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0803 셈나~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7-08-05 19:01
조회
124
 

밀레나에게 쓴 편지를 모두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펠리체에게 쓴 편지들이 좀 더 흥미롭게 읽혔는데, 카프카가 펠리체를 얼마나 낯선 존재로 여겼고 바로 그 이유로 해서 얼마나 그에 매혹되었고 동요되었는지가 편지에 잘 드러난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반면에 밀레나는 불꽃같은 여자라고 그가 감탄하듯 말하기는 하지만, 펠리체에 비하면 보다 카프카와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친숙한 존재 같지요. 두 사람은 함께 책에 대해 의논할 수 있고, 문장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카프카는 때때로 밀레나를 자기 분신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펠리체에게 쓴 편지에서 카프카가 가장 많이 한 이야기가 조금 더 써달라, 왜 답장 안 하니였다면, 밀레나에게 쓴 편지에서 단연 많이 등장하는 것은 ‘두려움’에 대한 것, 그리고 ‘불결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읽고 읽어도 모르겠던데(그래서 지난주에는 그것이 분신에 대한 매혹과 동시에 일어나는 감정일까 생각했었죠) 세미나 시간에 다행히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일단 책에서도 카프카는 종종 불결함과 연관 지어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 있어요.

육체뿐 아니라 모든 것이 요동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강압감도 느끼지 않을 때도 있었소. 그건 아주 건강하고 안정된, 오직 희망으로만 들떠 있는(이보다 더 나은 들뜸을 알고 있소?) 삶이었소. 이러한 상태가 어느 정도라도 지속되던 시기에는 나는 항상 혼자였소.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생애에 처음으로 혼자가 아님에도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그대와 육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대의 존재 자체가 나를 안정시키는 들뜸을 선사하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불결함에 대한 동경이 없소. 그리고 그런 불결함이 느껴지지도 않소. 외부에서 자극하는 그런 것은 전혀 없소, 오직 내부에서 생명을 공급해주는 모든 것, 간단히 말하자면 낙원에서 원죄를 짓기 이전에 마셨을 것 같은 그런 공기의 일부분이 느껴질 뿐이오. 그런 공기의 일부분만 느껴지기 때문에 ‘touha’는 없고, 완전히 그 공기가 아니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거요. (233)

밀레나와 함께 있을 때 카프카가 느낀 안정감, 그래서 사라진 불결함 및 그에 대한 동경. 이것은 앞서 그가 밀레나에게서 느낀 친밀감의 이면인가봅니다. 추방당하기 전 낙원에 있는 것 같은 평안함과 친밀감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 불결함을 동경하지 않게끔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카프카는 밀레나와의 결합에 대해서는 크게 유혹받지 않았다는 게 세미나 때 우리들이 내린 결론이었죠. 펠리체나 율리히와의 관계에서는 결혼이 큰 화두였으면서 어째서 밀레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을까? 불륜이 싫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당시 카프카의 심경을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아래의 편지를 보면 분명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저녁과 아침을 함께 맞이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썼는데, 나는 후자의 상황이 더 좋게 느껴지오. 그들은 뭔가 나쁜 일을 저질렀소. 틀림없이, 아니면 아마도 말이오. 그리고 이 장면의 불결함은 그대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본질적으로 그들 사이의 생경함에서 오는 것이오. 그리고 그것은 속세적인 불결함이오. 마치 아직 한 번도 사람이 산 적 없는 집이 갑자기 확 열어 젖혀졌을 때 발견되는 그런 불결함 같은 거지요. 그건 물론 난처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결정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소. 예컨대 하늘과 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건 정말로 그대가 말한 것처럼 “공을 가지고 노는 것”에 불과했던 거요. (253)

여기서 불결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경함’으로부터 출현합니다. 뭔가 낯설고 음습하고 우리가 아는 ‘인간’의 권역에서 조금 비껴나 있는 상태, 그런 게 불결함인가봐요. 그리고 카프카는 이 불결함, 무언가 나쁜 일이 저질러진 상태인 불결함이 “더 좋게 느껴”진다고 하지요. 왜일까요?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보며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오선민 선생님의 제안입니다. 그레고르 잠자, 피터, 시골사람 등등의 공통점은 불결함을 조장한다는 데 있답니다. 뭐가 불결한 건데? 이전의 정돈된 상태, 정리되고 구획된 상태를 어지르는 거죠. 아버지와 법의 이름으로 구획된 선에 의해 사회의 모든 기계들이 작동되고 있는데, 그 경계 위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사람들, 그게 우리가 앞으로 읽을 카프카 소설들의 인물들입니다. 뭔가 거슬리는 짓을 하는 사람들, 경계를 어지럽히는, 불결하게 하는 사람들. 생경한 존재들. 경계 위에 있는 그들이 일순 법의 바깥으로, 경계 밖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그때 생산되는 정동이 곧 두려움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는데요, 이건 앞으로 좀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자, 이처럼 불결함은 필연적으로 낯선 것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니, “내부에서 생명을 공급해주는 것” “낙원”과는 이미지가 한참 멀지요. 펠리체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미친 듯이 작품을 써대던 카프카를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리고 불꽃같은 밀레나와는 한 번도 결혼하기를 욕망하지 않았던 것에도.

그 많던 일기와 편지들을 그래도 어떻게 다 읽었네요. 우리 변태인가봐요^^; 다음 시간에는 읽었던 편지들을 토대로 작품 비평 들어갑니다. 지난번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선고>가 될 것 같아 기대됩니다. 휴가 때문에 잠시 자리 비운 모두들 모쪼록 건강한 얼굴로 올출석합시다.

 
전체 2

  • 2017-08-07 09:53
    "누이는 그의 입맛을 시험해보기 위해 온갖 것을 골라보라고 가져와 헌 신문지 위에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거기에는 반쯤 상한 오래된 야채, 저녁 식사에서 남은 굳어진 화이트 소스가 잔뜩 묻은 뼈다귀, 건포도와 편도 몇 개, 그레고르가 이틀 전에 맛이 없다고 했던 치즈 한 조각, 마른 빵 하나, 버터 바른 빵 하나에다 버터 버르고 소금을 뿌린 빵 하나가 있었다. [중략] 만족감에 눈물까지 흘리며 그는 치즈, 야채, 소스를 정신없이 잇달아 먹어치웠다. 반면 신선한 음식은 맛이 없었고, 냄새조차도 견딜 수가 없어서, 그가 먹고 싶은 것들은 조금 떨어지게 끌어다 놓기까지했다."(변신)

    그레고르 잠자는 상한 우유, 먹다 남아 엉망이된 요리밖에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들에서 갑충으로 변신하던 중이었지요. 카프카는 정말 불결함을 좋아했습니다. 카프카는 특히 밀레나와 함께 불결함에 대한 이야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체코인이지만 유태인을 사랑하고, 체코어나 독일어 사이를 종횡무진하고, 유부녀이지만 약혼녀가 있던 카프카를 사랑하는 여자, 온갖 금기의 벽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밀레나야말로 더럽고 불결해서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2017-08-07 20:48
    누군가 쓴 일기와 편지들을 다 읽었다니ㅋ 변태 맞나봐요 ㅋㅋ 심지어 다시 읽어보고 싶기까지 하네요.
    저는 특히 편지 중간 중간에 괄호 치고 쓰는 말들(ex.이보다 더 나은 들뜸을 알고 있소?)이 난데없이 나오는 점도 정신없어 보이면서 매력적이었다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