭐랄까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있는 듯 했다.

 

제노바에서 나는 황혼 무렵 어느 탑에서 들려오는 긴 종소리를 들었다 : 그 종소리는 그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싫증을 낼 줄 모르는 것처럼 거리의 소음을 넘어서서 실로 엄청나게,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그리고 슬픔에 가득차서 저녁 하늘과 바다의 대기 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때 나는 플라톤의 말을 생각했고 그 말을 갑자기 마음속에서 절감했다 : 인간적인 모든 것은 모조리 크게 진지해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I, 니체, 책세상, p.438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서 종소리가 퍼지는 것처럼, 바쁜 하루를 채우던 거리의 소음은 점점 사라지는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혼자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처음에는 천진하게 시작하는 종소리에 어린아이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 소리가 거리의 소음과 섞이고 마침내는 그것을 넘어서서 저녁 하늘 속으로 울려 퍼지는 순간 어떤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그 슬픔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허망함 같은 거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인간세, 이 모든 것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모든 것은 모조리 크게 진지해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문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의 비약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 것일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이라는 책은 니체의 질병, 외로움, 의지처 없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음, 숭배했던 대상과의 결별, 사람들의 멸시, 힘겨움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던 어떤 투쟁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엇을 말하려 했던가.

내가 준비해간 발제는 니체의 고독에 대한 정념에 사로잡혀 썼다는 지적이 있었다. 뜨끔한 지적이다. 나는 발제를 준비하면서, 니체가 말한 신념과 고귀한 배반자, 방랑자 등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문제의식은 니체가 어떻게 자신의 힘겨움에 맞섰는지를 그 처절함을 함께 느껴보자는 어조였다. 나의 정념은, 고독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을 가진 세미나원들에 의해 좀 가라앉을 수 있었다. 니체의 고독을 보면서 루쉰을 생각했다는 누군가는, 깨어있는 사람들의 어떤 운명 같은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니체는 고독을 단지 견뎌야하는 외로움으로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도 했다. 니체는 고독자에 대해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니체의 고독에서 수동성만을 보는 것은 오류일 것 같다고 말이다. 그의 고독은 그가 자처한 길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평생 싸웠던 것은 특정 신념이 아닌 듯 했다. 그에게는 신념으로 고착된 모든 정신의 태만이 그의 적이었다. 물론 신념이 형성되는 순간 자체의 진실함마저 니체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신념으로 고착화되는 순간, 사람들은 두려움과 멸시, 배반자라는 낙인 등이 두려워 신념을 위해 복무하게 된다. 정당해서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신념을 가진 것이 정당하다는 도단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신념의 적은 사물에 대한 판단을 현혹시키고 혼란시키는 모든 것을 걷어내고, 사물을 가장 밝은 빛 속에 세워두고 신중한 눈빛으로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정의의 천재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유일한 여신인 정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자, 우리는 다시 정의라는 불길에 완전히 타서 숯이될 운명이 놓여진다. 그 때 우리는 모든 사물에 대해 배반할 수 있는 자유롭게 쉬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정신에 의해 구제된다. 이 고귀한 배반자는 아무런 죄책감없이 없다. 그는 세상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크게 뜨고 보려고 한다. 그에게 지상에서의 안식처는 없고, 그는 궁극적인 목표 따위는 없는 방랑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는 모든 개별적인 것 속에서 ‘변화와 무상함에 대한 기쁨을 가진 그 무엇이 그 자신 속에 존재’(같은 책, p.449)하는 것을 느끼는 쾌활한 방랑자일 것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은 모조리 크게 진지해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문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의 비약을, 이 방랑자 니체의 도약이라고 믿고 싶었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현실의 힘겨움은 어떻게 보면 니체 그 자신이 자처한 것이다. 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 절실하게 느꼈던 것들을 배반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혼자 있게 되었다. 그 혼자 있음은 그에게 고독함을 안겨주었을 지라도, 그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진실하게 대화하는 법을 터득하며 방랑자라는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