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티베트의 지혜> 후기

작성자
정은하
작성일
2018-06-18 23:35
조회
170

이번주 수업에는 <티베트의 지혜>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자인 소걀 린포체는 서구에 와서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그들의 문화 안에 죽음에 관한 지혜가 전무하고, 그리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영적 돌봄도 없이 그대로 방치된 채로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티베트에서는 수행자 또는 일반일들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의례와 의식, 그리고 임종에 임박하여 영적 지시를 받는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적 문화의 영향으로, 현대인들은 죽음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오로지 삶과 젊음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점을 안타까워 합니다.  그렇다면 티베인들이 죽음에 관해 지닌 지혜는 무엇일까요.


이 책의 1부는 사실 죽음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티베인들이 가지는 불교적 생사관에 관한 기본개념- 윤회와 카르만, 공의 지혜와 마음의 본성, 그리고 바르도- 을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기본 불교 개념을 일반인에게 설명하는 책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윤회를 통하여 죽음 이후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어도, 공, 연기 그리고 자비심과 같은 불교적 지혜와 수행이 삶 안에서의 번뇌와 고통을 끊어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이러한 지혜와 수행이 죽음과 어떤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 잘 와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죽음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간다는 인상이 점차 뚜렷해집니다.  그리고 삶에서 닦은 모든 지혜와 수행이 종국적인 목표인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티벳불교에 의하면, 바로 죽음의 순간 마음의 근원적인 본성, 근원적인 광명 이 방대하게 눈부시게 현현하는데,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이 근원적 광명을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로지 삶에서 영적 수행을 통해 마음의 본성에 정통해지고 친숙한 사람만이, 그 광명을 알아볼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티벳트인들이 지니는 ‘죽음의 순간’에 관한 독특한 관념을 발견하게 되는데, 죽음은 ‘종결 또는 단절’의 의미가 아니라 ‘완성 이자 기회’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하나의 ‘완성 또는 기회’의 의미를 지닐 때만, 죽어가는 자도 그리고 죽어가는 자를 대하는 사회도 죽음에 대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여러개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우리가 죽기 직전 지닌 마지막 생각과 감정이 곧바로 이어지는 미래에 극단적으로 강력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376)’ 구절이였습니다.  죽음이라는 내적, 외적 해체의 과정 속에서 나의 마지막 생각과 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습관적 의식과 감정, 그리고 그 해체과정을 겪어내는 나의 신체적, 의식적 반응외에  없겠구나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학기 내내 이야기 되었던, ‘삶과 죽음의 순간이 하나’라는 명제의 의미가 굉장히 무겁게, 그리고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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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9 15:31
    저는 특히 두 가지가 마음에 남습니다. 먼저, '죽음을 함께 하는 친구'(리 호이나키)와 '죽음을 함께 하는 스승'(티베트의 지혜)에 대해 토론했던 것이 좋았습니다. 깨달음의 기회, 생이 주는 최고의 선물 앞에서 함께 그 축복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니! 티베트의 전통에서 스승은 붓다보다 한층 친근한 존재로 존경받는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과 고통의 문제입니다. '죽음의 과정에는 충분할 정도의 고통이 뒤따른다'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두려움없는 책임감과 자비심을 느끼기란?
    숙고해야 할 문제가 많은 마지막 읽기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