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와 글쓰기

11.3 장자와 글쓰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10-30 20:52
조회
201
191103 장자와 글쓰기 공지

 

이번에 에세이를 쓰면서 느끼는 건 생각을 하다가도 금방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자신을 보는 일 같습니다. ‘매일, 조금씩 쓴다!’는 당초의 계획을 만만하게 봤던 과거의 저 자신을 때려주고 싶네요. 한 시간은커녕 삼십분 이어가는 것도 잘 안되니-_-;; 멍하니 유투브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슥슥 밀어대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면 하루 아주 짧은 시간 집중하는 것도 내 습관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튼, 매일 조금씩, 어쨌든 쓴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이런 태도로 한번 가 봅시다~

 

수업 중 품격品格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품격은 그 자체로 비평어로, 어떤 행위의 레벨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초상화를 그리려면 그 사람과 함께 기거하며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앉고, 일어서고, 하인을 대하고 가족을 대하는 방식을 관찰하며 가장 그 사람다움을 담은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 것이지요. 그 사람의 외관이 아닌 품격을 구현하는 초상화를 추구했던 것이죠. 만약 제 주위를 화가가 돌아다닌다면? 일단 그의 관찰 자체를 못 견딜 것 같네요. 게다가 그림에 구현할만한 레벨의 행동을 할 것 같지도 않고요.
모든 고대 철학의 문제는 자기 떳떳함이었습니다. 자기진실과 마주하는 용기를 가진 자가 품격있는,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장자와 맹자 또한 이런 맥락에서 大知라든가, 대장부 같은 것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고 욕망에 따르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삶을 조형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 사람의 품격은 돈이나 지위로 환원되지 않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스타일입니다. 푸코는 품행conduct, 행위의 양식화라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시대나 특정한 방식의 주체화를 강요합니다. 신자유주의의 주체화는 특히 예속적인 방식이지요. 신자유주의는 어떤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잘 살려면~’ 으로 시작해서 그에 대한 솔루션들을 제시합니다. 그로인해 ‘이것 외 방법이 없다’는 체념적 태도를 심어주지요. 그로인해 통합적이고 하나의 삶으로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같은 문제를 맞닥뜨리더라도 그것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해결하는 법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자신은 그런 문제를 만나고 돌파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지요. 채운샘은 문제상황 자체가 주체를 구성하는 기회라고 하셨습니다. 각자의 문제를 지닌 채로 온갖 것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만들어지고, 또 나의 품행이 구성된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는 마냥 ‘멋진’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다양한 문제상황 앞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한 가지 뿐이라면? 이는 개인으로서도 생물종으로서도 재앙에 해당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모두가 한 가지 방식으로 활동하는 식으로 몰리는 이 재앙 상황을 타계하는 데 고대 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힌트를 줍니다. 고대의 문제는 언제나 ‘나’는 ‘누구’이다, 라고 하는 레벨과 일반화의 문제가 아닌, ‘나’는 ‘어떻게’ 내가 되는가, 라는 자기만의 고유성을 형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세이를 쓰다보면 이미 ‘답’ 같은 것이 나와 있고 거기에 내 문제를 껴 맞추다가 ‘폭망’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건 정말 나와 대면하여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자신의 스타일을 구성하기보단 계속 나를 어떤 답, 옳음에 가두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문제를 만나고 돌파하며 ‘내’가 되는가. 이것을 계속 생각하며 에세이를 써 나가야겠습니다~

 

다음주는 <맹자>와 <장자> 정리 해오시고, 서문을 써 옵니다.
간식은 없습니다~^^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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