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들

영화,들 다섯번째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1-15 21:59
조회
162
금요일이 가물가물하네요^^;; 조금이나마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소매치기>를 보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베르그손: 의식은 '무엇'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란 대개 표상입니다. '구름' 하면 떠올리는 하얗고 몽실한 시각적 표상, 그리고 '구름'이라는 표상이지요. 이런 이미지=표상은 움직이지 않는 대상이 있고, 그것을 의식 주체인 내가 지각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베르그손에게 이미지란 표상이 아닙니다. 그는 의식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이때 '무엇'은 물질성을 뜻합니다. 즉 지각하는 나와 지각대상 모두 물질로서 함께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지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동하는 가운데 함께 진동하는 물체의 단면을 취할 뿐인 것이죠. 이렇게 세계는 물질들의 끊임없는 작용/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각에 대한 논의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일단 우리가 갖는 의식과 지각에 대한 전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감각기관을 가진 주체에게 지각이 귀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이 물질이고, 지각은 물질간의 작용/반작용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지각을 넘어선 다른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우리는 허공을 떠도는 먼지의 지각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세계의 진실은 인간의 감각에 달린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카메라 눈
베르토프의 시대는 구성주의의 시대입니다. 예술가들은 카메라를 가지고 인간의 시각을 벗어나는 것을 시도했던 것이죠. 이때 영화란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에 의한 활동사진 즉 사진을 빠르게 돌리는 것에 불과한 시네마그라프가 아니라, 움직이는 카메라에 의한 영화입니다. 부동의 단면이 아니라 움직이는 단면 즉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움직이는 카메라에 의한 영화는 어떻게 운동으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주는가? 그건 바로 편집에 의해서입니다. 편집 덕분에 '영화적인 것'이 발명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편집은 숏과 숏 사이에 간격을 도입하여 운동으로서의 이미지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숏 하나는 닫혀 있지만 편집에 의해 2번 숏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러면서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운동하는 부분이 됩니다.
운동이란 개체가 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개체가 개체이기 위해서 운동이 내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죠. A가 다음에도 A일 수 있는 것은 A가 운동해서 A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 이렇게 운동하는 무수한 개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체를 향해 여려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들뢰즈는 영화가 운동하는 개체를 잘 보여준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개체가 운동한다고 할때, 우리는 목적론적인 세계관을 넘어갈 단서를 얻습니다. 생명은 어떤 의도도 개입되어 있지 않은, 그 안에 이미 운동성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존재가 변형되어 가면서 일어나는 질적 도약을 베르그손은 창조적 진화라고 합니다. 이는 더 좋고 완전한 상태로 진화해 왔다는 목적론적인 진화론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뭐가 될지 알 수 없으며 그 가능성을 완벽하게 열어두고 있는 개체인 것이죠. 그래서 들뢰즈가 생각하는 가장 폭력적인 말이 '커서 뭐가 될래?' 였다고 ㅋ

영화의 윤리성
그럼 영화를 볼 때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개의 경우 우리는 영화를 줄거리 중심으로 보고는 합니다. 카메라의 눈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이미 굳어진 사고회로를 따라 영화를 보고, 조금이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습관과 다른 영화를 보는 것을 불편해 하지요. 하지만 카메라의 지각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불편함에 대해 생각하고, 그동안의 내 지각과 감각과 정서가 세계의 극히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범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방식으로 '조금 더 알기'가 아니라, 그 지각 방식의 전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더 잘 사는 것이 윤리적인 게 아니라, 내가 아는 범위 자체를 넘어서는 것. 영화의 윤리성이란 그 인간적 지각을 넘어서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매치기>
개인적으로 그동안 봤던 영화 중 가장 카메라가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습니다. 우선 주인공이 방에 들어오기도 전에 대기하던 카메라가 안정적으로 상반신을 비추기도 했고, 클로즈업 된 업계(?)의 작업 방식도 아주 깔끔하게 담아냈지요. 내용도 지난 시간에 봤던 <국가의 탄생>보다 훨씬 이입하기 쉬운 이야기라서 자연스럽게 스토리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영웅의 저항이나 도전이 아닌 루저의 직업이 되어버린 범죄, 1인칭에 입각한 구성(일의 과정이나 타인의 관점 생략, 주인공이 관심두지 않는 장면은 아예 등지고 담아내지 않는 카메라 등등), 알 수 없는 러브라인(!) 등등. 재밌는 코멘트 중 하나는 영화가 소매치기라는 범죄행각을 벌이는 주인공의 감정이나 흥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컨테이너 벨트처럼 일사불란한 손놀림들을 클로즈업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손이 타인의 소매 사이를 오가는 것과 주인공의 삶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카메라의 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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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15 22:22
    "개체가 개체이기 위해서 운동이 내재되어 있어야"한다는 것, 들뢰즈가 생각하는 가장 폭력적인(!) 말, '인간적 지각'을 넘어서는 '영화의 윤리성'이 유난히 눈에 밟힙니다.
    - 수고스런 후기에 1빠로 댓글 남겨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