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서무귀 1~4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9-05-06 20:03
조회
122
1.

徐无鬼因女商見魏武侯, 武侯勞之曰: 先生病矣! 苦語山林之勞, 故乃肯見於寡人.

徐无鬼曰: 我則勞於君, 君有何勞於我! 君將盈耆欲, 長好惡則性命之情病矣., 君將黜耆欲, 掔好惡則耳目病矣. 我將勞君, 君有何勞於我!武侯超然不對.

少焉, 徐无鬼曰: 嘗語君, 吾相狗也. 下之質執飽而止, 是狸德也., 中之質若視日, 上之質若亡其一. 吾相狗, 又不若吾相馬也. 吾相馬, 直者中繩, 曲者中鉤, 方者中矩, 圓者中規, 是國馬也, 而未若天下馬也. 天下馬有成材, 若卹若失, 若喪其一, 若是者, 超軼

絶塵, 不知其所.武侯大悅而笑.

서무귀가 여상의 소개로 위무후를 알현했다. 위무후가 서무귀를 위로했다. “선생은 수척해보입니다! 숲속의 고된 생활이 지치셔서 기꺼이 과인을 보러 오신 것이군요.”

서무귀가 말했다. “저야말로 군주를 위로하려 했는데, 군주는 어찌 저를 위로하십니까! 군주께서 욕망을 가득 채우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오래되면, 성명(性命)의 엑기스가 병들 것입니다. 군주께서 욕망을 남김없이 쫓아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끊어내면, 감각이 병들 것입니다. 저야말로 군주를 위로하려 했는데, 군주는 어찌 저를 위로하십니까!” 위무후가 근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 서무귀가 말했다. “한 번 군주께 제가 개를 감정하는 법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낮은 자질의 개는 배불리 먹으면 움직이지 않으니, 이것은 고양이의 덕입니다. 보통 자질의 개는 마치 해를 바라보듯이 [먼 곳을 응시합니다.] 뛰어난 자질의 개는 마치 자신의 몸을 잊은 듯 굽니다. 제가 개를 감정하는 것은 제가 말을 감정하는 것만 못합니다. 제가 말을 감정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똑바로 갈 때는 먹줄에 맞고, 돌 때는 갈고리에 맞고, 네모나게 돌 때는 직각자에 맞고, 동그랗게 돌 때는 각도기에 맞으니, 이것이 나라의 뛰어난 말입니다. 그러나 [나라의 뛰어난 말도] 천하의 뛰어난 말보다 못합니다. 천하의 뛰어난 말은 자질을 이루었는데,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한 게 마치 자신을 잊은 듯합니다. 이와 같은 말은 다른 말들을 앞지르고 먼지도 쫓아가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무후가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노(勞)는 ‘위로하다’는 뜻입니다.

병(病)은 ‘수척하다’는 뜻입니다.

긍(肯)은 ‘기꺼이’인데, 이미 위무후의 서무귀에 대한 판단이 들어간 글자입니다.

기욕(耆欲)은 욕망입니다.

초(超)는 원래 ‘초월하다’, ‘뛰어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창(悵)과 통용되어 ‘근심하다’, ‘우울하다’를 뜻합니다.

서무귀가 말하는 가장 뛰어난 개와 말은 〈달생〉편에 나오는 목계(木鷄)와 비슷합니다.

상(喪)은 〈제물론〉의 오상아(吾喪我)의 ‘상’입니다. 망(忘)과 같은 의미입니다.

 

徐无鬼出, 女商曰:先生獨何以說吾君乎? 吾所以說吾君者, 橫說之則以詩書禮樂, 從說之則以金板六弢, 奉事而大有功者不可爲數, 而吾君未嘗啓齒. 今先生何以說吾君, 使吾君說若此乎?

徐无鬼曰: 吾直告之吾相狗馬耳.

女商曰: 若是乎?

: 子不聞夫越之流人乎? 去國數日, 見其所知而喜., 去國旬月, 見所嘗見於國中者喜., 及期年也, 見似入者而喜矣., 不亦去人滋久, 思人滋深乎? 夫逃虛空者, 藜藋柱乎鼪鼬之逕, 踉位其空, 聞人足音跫然而喜矣,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 久矣夫, 莫以眞人之言謦欬吾君之側乎!

서무귀가 물러나오자, 여상이 물었다. “선생은 어떻게 저희 군주에게 유세하신 겁니까? 제가 저희 군주에게 유세한 것은 횡()으로 시···(···)이었고, ()으로 금판에 세긴 육도(六弢)였습니다. 일을 받들어 크게 공을 이룬 것은 셀 수도 없는데, 저희 군주는 이를 드러내며 [기뻐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선생은 어떻게 저희 군주에게 유세하셨기에, 저희 군주로 하여금 이와 같이 기쁘게 하신 것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저는 단지 제가 개와 말을 감정하는 법을 말했을 뿐입니다.”

여상이 말했다. “그것뿐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선생은 월나라에서 추방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나라를 떠난 지 며칠이 되면 아는 사람을 보면 기뻐합니다. 나라를 떠난 지 열흘이나 한 달이 되면 한 번 도성에서 만난 사람을 봐도 기뻐합니다. [나라를 떠난 지] 일 년이 되면 비슷한 사람만 봐도 기뻐합니다. 나라를 떠난 사람이 [기간이] 더욱 오래될수록 고향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적이 끊긴 곳으로 도망친 사람은 명아주가 다람쥐가 다니는 길을 막고, 급히 다니며 그 공간에 머무릅니다. [그러다] 사람의 발이 저벅저벅 걷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합니다. 하물며 형제나 친척이 옆에서 기침소리 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오래 되었습니다, 진인(眞人)의 말로 우리 군주의 옆에서 기침소리라도 내어주지 않은 것이!”

 

독(獨)은 ‘이에’ 내(乃) 혹은 ‘또’ 차(且)의 뜻입니다.

說 이 글자는 ‘유세하다’의 “세” 혹은 ‘기쁘다’ “열(悅)”로 읽을 수 있습니다. 크게 뜻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종횡(從橫)은 전국시대 유세가들의 논리를 말합니다.

금판육도(金板六弢)는 금판에 새긴 태공망의 병법서 《육도》를 말합니다. 금판에 새겼다는 것은 오래됐음을 뜻합니다.

유인(流人)은 추방된 사람입니다.

공연(跫然)은 ‘저벅저벅 걷는 소리’입니다.

성해(謦欬)는 ‘기침소리’입니다.

踉 이 글자는 ‘높이 뛰다’ “량”, ‘급히 가다’ “낭”, ‘위태위태하게 걷다’의 뜻이 있습니다. 어느 뜻도 괜찮지만 이번에는 ‘급히 가다’의 뜻으로 읽었습니다.

 

2.

徐无鬼見武侯曰: 先生居山林, 食茅栗厭葱韭, 以賓寡人, 久矣夫! 今老邪? 其欲干酒肉之味邪? 其寡人亦有社稷之福邪?

徐无鬼曰: 无鬼生於貧賤, 未嘗敢飮食君之酒肉, 將來勞君也.

君曰: 何哉, 奚勞寡人?

: 勞君之神與形.

武侯曰: 何謂邪?

徐无鬼曰: 天地之養也一, 登高不可以爲長, 居下不可以爲短. 吾獨爲萬乘之主, 以苦一國之民, 以養耳目鼻口, 夫信者不自許也. 夫神者, 好和而惡姦., 夫姦, 病也, 故勞之. 唯君所病之, 何也?

武侯曰: 欲見先生久矣. 吾欲愛民而爲義偃兵, 其可乎?

徐无鬼曰: 不可. 愛民, 害民之始也., 爲義偃兵, 造兵之本也., 君自此爲之, 則殆不成. 凡成美, 惡器也., 君雖爲仁義, 幾且僞哉! 形固造形, 成固有伐, 變固外戰. 君亦必无盛鶴列於麗譙之間, 无徒驥於錙壇之宮, 无藏逆於得, 无以巧勝人, 无以謀勝人, 无以戰勝人. 夫殺人之士民, 兼人之士地, 以養吾私與吾神者, 其戰不知孰善? 勝之惡乎在? 君若勿已矣, 修胸中之誠, 以應天之情而勿攖. 夫民死已脫矣, 吾將惡乎用夫偃兵哉!

서무귀가 위무후를 알현했다. 위무후가 말했다. “선생께서 숲속에서 지내시면서 도토리나 밤을 먹고, 파와 부추로 배를 채우면서 과인을 거절한지가 오래되었군요! 지금은 노년이 되어 [숲속 생활에 지치셨나요?] 술과 고기의 맛을 찾으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과인에게 사직을 다스릴 복이 있는 것인가요?”

서무귀가 말했다. “저는 빈천한 데서 태어났으니, 군주의 술과 고기를 감히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군주를 위로하러 온 것입니다.”

위무후가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어떻게 과인을 위로한다는 것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군주의 정신과 몸을 위로하려합니다.”

위무후가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천지가 기르는 이치는 하나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도 우월하다 생각해서는 안 되고, 낮은 곳에 머무른다고 해서 열등하다고 생각해도 안 됩니다. 군주는 만승의 주인이 되어 한 나라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이목구비를 만족시키고 있는데, 정신이 스스로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이란 것은 조화를 좋아하고 편중됨을 싫어합니다. 편중된 것은 병이기 때문에 위로하고자 한 것입니다. 오직 군주만이 근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위무후가 말했다. “선생을 만난 지 오래되었군요. 저는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행하여 무기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서무귀가 말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백성을 해치는 것의 시작이고, ‘를 행하여 무기를 내려놓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의 근본입니다. 군주가 이런 것으로부터 행하신다면, 아마도 다스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은 악을 담는 그릇입니다. 군주가 비록 인의(仁義)를 행하고자 하시나, 거짓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제도는 위선적인 제도를 만들고, 이룸은 분쟁을 만들며, 변함은 바깥으로 전쟁을 만듭니다. 군주께서는 반드시 성루 밖에서 학렬(鶴列)진을 펼치지 마시고, 치단(錙壇)의 궁전에서 보병과 기병을 훈련시키지 말아야 하며, 이치를 거슬러 이익을 얻는 것을 마음에 품지 말아야 하고, 편법으로 타인을 이기지 말아야 하고, 전쟁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지 말아야 합니다. 병사들과 백성들은 죽이고, 토지를 병합함으로써 자신의 사욕과 정신을 기른다면, 누구도 그 전쟁이 선한지 모르지 않겠습니까? 승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군주가 그만두실 수 없다면, 가슴의 진실됨을 수양함으로써 천지의 정()에 응해야지 흔들어선 안 될 것입니다. 백성들이 죽음에서 이미 벗어났으니, 군주가 어디에 무기를 눕힐 수 있겠습니까!”

 

이 대화는 앞에 나온 서무귀와 위무후의 대화의 다른 버전입니다.

빈(賓)은 ‘손님’이 아니라 ‘물리치다’라는 뜻입니다.

일(一)은 천지가 만물을 기르는 작용이 한결같음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신(神)은 정신의 작용입니다.

간(姦)은 편중된 욕망입니다.

언병(偃兵)은 ‘무기를 눕히다’인데 전쟁을 끝내는 표현입니다.

고(固)는 ‘반드시’가 아니라 ‘이루어지다’, ‘만들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도기(徒驥)는 보병과 기마병입니다.

교(巧)는 ‘편법’, 모(謀)는 ‘계략’입니다.

 

3.

黃帝將見大隗乎具茨之山, 方明爲御, 昌寓驂乘, 張若謵朋前馬, 昆閽滑稽後車., 至於襄城之野, 七聖皆迷, 无所問塗.

適遇牧馬童子, 問塗焉,: 若知具茨之山乎?: .

若知大隗之所存乎?: .

黃帝曰: 異哉小童! 非徒知具茨之山, 又知大隗之所存. 請問爲天下.

小童曰: 夫爲天下者, 亦若此而已矣, 又奚事焉! 予少而自遊於六合之內, 予適有瞀病, 有長者敎予曰: 若乘日之車而遊於襄城之野.今予病少痊, 予又且復遊於六合之外. 夫爲天下亦若此而已. 予又奚事焉!

黃帝曰: 夫爲天下者, 則誠非吾子之事. 雖然, 請問爲天下.小童辭.

黃帝又問. 小童曰: 夫爲天下者, 亦奚以異乎牧馬者哉! 亦去其害馬者而已矣!

黃帝再拜稽首, 稱天師而退.

황제가 구자산(具茨)에서 대외를 만나려고 했다. 방명이 말을 몰았고, 창우가 수레 옆에 탔으며, 장약과 습붕이 앞에서 말을 끌었고, 곤혼과 골계가 수레를 타고 뒤를 따랐다. 양성의 들판에 이르렀는데 일곱 성인들이 모두 길을 잃었고, 길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마침 말을 기르는 동자를 만나서 그에게 길을 물어봤다. “너는 구자산을 알고 있니?”

동자가 대답했다. “.”

황제가 물었다. “대외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니?”

동자가 대답했다. “.”

황제가 말했다. “기이하구나 작은 아이야! 구자산이 어딨는 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대외가 어딨는 지도 알고 있다니.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물어봐야겠다.”

동자가 대답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이와 같을 뿐이니, 또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육합(六合) 안에서 놀았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병에 걸렸습니다. 한 어르신이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너는 해 수레를 타고 양성의 들판에서 놀아라.’ 지금은 제가 병이 조금 나아졌기에 저는 또 다시 육합의 밖에서 놀고자 합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제가 또 무엇을 벌이겠습니까!”

황제가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진실로 네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비록 그렇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물어보고자 한다.” 동자가 거절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동자가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말을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한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앨 뿐입니다!”
황제가 두 번 절을 하며 머리를 조아린 다음, 천사(天師)라 부른 뒤에 물러났다.“

 

비도(非徒)는 비단(非但)과 같습니다.

이 장은 유(遊)에 대한 설명입니다. 황제와 그의 신하들은 성인이지만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구자산을 향하는 도중에 길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가지지 않은 자들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놀기 때문에 길을 잃는 것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4.

知士无思慮之變則不樂, 辯士无談說之序則不樂, 察士无凌誶之事則不樂, 皆囿於物者也.

招世之士與朝, 中民之士榮官, 筋力之士矜難, 勇敢之士奮患, 兵革之士樂戰, 枯槁之士宿名, 法律之士廣治, 禮敎之士敬容, 仁義之士貴際. 農夫无草萊之事則不比, 商賈无市井之事則不比. 庶人有旦暮之業則勸, 百工有器械之巧則壯. 錢財不積則貪者憂, 權勢不尤則夸者悲. 勢物之徒樂變, 遭時有所用, 不能无爲也. 此皆順比於歲, 不物於易者也. 馳其形性, 潛之萬物, 終身不反, 悲夫!

지사(知士)는 생각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 없으면 즐겁지 않고, 변사(辯士)는 논리의 순서가 맞지 않으면 즐겁지 않고, 찰사(察士)는 다른 사람을 능멸하는 일이 없으면 기쁘지 않으니, 모두 외물에 갇혀있는 자들이다.

세상에서 뛰어난 사()들은 조정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보통의 백성들과 같은 들은 관료로서 영화를 누리고, 몸을 쓰는 들은 어려운 일을 당해야 자랑스러워하고, 용감한 들은 환란을 당해야 기운이 나고, 무기를 두른 들은 전쟁이 일어나야 즐겁고, 까칠한 들은 명예를 쌓고, 법률과 관계된 들은 다스리는 게 넓어야 하고, 예와 교육을 주장하는 들은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인의(仁義)를 주장하는 들은 제사를 귀하게 여긴다. 농부는 잡초를 뽑는 일이 없으면 즐겁지 않고, 상인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일이 없으면 즐거워하지 않는다. 백성들은 아침저녁으로 일이 있어야 부지런히 일하고, 장인들은 기계가 있어야 자부심을 갖는다. 돈과 재물이 쌓이지 않으면 탐욕스런 자들은 근심하고, 권세가 드러나지 않으면 허세를 부리는 자들은 슬퍼한다. 상황과 외물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은 변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때를 만나서 쓸모를 얻으면 그만두는 것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모두 변하는 세상에 따라가며 영합하는 것이니 외물에 자신을 바꾸고, 형체와 본성을 내달려서 온갖 것에 자신을 내던지니, 끝내 몸이 돌아오지 않는다. 슬프구나!

 

사려지변(思慮之變)은 생각이 계속해서 바뀌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담설지서(談說之序)는 논리의 순서입니다.

찰사(察士)는 ‘검사’, ‘변호사’를 말합니다.

고고지사(枯槁之士)는 겉으로 자신은 세상과 다르다며 산으로 들어가 깨끗한 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歲)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상황입니다.

불물어역자(不物於易者)는 그대로 해석하면 ‘바뀜에 따라 사물이 되지 않는 자’입니다. 그런데 앞뒤 맥락을 고려했을 때 외물에 구속된 사람이 나와야 되기 때문에, 그대로는 해석이 안 됩니다. 일단은 이역어물자(而易於物者)로 바꿔서 해석했습니다. 그러면 ‘사물에 따라 바꾸는 자’가 되기 때문에 해석이 좀 더 매끄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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