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시의 맛 시즌2 6강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11-30 19:05
조회
116
시(詩)라고는 하나도 알지 못했던 제가, 겉핥기식이라도 《시경》, 굴원, 사령운 그리고 도연명까지! 다양한 작품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우쌤의 해석이 아무리 절절하고, 시를 많이 본다한들 감수성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키야~”하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옛날 양반들은 국화, 연꽃와 같은 꽃들이 필 때, 첫 눈이 올 때 등등 모여서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시를 배우기 전이었다면 저게 웬 뻘짓일까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읽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역시 가슴을 쿵쿵치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양시는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 어느 정도 지식을 알아야 하죠. 본격적인 〈귀거래사〉 썰을 풀기에 앞서 그의 시가 어떤 시대, 고민 속에서 나왔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동양시의 문화사를 그릴 때 기점이 되는 작품이 몇 개 있습니다. 굴원의 〈어부사〉, 왕희지의 〈난정집서〉, 소동파의 〈적벽부〉 그리고 도연명의 〈귀거래사〉. 각각의 작품은 시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은 다른 식의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하죠. 도연명의 〈귀거래사〉 같은 경우에는 ‘사(士)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한 작품입니다. ‘사’란 기원전 7세기 무렵 등장한 새로운 지식인 유형입니다. 이들은 비천한 출신에서부터 시작해서 귀족으로까지 출세했습니다. 공자, 묵자 등등도 사실 이런 유형에 속하죠. 그런데 일단 관직생활을 하면 대대로 부역과 군역을 면제받습니다. 그리고 정치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갔을 때는 서당, 서원을 중심으로 자신의 세력기반을 형성하죠. 중국은 물론 조선의 모든 ‘사’는 이런 삶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연명은 이와 다르게 ‘사’로서 걸어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줍니다.

원체 관직생활에 맞지 않았던 도연명은 사직서를 쓰고(그것도 수리되기 전에 바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고향에 내려갑니다. 누군가는 〈귀거래사〉가 그의 말년에 쓰였다고 하지만, 대체로 고향에 내려가는 도중 혹은 도착한 직후에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고향에 내려간 뒤에 그는 다른 ‘사’들과 달리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농사를 지음으로써 생활을 연명했고, 훈장을 했다 한들 학통을 전수할 제자를 기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정치적 러브콜을 거절하죠. 사실 도연명의 증조할아버지의 도간이 너무 유명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 그 세계를 떠난 뒤에 다시는 정치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은일(隱逸)로 보이기도 하는데, 우쌤은 ‘은일’과 은거(隱居)를 방외(方外)와 방내(方內)로 구분해주셨습니다. 도연명의 삶은 언뜻 ‘은일’로 보이는 것 같아도 그는 신선, 도사가 되기보다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살았습니다. 게다가 세상과 거리를 두긴 했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세상에 대한 근심이 있었죠. 《논어》의 “군자고궁(君子固窮)”,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같은 구절들은 필요하다면 자발적 가난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은 재산 늘리는 데 관심이 많았고, 도연명처럼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도연명의 시가 널리 읽히면서 농사짓는 삶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었지만 실제로 그처럼 살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이 웃픈 상황! 어쨌든 도연명의 시는, 특히 귀향 이후의 작품에서 이렇게 세속과 탈속의 경계에 서 있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란 “돌아왔도다!(혹은 돌아가리라!)”라는 뜻의 시[辭]입니다. 시는 도연명이 벼슬생활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는지를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벼슬을 했으나 그게 잘못된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이미 지나간 것을 탓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가올 것은 쫓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마 《논어》를 보신 분들은 〈미자(微子)〉편에서 접여가 “왕자불가간, 내자유가추(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라고 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나요? 도연명은 세상과 거리를 두긴 했지만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이런 표현들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 그는 음주에 빠집니다. 오죽하면 음주시까지 지었을까요. 그러나 도연명은 단지 술을 좋아한 걸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포인트는 “상관(常關)”, 항상 문을 닫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문을 닫았다는 것은 정치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만남을 거절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의 자전(自傳)인 〈오류선생전〉을 보면, ‘술을 주면 찾아가서 술을 마시겠으나 그밖에 다른 미련은 두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죠. 그만큼 세상에 신경 끄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이 벼슬할 때와 다르게 만족스럽다고 얘기합니다. 이를 ‘오만하다’라는 뜻의 오(傲)라는 글자로 표현하는데, 그만큼 마음도 편해졌다는 것이죠. 도연명이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삶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런 류의 편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연명은 “락부천명부해의(樂夫天命復奚疑)”,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오!라는 말로 시를 마칩니다. 우쌤은 여기서 ‘의심하다’라는 뜻의 의(疑)에 주목하셨습니다.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다는 말은 그 전까지 계속 의심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겠다’고 말은 했으나 어쩌면 지금까지 의심했던 것처럼 또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쌤은 끊임없이 의심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도연명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글자라 하셨습니다. 부귀를 좇는 사람들은 그것이 최선의 가치라는 데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걷는 길이 맞는 길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죠. 치열한 고민이 벌어지는 이 세계야말로 그가 얼마나 고고하게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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