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서무기 13~15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9-05-23 10:40
조회
114
13.

有暖姝者, 有濡需者, 有卷婁者.

所謂暖姝者, 學一先生之言, 則暖暖姝姝而私自說也, 自以爲足矣, 而未知未始有物也, 是以謂暖姝者也.

濡需者, 豕蝨是也, 擇疏鬣者以爲廣宮大囿, 奎蹏曲隈, 乳間股脚, 此以爲安室利處, 不知屠者之一旦鼓臂布草操煙火, 而己與豕俱焦也. 此以域進, 此以域退, 此其所謂濡需者也.

卷婁者, 舜也. 羊肉不慕蟻, 蟻慕羊肉, 羊肉羶也. 舜有羶行, 百姓悅之, 故三徙成都, 至鄧之虛而十有萬家. 堯聞舜之賢, 擧之童土之地, 曰冀得其來之澤. 舜擧乎童土之地, 年齒長矣, 聰明衰矣, 而不得休歸, 所謂卷婁者也.

남에게 아첨하는 사람이 있고,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있고, 남을 유혹하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남에게 아첨하는 사람은 한 번 선생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치장하여서 스스로 기뻐하고,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찍이 사물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남에게 아첨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른바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돼지 몸에 붙은 벌레가 바로 그것이다. 털이 성긴 곳을 골라서 스스로 넓은 궁, 큰 정원이라 여기고, 돼지 살이 접히는 곳, 젖과 다리 사이에서 스스로 편안한 집, 이로운 곳이라 여긴다. [그러나] 도살자가 한 번 팔을 걷어붙이고 마른 풀을 깔아서 불을 지펴 자신과 돼지를 구워버릴 줄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좁은 곳에서 나아가고, 좁은 곳에서 물러나는 것이니,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남을 유혹하는 사람은, 순 임금이다. 양고기는 개미를 그리워하지 않지만, 개미는 양고기를 그리워하니, 양고기의 누린내 때문이다. 순 임금은 누린내 나게 행동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기뻐하였던 것이다. 순이 세 번 사는 곳을 옮겨 도시를 이루었는데, 등땅의 옛터에 이르러서는 십만호가 이루어졌다. 요 임금은 순 임금의 현명함을 듣고는 불모지에 그를 등용하였다. [그러면서] ‘바라건대 그가 은택을 베풀기를이라 말했다. 순 임금은 불모지에 등용될 때 나이가 많았고, 총명함이 쇠하였는데도 돌아가 쉴 수 없었으니, 남에게 유혹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훤주(暖姝)는 남에게 가식을 떠는 사람을 말합니다.

유수(濡需)는 남에게 편안히 몸을 맡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의지하다’, ‘기생하다’의 뉘앙스로 읽어야 합니다.

권루(卷婁)는 냄새를 풍겨서 남들을 유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동토지지(童土之地)는 불모지입니다.

 

是以神人惡衆至, 衆至則不比, 不比則不利也. 故无所甚親, 无所甚疏, 拘德煬和以順天下, 此謂眞人. 於魚棄知, 於魚得計, 於羊棄意.

以目視目, 以耳聽耳, 以心復心. 若然者, 其平也繩, 其變也循. 古之眞人, 以天待人, 不以人入天. 古之眞人, 得之也生, 失之也死., 得之也死, 失之也生.

그러므로 신인(神人)은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싫어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면 편당 짓지 않고, 편당 짓지 않으면 이롭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무 가까워질 바도 없고, 너무 소원해질 바도 없으니, 타고난 역량을 품고 조화를 키움으로써 천하에 따르니, 이를 일러 진인(眞人)이라 한다. 개미가 되면 지혜를 버리고, 물고기가 되면 계책을 붙이고, 양이 되면 누린내를 끊는다.

눈으로는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귀로는 귀에 들리는 대로 듣고, 마음으로는 마음 가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은 사람은 평탄한 마음이 먹줄과 같고, 변화는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옛날의 진인은 자연으로 사람을 대하지, 인위로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다. 옛날의 진인은 생을 얻으면 살고, 잃으면 죽으니, 얻는 것은 죽는 것과 같고, 잃는 것은 사는 것과 같다.

구덕양화(拘德煬和)는 ‘덕을 품고, 조화를 키우다’입니다. 여기서 덕은 타고난 능력입니다.

어어득계(於魚得計)에서 득(得)은 물고기가 물을 잊고 물에서 살아가듯 도를 얻은 사람은 오히려 도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의 뉘앙스가 담긴 글자입니다.

승(繩)과 순(循)은 진인이 자연스럽게 하늘의 법칙을 따름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14.

藥也, 其實菫也, 桔梗也, 鷄廱也, 豕零也, 是時爲帝者也, 何可勝言!

句踐也以甲楯三千棲於會稽. 唯種也能知亡之所以存, 唯種也不知其身之所以愁. 故曰, 鴟目有所適, 鶴脛有所節, 解之也悲.

약은 그 실질이 씀바귀, 도라지, 가시연, 저령이니, 이것이 그때그때 치료약이 된다면,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구천은 군사 삼천을 이끌고 회계산에서 포위되었다. 문종은 월나라가 망하는 게 월나라가 보존되는 것임을 알았으나, 자신이 근심스럽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올빼미의 눈은 나름대로 최적화되었으며, 학의 다리도 저절로 굽혀지니, [그것들을] 제거한다면 슬플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적(適)은 ‘최적화되다’라는 뜻입니다.

 

故曰, 風之過河也有損焉, 日之過河也有損焉. 請只風與日相與守河, 而河以爲未始其攖也, 恃源而往者也. 故水之守土也審, 影之守人也審, 物之守物也審.

故目之於明也殆, 耳之於聰也殆. 心之於殉也殆. 凡能其於府也殆, 殆之成也不給改. 禍之長也玆萃, 其反也緣功, 其果也待久. 而人以爲己寶, 不亦悲乎! 故有亡國戮民无已, 不知問是也.

그러므로 바람이 황하를 지나면 하수가 줄어들고, 해가 황하를 지나도 하수가 줄어든다. 해와 달에게 황하를 안정시켜줄 것을 부탁하니, 황하는 애초에 구속된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니, 근원에 의지하여 흘러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물은 땅을 지켜서 안정되게 하고, 그림자는 사람을 지켜서 안정되게 하고, 사물은 다른 사물을 지켜서 안정되게 한다.

그러므로 눈이 밝게 보려 하면 위태롭고, 귀가 잘 듣고자 하면 위태롭고, 마음이 결사적으로 추구한다면 위태롭다. 각각의 기관을 갈고 닦으려 하면 위태로우니, 위태로움이 완성되면 고칠 수 없다. ()가 자라면 더 불어나고,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면 노력이 필요하니,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나를 귀중하다고 생각하니, 또한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망국이 있고, 죽임을 당하는 백성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것을 물어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황하가 흐르는 것은 해와 달이 운동하기 때문입니다.

수(守)와 심(審)은 ‘안정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순(殉)은 ‘결사적으로 추구하다’라는 뜻입니다.

부(府)는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심(心)과 같은 ‘몸의 중심 기관’으로 보거나 이목구비 같이 ‘각각의 기관’으로 봅니다. 여기서는 ‘각각의 기관’으로 봤습니다.

인이위기보(人以爲己寶)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자신을 귀중하게 생각한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기(己)는 잘 보고, 잘 듣고, 뭐든지 ‘열심히 일하는 자신’입니다.

 

15.

故足之於地也踐, 雖踐, 恃其所不蹍而後善博也., 人之於知也少, 雖少, 恃其所不知而後知天之所謂也. 知大一, 知大陰, 知大目, 知大均, 知大方, 知大信, 知大定, 至矣. 大一通之, 大陰解之, 大目視之, 大均緣之, 大方體之, 大信稽之, 大定持之.

또 발이 밟은 땅은 협소하나, 밟지 않은 곳에 의지한 이후에야 계속 걸어갈 수 있고, 사람이 아는 것은 비록 적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의지한 이후에야 자연이 말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대일(大一)을 알고, 대음(大陰)을 알고, 대목(大目)을 알고, 대균(大均)을 알고, 대방(大方)을 알고, 대신(大信)을 알고, 대정(大定)을 알아야 지극하다. 대일(大一)은 통하게 하고, 대음(大陰)은 분해하게 하고, 대목(大目)은 보게 하며, 대균(大均)은 따르게 하고, 대방(大方)은 체득하게 하고, 대신(大信)은 이르게 하고, 대정(大定)은 유지하게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분별할 수 있는 지식과 분별할 수 없는 지식의 관계를 계속 걸어가는 것의 비유로 설명한 구절입니다.

천(賤)은 ‘얕다’ 천(淺)과 같은 뜻입니다.

선박(善博)은 ‘계속 걸어가다’라는 뜻입니다.

대일(大一)부터 대정(大定)까지는 대체로 순차적으로 해석합니다. 대일(大一)은 만물에게 두루 생명을 부여하는 하늘로, 대음(大陰)은 만물이 자신의 본성을 획득하도록 실어주는 땅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5개의 대(大)는 인간세계의 일로 볼 수 있습니다.

 

盡有天, 循有照, 冥雨樞, 始有彼. 則其解之也似不解之者, 其知之也似不知之也, 不知而後知之. 其問之也, 不可以有崖, 而不可以无崖. 頡滑有實, 古今不代, 而不可以虧, 則可不謂有大揚搉乎! 闔不亦問是已. 奚惑然爲! 以不惑解惑, 復於不惑, 是尙大不惑.

[7가지의 일을] 다하면 하늘과 하나되고, 이치를 따르면 지혜가 밝혀지고, 이치의 핵심을 터득하면 저절로 작동하니, 우주의 시원에 도()가 있게 된다. ‘를 이해한 사람은 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 같고, ‘를 아는 사람은 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지만, ‘를 알지 못한 이후에야 그것을 알 수 있다. ‘를 묻는 것은 한정하여 말할 수 없으나, 한정된 것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리저리 움직이나 실재하고, 옛날과 지금이 서로 바뀌지 않으니 무너지지 않고 [세계를 작동하는] 큰 중심축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찌 이것을 물어보지 않는가! 어찌 미혹되어 이렇게 되었는가! 미혹되지 않은 것으로 미혹됨을 이해하면, 미혹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니, 거의 크게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조(照)는 이치를 따를 때의 상태로 ‘빛나다’는 뜻입니다.

명(冥)은 노자에서 표현되었듯, 분별할 수 없는 이치를 말합니다.

애(崖)는 ‘한계’, ‘한정’을 뜻합니다.

힐활(頡滑)은 ‘위아래로 움직이다’라는 뜻입니다.

양각(揚搉)은 ‘개요’인데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축인 도(道)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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