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정원

9월 29일 글정 후기(저항의 인문학)

작성자
강평
작성일
2018-10-04 02:25
조회
163
먼저 조별 토론의 시간에는 1장~3장까지 1문단 1주제문으로 각자 정리한 내용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번역기를 돌린 것 같다거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인용한 서양 저자들과 그들의 저작들이 이해를 더 어렵게 했다거나 하는 등의 불만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음은 물론입니다. 핵심 단어인 ‘세속성’, ‘수용과 저항’, ‘문헌학’, ‘내부인이자 외부인’의 의미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 밖에 책 내용 중 발터 벤야민의 “모든 문명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다.”, ‘저항은 곧바로 주어진 것과 보류되는 것 사이를 구별짓는 능력이다’ 등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핵심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책에 대한 오독을 피하는 중요한 관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조(‘무지한 스승’조)와 같은 공간에서 따로 토론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광경도 나왔습니다. 서로 조용히 하라고도 하고 급기야 우리 조는 공간을 달리해서 카페로 가겠다고 선민샘에게 말씀드리기도 했죠. 결론은 단호박, 안되요! 였습니다. 선민샘은 고미숙 선생님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쓰레기통 옆에서 『열하일기』 를 쓰셨다고 했습니다. 덕분에 옆 조에서 하는 이야기도 중간 중간 같이 들으면서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옆 조에서는 일테면 ‘열쇠공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던데(고백하자면 저는 ‘무지한 스승’을 읽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워 듣는 이야기가 주는 묘한 재미가 있더군요. 동시에 개인적인 제 느낌입니다만, 시끄러운 호프집에서는 옆 테이블 주제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잘만 집중하는데 역시 아직 글정 토론의 집중도가 호프집 수다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토론을 마치고 선생님이 몇 가지 주안점을 짚어 주셨습니다. 누가, 어디서, 왜, 어떻게, 이 주제를 말하는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저항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이 왜 저항인가? 에 답할 수 있는 읽기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이 책에서 등장하는 ‘세속성’, ‘내부인이자 외부인’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주문하셨습니다. ‘세속성’이라는 의미에는 언어에 역사적인 힘과 전통의 망이라는 시공의 조건이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언어란 자연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대학, 거대한 자본 등이라는 힘들의 투쟁의 결과로 나온 것입니다. 문헌학이란 텍스트가 가진 맥락이 자연적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세속적 지반을 바탕으로 나오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텍스트를 따로 떼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분석하는 수용적 읽기가 1차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어 이를 확장하여 텍스트에서 누락, 왜곡의 결을 보는 저항적 읽기가 2차로 필요합니다. 동시적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수용-저항적 읽기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소련-이슬람으로) 악의 축이 움직이고 있다, 정체성으로 인간을 가르고 있다. 그런데 정체성이란 이미 여러 힘들의 투쟁이 장이다, 주어진 것은 없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핵심 개념들을 꿰서 이해하는 것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다음 주 과제는 1페이지로 책 전체를 요약하고 참고문헌을 적어오는 것입니다. 책을 관통하는 맥이 나와야하고 자신의 의견은 넣지 말아야합니다. 또 시간의 소외를 피하기 위해서 다른 조의 책도 읽어오는 것으로.

후기를 너무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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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5 09:58
    가장 일상적인 하루, 그 한가운데에서 출현하는 '인문학의 저항' 나날의 업무 속에서 토요일 글정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아요.
    나는 왜 읽는가, 나는 왜 쓰는가, 그것은 어떤 저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