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정원

9.1 글쓰기의 정원 4학기 1주차 후기

작성자
탁소봉
작성일
2018-09-02 15:21
조회
201
한 달 간의 방학을 뒤로 하고 4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시간에는 지난 학기들과 마찬가지로 채운 선생님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글쓰기 문제점에 대한 맞춤형 처방과 함께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재차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글은 우리의 성향과 습관을 드러내는 거울과 같습니다. 글에서 보이는 내 습을 넘어서는 것이 곧 공부이고 자기 혁신이자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매 학기 첫 시간에 글 쓰면서 어려운 점, 내 글의 문제점을 물어보고 점검하시는 것 같습니다. 문제점을 알아야 다르게 쓸 수 있을 것이고, 조금 다르게 쓰는 걸 해내는 것이 곧 나를 바꾸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숙제를 제때 내지 못하는 불성실함, 없거나 잡다한 문제의식, 딱 떨어지는 결론을 원하는 강박, 텍스트가 아닌 자신만의 이상에 집착하기 등과 같은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문제들을 다 해결하고 글을 잘 쓰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예로 들어주셨던 것처럼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다가 어느 날 갑자기 6시에 일어나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기상 시간을 5분씩 천천히 당겨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번 학기에는(사실 매 학기 그랬지만) 각자의 5분을 찾아서 개선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대로 공부가 되려면 내 삶과 밀착된 절실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저를 비롯한 아마도 대부분의 학인들은 문제의식이 안 생기거나 별로 절실하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평일엔 회사일이며 집안일로 바쁜 중에 없는 시간을 쪼개 마음에 들지도 않는 어설픈 숙제를 겨우 쥐어짜서 내거나 결국 못 내고, 주말엔 수업을 들으며 이번 주는 열심히 해보자 하지만 곧 분주한 일상 속에 각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반복되는 우리네 일상이지요. 선생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문제의식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개념이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conceptio는 잉태라는 뜻이라고 하죠. 임신부가 뱃속의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나올 때 까지 힘들어도 언제 어디서나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개념 또는 질문도 그렇게 함께 살아야 절실해진다고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전직 임신부로서 공감되는 비유였습니다. 임신 중에 회사도 가고 감이당도 나가고 여행도 하고 일상생활을 했지만 한 번도 뱃속의 아이를 의식하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까요. 불교에서 화두를 든다는 말과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공부와 수행은 실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질문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은 해봐야겠어요. 사실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현재 글을 못 쓰는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겠지만요. 어떤 조건만 충족되면 더 잘 쓸 수 있는 내가 따로 있다는 허상을 버리고, 그 어떤 조건이 충족되는 날은 미래에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데다 어쨌든 결코 현재는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현재 이 조건에서의 나로서 일단 쓰는 것!

이번 학기에는 8주차에 졸업에세이로 서평을 쓰고, 추가로 3주차에 시평 쓰기를 합니다. 시평 쓰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문제를 다뤄본다는 점에서 필요하지만 내 입장에서 사회를 재단하는 함정에 빠지기 쉬워서 간단히 하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시평 쓰기의 텍스트는 루쉰입니다. 시평은 시대와 나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인데, 보통 사람들은 나의 영토와 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반면 루쉰은 자신의 삶이 사회, 역사와 분리되지 않은 글쓰기를 했습니다. 루쉰 전집 1권 『무덤/열풍』에서 「수염 이야기」, 「지금 우리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다시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 이 4편의 글을 읽고 참고하여 시평을 씁니다.

서평은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과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 이 두 권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읽고 씁니다. 『무지한 스승』은 2학기 때 읽은 이반 일리치의 연장선상에서 배움과 가르침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책이고, 『저항의 인문학』은 아마추어 지식인으로서 읽고 쓴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고찰한 책입니다. 서평은 한권만 쓰더라도 토론을 위해 두 권 다 읽어야 합니다! 서평을 쓸 때는 선생님이 여러 번 강조하셨듯이 우선 텍스트를 이해하고,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 지금 시대의 관점에서 저자가 미처 짚지 못한 아쉬운 점에 대해 씁니다.

이번 학기는 팀별 토론으로 진행되며, 선택한 책에 따라 팀을 두 개로 나눕니다.
- 『무지한 스승』 : 김순화, 노진우, 박준상, 윤연주, 윤현정, 이시영, 최선미, 한경석
- 『저항의 인문학』 : 강석, 강평옥, 김혜림, 유승연, 이현애, 이현주, 탁지선

일정입니다.
- 2주 : 루쉰의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1 페이지),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사회를 만나는가에 대한 관점으로 / 선택한 서평 책의 1장을 요약
- 3주 : 시평 쓰기(1 ~ 2페이지), 올해 주목할 만한 사회 이슈 중 1개 선택해서 쓰기 / 선택한 서평 책의 2장을 요약
- 4주 : 선택한 서평 책의 3장을 요약
- 5주 : 선택한 서평 책의 4, 5장을 요약
- 6주 ~ 7주 : 참고 문헌 등 조사, 서평 초고 작성
- 8주 : 서평 발표

마지막 학기는 우리들이 서평 쓰기의 프로세스를 스스로 밟아보게 하는 데에 선생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 합니다. 항상 질문을 품고 즐겁게 토론하며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함께 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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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3 10:47
    문제의식이 하늘 에서 뚝 떯어지는 날은 없다는 말씀이 훅, 들어옵니다.
    매일매일 수련하는 가운데, 품어지고 품게 됩니다. 마지막 학기이니 더욱 빛내봅시다.

    두 권의 서평 도서는 모두 읽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수업 시간에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장씩 매주 같이 진도 나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숙제는 다하실 필요가 없지만. 그럼, 퐈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