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프로젝트 11.29 강의 후기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18-12-06 03:03
조회
145

반장님에게 미리 말해두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늦어졌습니다,


지난 시간 “어떤 대상을 그 대상으로 나타내게 하는 조건들”을 보는 역사 유물론적 관점으로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을 다시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내용을 보면서도, 그것들이 어떻게 엮인 건지는 여전히 감이 안 잡혔지요. 어떤 대상은 그 대상을 그 대상이게 하는 조건 속에 나타나는 동시에, 또 다른 대상들을 나타나게 하는 조건이 된다고 할까요. 엉킨 실뭉치 풀으려다가 더 헝클어 뜨려버린 기분이었습니다. 가령 “과중한 업무를 안고 있는” 왕과 그의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재상을 비롯 여러 관직이 생겨남을 보다보면 당시 그 관직의 주요 업무를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역대 왕과 백성 등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변했는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음..어떤 대상을 보려면 한 두 개의 관계나 조건을 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세포 분열하듯 그 대상이 분열한다고 할까요.

채운샘이 강의 중, 이분 할둔의 저작이 놀라운 것은 대상이 “어떤 식으로 분기하느냐를 보여준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에 반하는 개념이라고 부정한 ‘아싸비야(연대의식)’ 개념을 이븐 할둔이 다시 이슬람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끌어왔을 뿐 아니라,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 개념을 풀어냈다는 걸 이야기 하다 나온 말이었는데요, 다른 데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여기서 아싸비야는 ‘연대 의식’이라는 말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듯 국가를 이루는 작은 집단의 바탕이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이슬람교도들이 생각하는 한물간 부족주의 개념도 아니구요. 채운샘에 따르면 이는 특이한 연대 의식인데 그 집단의 “위신·명예” 같은 거라고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우리는 누구누구의 자손이다’ 같은 데서 생겨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 집단만의 자부심 같은 거라는 거죠. 물론 이런 연대 의식은 애국심이나 국가주의와 연결해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사비야를 공유하는 집단을 바탕으로 왕권이 발달했다”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븐 할둔은 아사비야를 이야기 할 때, 국가적인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른 측면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븐 할둔이 《역사 서설》의 1~4부를 거치면서 인간을 전야민과 도회인으로 나누어 보는 방식에서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그는 두 유형의 차이가 인종의 문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싸비야 의식의 “양가성” 속에서 나타난 생활 양식의 차이로 보고 있습니다. 전자는 아싸비야가 국가적인 것과 연결 되어 일정한 방식에 길들여질 때 도회민의 유형으로 나타나고, 후자는 국가가 되기를 거부하며 부족을 유지하려는 힘으로써 전야민의 삶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족을 유지하는 데 왜 더 큰 부족이 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얼핏 이 상태를 유지하려면 더 큰 힘을 소유해야하고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들과 연대해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아사비야를 공유하는 부족은 그 자체로 “우리가 강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부족과 섞이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단지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침략하고 약탈한다는 것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잔인하게 들리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디에도 의지하거나 인정 받으려 하지 않다니, 정말 강자의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채운샘은 그 힘 자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아싸비야라는 힘이 어떤 것과 연결 되는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들뢰즈/가타리는 이러한 유목민 혹은 유목적 힘을 “전쟁 기계”라고 개념화하는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접속하는 가”하는 관계 속에서 보기 때문에 그 개념 자체가 규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쟁기계”라는 개념을 잘 설명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전쟁 기계는 “국가의 힘에 대립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국가란 실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국가 장치들, 온갖 제도와 코드들을 통해 생성되는 중심 같은 거라고 합니다. 가령 ‘좌측 보행’이라는 규칙 같은 것, 신호등에서 건너야 한다는 모든 코드들로 이루어진 “홈”으로 이루어진 것이 국가라고 합니다. 전쟁 기계는 이 코드와 “동일화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납니다. 코드들을 깨부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거죠. 또 이를 뒤집어 보면 국가는 ‘동일화 하지 않는 힘’이 깨질 때, “기존의 조직 원리”가 깨질 때 발생한다는 뜻이 됩니다. 즉 조직의 원리가 제도화 되고 길들여 질 때, 국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족의 추장이 권력의 중심을 이루는 순간 거기에 국가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채운샘은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후기를 쓰면서 문득, 채운샘과 도반들에 의지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의 나의 공부 방식은 어떤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가와 아사비야의 양 극단을 오가며 헤메는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이만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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