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 2 4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11-13 11:08
조회
122
181107 수중전 후기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령운의 시를 읽었습니다. 사령운은 산수시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지금이야 시에서 자연을 노래하는 것이 흔하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엄청 새로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경>에서도 자연을 노래하지 않던가? 사령운의 산수시는 뭐가 다른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우선 산수시가 어떻게 새로운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경>의 시는 자연을 말하지만 매우 즉물적입니다. 즉 새를 보아도 그가 생각나고 나무를 봐도 그가 생각난다는 식이지요. 그래서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참새가 짹짹 우는구나 그가 보고싶어~ 나뭇잎이 수북하구나 자꾸 그가 생각나네~’ 이런 식이죠. <시경>의 시는 새의 노래나 나뭇잎의 모양을 나타낸 그런 언어들을 보고 화자의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자연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화자의 마음을 충실히 대변할 뿐이죠.

하지만 산수시는 다릅니다. 산수시에서는 화자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자연물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자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자연물이 등장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화자의 뜻만 전달(寫意)하기만 하면 그만인 시가 이제 그림을 그리기(摹象) 시작합니다. 시인이 화자의 마음만이 아니라 자연을 보는 눈을 장착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가령 이전까지만 해도 “봄이 되니 제비가 왔네” 정도로 즉물적으로 시를 썼다면 산수시에서는 “봄이 되니 울음소리가 달라졌다”라고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봄이 사실 전혀 다른 새소리로 둘러싸인 계절이라는 깨달음을 줍니다. 이렇게 자연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을 가지고 시를 쓰는 데는 사령운이 대가였습니다. 산수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데 탁월했지요. 그러면서 화자의 마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登池上樓>라는 시는 그가 영가태수로 부임했던 해의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태수 지위라면 물론 대단한 지위입니다만 사령운 기준에는 한참 미달이요 바닷가 벽지나 다름없는 곳이었지요. 그렇다고 시기가 시기인지라 대놓고 불만을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시에서 봄날의 분위기와 자신의 처지를 대조시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데 숲은 텅 비었다고 묘사하면서 시에서 텅 빈 숲의 나무들이 자기 마음에 다 옮겨심어졌다는 것을 암시하지요. 나 중앙으로 보내줘~ 뿐만아니라 이 시에서는 시점의 이동이 돋보이는데, 먼 산 보듯 햇볕이나 새소리에 집중하더니 갑자기 연못에 돋아나기 시작한 봄풀의 작과 생동감 넘치는 것을 포착하는 클로즈업이 시도되거든요. “연못에는 봄풀이 돋아나고 정원 버들에 새 울음소리 변했네(池塘生春草 園柳變鳴禽)” 라는 구절은 지금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봄 묘사라고 합니다.

<시경>의 시는 자연물과 화자의 심정이 1:1로 일치하는데 반해 사령운의 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가령 “밝은 달은 쌓인 눈에 비추는데 삭풍은 거세고 애달파라”라고 말하는 시에서 ‘밝은 달’과 ‘삭풍’의 대비를 통해 애달픈 화자의 마음은 더 두드러지게 됩니다. 이런 것도 사령운이 산수를 묘사하면서 이룩한 일이지요.

그러나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사실 사령운은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시를 통해 명성을 얻더라도 그걸 발판으로 중앙에 진출하려는 야심만만인 사람이었지요. 이전 시간에 배웠듯 손수 후에 송을 세우는 유유를 찾아갈 정도로 정성을 들이기도 했고요. 유유가 어이없게 짧은 시간 안에 죽어버리고, 사령운이 잡은 여릉왕 유의진이 또 이른 시기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불굴의 사령운은 이게 팔자려니 하고 살지 않았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령운 정도의 재력과 재능이면 이리저리 유랑하면서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감각이라는 게 또 다르겠죠. 무엇보다 사령운은 전 왕조의 개국공신이었고 말입니다. 지조고 뭐고 일단 다음 왕조의 줄을 잡은 건 정답이었는데 역시 전 왕조의 세력가란 현 왕조에선 풍전등화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시간은 드디어 도연명의 시를 배웁니다^^ 사령운의 시는 새롭고 놀라우며 또 드라마틱하지만  시 안의 감성과 묘사가 전부인, 꽉 닫힌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도연명은 담백하고 또 어떻게보면 심심할 수도 있는데 생각할수록 깊이가 더해져가는 맛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쪽이 더 좋을지는 일단 도연명까지 배우고 나서 곱씹어 보도록 하겠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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