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6월 20일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9-06-08 22:05
조회
131
“권력이나 큰 정치나 경제나 세계 무역, 의회제, 군사적 관심에 힘을 다 써버리면―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오성, 진지함, 의지, 자기극복의 힘을 이런 방면에 다 주어버린다면, 다른 방면에서 그 힘은 결여되게 마련이다. 문화와 국가는 대척자이다―이 점에 대해 잘못 생각하지 말라― : ‘문화-국가’란 단지 근대적 이념일 뿐이다. 이 중 하나는 다른 것에 의존해 살아간다. 다른 것의 희생에 의거해 번성한다. 문화가 융성했던 시대는 전부 정치적으로는 하강기였다 : 문화적인 의미에서 중요했던 것은 비정치적이었고, 심지어는 반정치적이기도 하다.”(니체, 《우상의 황혼》, 책세상, 135쪽)

《반시대적 고찰》 1권을 쓰던 시기의 젊은 니체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문화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당시 독일 사회의 주류적인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그 문화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시대적 고찰》의 니체는 말합니다. 이런 생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니체에게서 더욱 강해진 것 같습니다.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한 발 더 나아가 문화와 국가란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국가’나 ‘시장’ 외에 문화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선진국’들은(주로 서양국가들) 문화적으로도 좀 더 우월할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혹은 어떤 사회가 지닌 문화의 가치를 그 사회의 문화 산업의 규모를 가지고 측정합니다. 케이팝이 국제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조금 헷갈리기도 합니다. 지금 국가는 문화를 일종의 ‘국력’으로 여기고 장려하는 듯 보이고, 심지어는 문화적 다양성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니체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추측해보자면, 니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문화가 모든 종류의 국가적 제도들과 대립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 향하는 힘과 문화로 향하는 힘이 서로 대립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권력이나 큰 정치나 경제나 세계 무역, 의회제, 군사적 관심’ 등에 힘을 쏟는 만큼 문화로 향하는 힘은 상실되게 마련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실 ‘국가’와 ‘문화’가 각각의 실체로서 서로 대립된다기보다는, 국가적인 가치들과 목적들에 초점을 맞추어 개개인의 역량을 동원하고 획일화하는 사회와 서로 모순되는 가치들이 공존하며 다양한 삶의 양식들의 실험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서로 대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성장이 멈추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국가와 사회의 진보를 꿈꿀 수 없게 된 지금은, 문화의 융성을 위한 최적의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아도는 우리의 역량을, 얼마 없는 좋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데에 소모할 것인지 자기극복을 시도하고 고유한 존재 방식을 창조하는 데에 쏟을 것인지. 우리의 결단에 따라 지금의 조건은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이 세 가지 과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모두 고급 문화이다.”(니체, 《우상의 황혼》, 138쪽)

니체님은 구체적인 매뉴얼을 제시합니다. 보는 법을 배우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말하고 쓰는 법을 배우라! 니체는 가장 소박하고도 가장 어려운 것을 요구합니다. 아마도 니체가 생각하는 고급문화란, 화려한 예술 양식들이 공존하고 사람들이 많은 교양을 소유한 문화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고급문화는 스스로 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말하고 쓰려는, 다시 말해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구성해내려는 개개인들의 시도들이 모인 결과인 것 같습니다. 니체적 의미의 고급문화는 그 결과물의 양적인 많고 적음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극복하려는 개개인들의 실험들과 그 실험들이 서로를 자극하고 촉발시키는 과정 자체로서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여러 사정이 겹친 관계로 다음 주 세미나는 쉬고, 6월 20일 목요일 오전 10시에 세미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상의 황혼》을 222페이지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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