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지북유 8~12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4-09 19:34
조회
98
190507 우한강 복습

 

지북유 제8

 

於是 泰淸 問乎無窮 曰 子 知道乎 無窮曰 吾 不知

 

이때 태청이 무궁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를 아는가?”

무궁이 대답했다. “나는 모른다.”

 

於是 : 이 장은 7장과 붙어 있다가 떨어졌다고도 한다.

 

 

又問乎無爲 無爲曰 吾 知道 曰 子之知道 亦有數乎 曰 有 曰 其數 若何

 

또 무위에게 물었다. 무위가 말했다. “나는 도를 안다.”

“네가 도를 아는 것에 또한 방법이 있는가?”

“있다.”

“어떤 방법인가?”

 

數 : 방법.

 

 

無爲曰 吾 知道之可以貴 可以賤 可以約 可以散 此 吾 所以知道之數也

 

무위가 말했다. “나는 도가 인간을 귀하게 할 수 있고 천하게 할 수 있으며 살릴 수도 있으며 죽일 수 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내가 도를 아는 방법이다.”

 

約 : 生과 같은 의미.

散 : 死와 같은 의미.

 

 

泰淸 以之言也 問乎無始 曰 若是則無窮之弗知 與無爲之知 孰是而孰非乎

 

태청이 이 말을 가지고 무시에게 물었다. “이와 같은 즉, 무궁이 모르는 것과 무위가 아는 것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無始曰 不知 深矣 知之 淺矣 弗知 內矣 知之 外矣

 

무시가 말했다. “모른다는 것은 깊이 아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얕은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내면으로 도를 체득한 것이요 안다는 것은 도의 외연만 아는 것이다.”

 

於是 泰淸 卬而歎曰 弗知乃知乎 知乃不知乎 孰知不知之知

 

이때 태청이 중간에 탄식하며 말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이요 아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니, 누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는 것임을 아는가.”

 

無始曰 道不可聞 聞而非也 道不可見 見而非也 道不可言 言而非也 知形形之不形乎 道不當名

 

무시가 말했다. “도는 들을 수 없고 듣는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볼 수 없고 본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말할 수 없고 말한다면 도가 아니다. 형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볼 수 없음을 아는가. 도는 이름붙일 수 없다.”

 

 

無始曰 有問道而應之者 不知道也 雖問道者 亦未聞道 道無問 問 無應 無問 問之 是 問窮也 無應 應之 是 無內也 以無內 待問窮 若是者 外不觀乎宇宙 內不知乎大初 是以 不過乎崑崙 不遊乎太虛

 

무시가 말했다. “도를 듣고 그것에 응하는 자는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도를 들었어도 또한 도를 듣지 못한 것이다. 도는 들을 수 없고 들어도 응할 수 없다. 도는 물을 수 없는데 그에 대해 묻는다면 이것은 물음이 다한 것이다. 응할 수 없는데 그것에 응한다면 이것은 내면으로 도를 체득하지 못한 것이다. 내면에 도가 없으면서 물음이 다한 것에 대답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밖으로 우주를 보지 않고 안으로 태초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곤륜을 지날 수 없고 태허에서 놀 수 없다.

 

崑崙 : 도의 경제로 설정된 상상지리.

 

 

 

지북유 제9

 

光曜問乎無有曰 夫子 有乎 其無有乎

光曜不得問而孰視其狀貌 窅然空然 終日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搏之而不得也

光曜曰 至矣 其孰能至此乎 予 能有無矣 而未能無無也 及爲無有矣 何從至此哉

광요가 무유에게 물었다. “그대는 있는가? 있음도 없는가?”

광요는 대답을 듣지 못했기에 광요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모습은 움푹 들어가 텅 빈 듯하여 종일토록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었고 들어도 들리는 것이 없었다. 잡아보려 했는데도 알 수 없었다.

광요가 말했다. “지극하구나, 누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겠는가. 나는 無를 인식할 수 있지만 無조차 없는 데까지는 도달하여 有와 無를 따지지 않는 경지까지 이르지 못하니. 어떻게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는가.”

 

無無 : 有와 無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

 

 

 

지북유 제10

 

大馬之捶鉤者 年 八十矣 而不失豪芒 大馬曰 子巧與 有道與 曰臣 有守也 臣之年 二十而好捶鉤 於物 無視也 非鉤 無察也 是 用之者 假不用者也 以長得其用 而況乎無不用者乎 物 孰不資焉

대사마를 위해 갈고리를 만드는 자가 나이가 팔십인데도 한 터럭의 오차도 없었다. 대사마가 물었다. “그대는 기술이 있는 것인가? 도가 있는 것인가?”

“저는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신의 나이 스물에 갈고리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다른 물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고리가 아니면 살피지 않았습니다. 유용한 것은 그 용도가 없는 것에 의탁하면서 그 쓰임을 더 크게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쓸모와 쓸모없음의 경계가 없는 것이겠습니까.”

 

捶鉤 : 갈고리 만들기

不失豪芒 : 한 터럭만큼의 어그러짐도 없다. 豪는 터럭, 芒은 아주 가는 보리티끌.

巧, 道 : 기술과 도.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이 <장자>에 나오는 지식인 캐릭터들. 대표적으로 공자. 달인의 사고에서 이 둘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지북유 제11

 

冉求問於仲尼 曰 未有天地 可知邪 仲尼曰 可 古猶今也 冉求失問而退 明日 復見 曰 昔者 吾問 未有天地 可知乎 夫子曰 可 古猶今也 昔日 吾昭然 今日 吾昧然 敢問何謂也 仲尼曰 昔之昭然也 神者 先受之 今之昧然也 且又爲不神者 求邪 無古無今 無始無終 未有子孫 而有子孫 可乎

 

염구가 중니에게 물었다. “천지가 있기 전을 알 수 있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알 수 있다. 옛날도 지금과 같다.”

염구는 더 물을 수 없어 물러났다. 다음날 다시 공자를 보고 말했다. “어제 제가 천지가 있기 전을 알 수 있는지 여쭈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그렇다, 옛날과 지금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제는 제가 알 것 같았는데 지금은 혼미해져 모르게 되ᄋᅠᆻ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셨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어제 밝게 알 것 같은 것은 정신이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지금 어두워진 것은 정신으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본디 자손이 없었는데 자손이 있다고 하면 되겠는가?”

 

失問 : 되묻지 못하다

神 : 정신, 본능적 감각.

爲 : 때문. 因과 같음.

 

 

冉求未對 仲尼曰 已矣 未應矣 不以生 生死 不以死 死生 死生有待邪 皆有所一體 有先天地生者 物邪 物物者 非物 物 出不得先物也 猶其有物也 猶其有物也 無已 聖人之愛人也 終無已者 亦乃取於是者也

염구가 대답하지 못하자 중니가 말했다. “그만두어라. 아직 응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으로 죽은 것을 말하려 하지 말며 죽음을 가지고 생을 재단하지 말라. 죽음과 생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모두 일체인 것이다. 천지보다 앞선 사물이 있는가? 사물을 사물로 만드는 것은 사물이 아니다. 사물은 사물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일 수 없으니, 그 사물을 만드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물을 있게 하는 존재가 있으면 끝이 없으니, 성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끝까지 그만둠이 없는 것은 그 또한 여기에서 취했기 때문이다.”

 

不以生 生死 : 삶으로 죽음을 살리지(재단하지) 말라.

待 : 기대다. 연결되어 있다.

物物 : 사물을 사물로 만드는 자. 道.

 

 

 

지북유 제12

 

顔淵 問乎仲尼曰 回嘗聞諸夫子 曰無有所將 無有所迎 回 敢問其遊

 

안연이 중니에게 말했다.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보내지도 말고 맞이하지도 말라.’ 라고요. 제가 감히 그 이유를 묻습니다.”

 

遊 : 由와 같음.

 

 

仲尼曰 古之人 外化而內不化 今之人 內化而外不化 與物化者 一不化者也 安化安不化 安與之相靡 必與之莫多 狶韋氏之囿 黃帝之圃 有虞氏之宮 湯武之室 君子之人 若儒墨者師 故以是非相韰也 而況今之人乎 聖人 處物 不傷物 不傷物者 物亦不能傷也 唯無所傷者 爲能與人 相將迎 山林與 皐壤與 〈與我無親〉使我欣欣然而樂與 樂未畢也 哀又繼之 哀樂之來 吾不能禦 其去 弗能止 悲夫 世人 直爲物 逆旅耳 夫知遇 而不知所不遇 知能能 而不能所不能 無知無能者 固人之所不免也 夫務免乎人之所不免者 豈不亦悲哉 至言 去言 至爲 去爲 齊知之所知則淺矣

중니가 말했다. “옛 사람은 외무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나 내면은 그렇지 않다. 지금 사람은 내면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만 외면은 그렇지 않다. 만물과 더불어 변하는 자는 항상 변하지 않는다. 외부에 맡기고 내부에 맡기지 않으며 도에 따라 편안하니 반드시 따라야 할 분이 많은 것이 아니다. 희위씨의 동산, 황제의 들, 유위씨의 궁궐과 탕임금의 집이 그렇다. 군자라는 사람은 유가와 묵가를 스승으로 삼는다. 그래서 이 시비로 서로 다툰다. 하물며 지금의 사람들이랴. 성인은 만물과 함께하지만 만물을 해치지 않는다. 만물을 해치지 않는 자는 만물 또한 그를 해칠 수 없다. 오직 상처 주지 않고 받지도 않는 자는 서로 보내고 맞이할 수 있는 자이다. 산림이여, 연못과 땅이여, 나로 하여금 기쁘고 즐겁게 하는구나. 그러나 즐거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슬픔이 또 이어진다. 슬픔과 즐거움이 오는 것은 내가 막을 수 없고 가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슬프구나, 세속인들은 진실로 만물의 여관일 뿐이로구나.

무릇 인간은 만난 것은 알지만 만나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며,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본디 사람이 면할 수 없다. 인간이 면할 수 없는 것을 면하려고 하는 노력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지극한 말은 말을 떠나고 지극한 행위는 행위를 떠난다. 나의 인식능력으로 아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

 

外化 : 겉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儒墨者師 : 유가와 묵가를 스승으로 삼다.

皐壤 : 연못과 땅.

齊知 : 인식능력으로 재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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