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들

영화, 들 열 번째 후기

작성자
황지은
작성일
2018-02-27 13:08
조회
183
이번 시간에는 행동-이미지, 그 중에서도 ‘큰 형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선 챕터들에서 다루었던 감화-이미지나 충동-이미지에서는 ‘불특정한 공간'과 ‘근원적 공간'이 각각의 이미지와 쌍을 이루었다면, 행동-이미지는 ‘한정된 공간'과 짝을 이룹니다. 한정된 공간이란 시공간의 좌표가 설정되어 있어 인물은 그 속에서 특정 사회적 역할을 지니고 사물들은 특정 용도를 지니고 있는 등 사물/인물이 실제적으로 연관지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환경과 그 환경에 대한 반응/행동을 하게 되는 과정이 행동-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는 이를 두고 행동-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이차성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그것은 “현실화를 이루는 환경과 역할들을 만들어내는 행동방식"이 항상 쌍으로 묶여있기 때문인듯 합니다.

이 이차성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보영샘은 사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든 행동이 바로 행동-이미지가 아니냐는 질문을 해주셨었는데요, 물론 모든 행위는 행동이지만 영화에서 그것이 행동-이미지로 불릴 수 있으려면 그 행동과 짝을 이루는 환경이나 공간이 함께 등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후기를 쓰면서 4장(운동-이미지와 그 세 가지 양상)을 다시 읽었는데요, 들뢰즈는 행동-이미지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조직되고 분할"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프리츠 랑의 <도박꾼 마부제 박사>에 나오는 “기차 안에서의 살인을 위해 맞추어진 시계들, 도둑맞은 문서를 실어가버린 자동차, 마부제에게 신호를 알리는 전화" 등 구체적 상황과 관계맺는 특정 행동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행동-이미지의 큰 형식은 환경과 행동양식이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일까요? 들뢰즈는 그것을 간단하게 S-A-S’형식이라고 명명합니다. S(Situation)은 인물이 처한 환경, A(action)는 S에 대한 인물의 반응 및 행동, S’는 A에 의해 변형되었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상황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S-A-S’는 행위가 매개가 되어 한 상황이 변형된 새로운 상황으로 나아가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S-A-S’ 형식만이 행동-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들뢰즈는 논의를 이어가면서 S-A-S, S-A-S’’ 등의 예시들도 보여주는데요, 각 형식의 영화들은 행동-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거나 미국사회의 악몽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북극의 나누크>는 북극이라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나누크를 보여주는데요,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미지들(이글루를 짓고 바다표범과 대결)이 혹독한 자연환경을 바꾸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행위가 아니라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행동이라는 것에서 나누크의 위대함이 생성된다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반대로 킹 비더의 <군중>의 배경은 대도시 뉴욕으로, 자본주의 사회 속 획일화된 사람들의 사는 모습(직장에서 일하고, 쇼핑, 연애, 휴가 등의 생활)을 보여줍니다. 반복적으로, 그리고 도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 행위들은 대도시 뉴욕의 모습을 더욱 공고히 할 뿐입니다(S-A-S).

이어지는 S-A-S’’의 형식은 상황은 변형되는데, ‘더 나쁜' 상황으로 추락을 의미합니다.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악화되는 것이죠. 이 구조는 ‘뒤집힌 나선형' 구조로, 병리적 환경과 행동방식의 이상상태를 보여줍니다. 등장인물은 “‘애초부터의 패자'로서 ‘지나치게’ 행동"합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내가 살아가던 존재방식 중의 하나였다. 내가 뒤섞였던 사람들의 한 가지 습관이었다…”).

행동-이미지는 주로 유기적 교차편집에 의해 구성됩니다. 환경이 먼저 제시되고, 인물과는 무관해보이던 환경이 점차 인물을 둘러싼 상황을 낳으면서 그 인물의 반응행동이 차례로 나오는 것이죠. 하지만 세미나에서는 이런 유기적 편집 보다도 행동-이미지가 구성되기 전의 ‘틈'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햄릿>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복수를 위해 행동에 개시하기 전까지 햄릿의 고뇌가 있었던 것처럼, 어떤 행위를 위해서는 그 행위의 당위성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건화샘은 행동이 ‘지연된 반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죠. 지각-이미지에서 행동-이미지로 전이되기까지 우리는 사물들의 잠재적 작용을 지각하고 가능한 행동을 파악합니다.

이렇게 대략 행동-이미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전 챕터들은 감화-이미지나 충동-이미지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이들은 각각 ‘불특정한 공간'과 ‘근원적 공간'과 연결되어 ‘현실'의 시공간이라기 보다는 현실적 좌표의 부재 내지 그 이전의 상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동-이미지는 매우 ‘한정된 공간'으로서 구체적인 좌표를 보여주어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헷갈리기도 했던 것이, 구체적인 시공간 좌표와 함께 구성되는 행동-이미지는 어떻게 습관적/인간적 지각을 벗어난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존포드의 <역마차>는 처음 봤을때는 편집양식이나 서사구조가 너무 전형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서 더 헷갈렸던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의 편집이 현재의 영화 편집양식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처럼(=당시에는 혁명적인 편집), <역마차>에서 보여준 편집 또한 이미 우리의 눈에는 익숙해져버려 그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토론 후 영화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을 보았는데요, 세미나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영화들 중 하나였던것 같아요ㅎㅎ 부르주아 계층 6명의 식사는 매번 난데없는 해프닝으로 좌절됩니다. 레스토랑에 갔다가 그 곳에서 벌어지는 레스토랑 주인의 장례식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떠나기도 하고, 다시 약속을 잡아 그들 중 한 부부의 집에 갔건만 그들은 사랑의 거사(?)를 치르느라 바빠 손님들을 방치합니다. 또 이 영화는 초현실적인 면모가 짙은데요, 총기난사(!)같은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다 치면 허무하게도 누군가의 꿈이었던 식으로 처리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급기야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시종일관 무슨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없고,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치면 누군가의 꿈으로 소급되어 버리는 방식에 우리 모두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네요ㅎ

이 영화는 들뢰즈가 충동-이미지의 예시로 든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건화샘은 영화 속 6명의 부르주아들은 일하는 모습도 없고, ‘구체적 행동'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앞서 말한 <북극의 나누크>나 <군중>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신 앞에 놓인 환경 앞에 치열하게 대응하며 살아가지만, 부르주아 계층의 사람들은 안온한 환경에서 그저 구체적 행동 없이도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 6명이 하는 일은 먹거나, 섹스하거나, 총을 쏘거나 하는 것인데요, 그러한 행동들은 사실 어떤 구체적 맥락 속에서 인물들이 특정 상황에 대응한다는 느낌보다는 ‘갑자기, 난데없이' 하는 느낌입니다. 더군다나 ‘알고보니 누구의 꿈이었다'는 방식으로 자꾸만 처리가 되니, 더욱더 구체적 환경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러한 편집방식 자체가 부르주아의 ‘무용성'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들 세계에서 현실감 없이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편집이 바로 공간을 현실적 좌표로부터 느슨해지도록 만들고, 그 속에서 충동-이미지를 구성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채운샘의 강의와 함께 우리의 글을 발표하는 시간이지요!ㅎㅎ 아무리 읽어도 어려운 들뢰즈느님 … 무슨 글을 써야할지 ㅜㅜㅜ 그래도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이 때까지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고 그것을 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다음시간에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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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8 10:49
    꼼꼼한 후기 감사합니다~ 책 내용이랑 토론 내용이 모두 상기되네요! 책에서는 모든 행동이 대결이라는 이야기가 재밌었습니다. 다음장인 작은형식에서는 들뢰즈가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