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와 글쓰기

10월 27일 장자와 글쓰기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9-10-25 13:11
조회
136
매일매일 조금씩 《맹자》, 《장자》를 읽고들 계시나요? 생각해보니 《맹자》와 《장자》는 각자 유가와 도가의 경전이었죠. 경전이라면 모름지기 매일매일 읽으면서 그 말을 음미해야 합니다. 곱씹고 곱씹다가 샤워하는 순간, 똥 싸는 순간 불현듯 그 말이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채운쌤은 똥 싸다가 갑자기 불위불능(不爲不能)에 대해 이해됐다고 하셨죠. 맹자가 ‘불능’의 예를 든 건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바다를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터무니없는 일들 빼면 대체로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맹자가 제선왕에게 인정(仁政)을 베풀지 않는 것이지 베풀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과 같이,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한 많은 이들도 사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평소의 저를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제가 할 수 없었던 필연적 이유들을 만들려고 했더군요. 마침 그때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몸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 등등 갑자기, 하필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는 시나리오를 씁니다. ㅋㅋ 그런데 이유를 붙이려면 한도 끝도 없이 붙일 수 있겠죠. 그러나 이렇게 이유를 붙여봤자 무엇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찝찝해지더라고요. 또 말하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열심히 시나리오를 짜지 않으신가요? 마음을 졸이며 구차하게 말을 늘어놓을 바에야 차라리 떳떳하게 죄를 인정(?)하는 게 가장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일단 저는 이게 더 마음 편한 길인 것 같아요.

수업 중에 채운쌤이 얘기하신 것 중에 존심(存心)도 있었죠. 우리는 살면서 자기 마음 하나밖에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 하나 지키는 게 어떻게 보면 전부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맹자에게 ‘존심’은 인의(仁義)가 인간을 이롭게 만들 것이라는 신념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인의’의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스스로 천리(天理)를 깨닫는 것 외에 관심이 없었죠. 그에 비해 우리는 스스로의 깨달음보다는 돈 같은 외부 물질이나 칭찬, 비난 같은 외부 평가에 더 매달립니다. 더 많은 외부 가치들을 구하고자 하는 욕심이 산만한 일상으로 드러납니다. 산만한 일상을 정돈하지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다 가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존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천 길 낭떠러지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세상이 달라집니다.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그 높은 곳에서 아등바등 거리기보다 한 발을 내딛는 것은 내려놓을 수 없다고 미리 규정지었던 자신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는 일입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하루에 몇 시간이나 쓸데없이 보내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인터넷 검색, 유튜브 동영상 이런 것들에 정신을 뺏기는 것이 우습게 볼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세이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공지하겠습니다. 6주째까지(11월 9일) 맹자와 장자 자료 정리를 하고, 7주째에 서론과 빈틈없는 개요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8주째에 많이 진행된 물건을, 9주째에는 초고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10주에 발표합니다. 저희는 지금 3주째를 마쳤습니다. 남은 4, 5, 6주 동안 맹자와 장자를 정리하고 틈틈이 개요를 짜셔야 해요.

 

수업 시간에 읽었던 미셸 푸코의 마지막 대담을 약간 정리하고 공지를 마칠게요.

채운쌤은 푸코의 작업으로부터 고대 철학을 분석하는 방식을 배워야한다고 하셨죠.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을 쓰고 8년 뒤에야 2권을 발표합니다. 사람들은 푸코가 8년 동안 책을 쓰지 못한 걸 두고 그 스스로의 논리적 모순에 부딪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푸코는 75-76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싶어 했죠. 그것은 ‘주체의 역사’입니다. ‘주체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푸코에게는 ‘진리 문제’, ‘권력 문제’ 그리고 ‘개인의 행위 문제’가 더해졌습니다. 이 중 ‘개인의 행위 문제’는 우리가 읽었던 《비판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런 식으로 통치 받지 않을 수 있는 수양의 문제’ 다시 말해 ‘주체화의 문제’를 말합니다.

푸코의 주체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철학의 주요 문제를 스타일(양식)로 보는 것입니다. 주체는 스타일의 총합입니다. 푸코는 말년에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철학의 문제, 진리를 말하는 문제는 그들 자신의 스타일이었음을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디오게네스는 스스로 개처럼 살기를 원했고, 실제로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현대인의 눈에 디오게네스는 미친 사람 정도로만 보이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철학자로 인식됐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말하는 파르헤지아스트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만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스타일의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비슷한 것이 고대 중국에도 있었습니다. 《논어》 〈향당〉편을 보면 공자가 조정에 나갈 때는 옷을 어떻게 입고, 어디서 인사하고, 집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밥은 어떻게 먹고 등등 매우 세세한 일상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스타일이 곧 자신을 드러낸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푸코는 이런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이 현대인들에 비해 더 우월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스타일의 발명은 아주 소수의 개인들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스타일의 발명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스타일을 발명하려고 했습니다. 스타일을 발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고대는 우리보다 더 첨예한 문제의식이 있고, 더 철학적으로 역량이 높았던 시대가 아니라 지금과 다른 문제의식이 있었던 시대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대에 맞게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고대의 낯선 사유를 배워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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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5 13:14
    머릿속에서 맹렬히 돌아가는 시나리오 ㅋㅋㅋㅋㅋ망상을 거두고 글로 잘 풀어가 광명 찾으면 좋겠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