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류학

예술인류학 6주차 후기

작성자
목인
작성일
2019-09-24 17:47
조회
164
 

<반딧불의 잔존> 뒷부분에 대한 토론은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놓치기 쉬운 반딧불과 같은 잔존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알아보고 그것을 정치적 힘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중점을 이루었다. 이것은 각자 ‘잔존의 이미지’라고 가져온 이미지들을 디디-위베르만의 예시를 참조하여 분석해보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는데, 그 결과 ‘잔존’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미지의 성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우선 디디-위베르만은 벤야민의 말을 빌어 ‘우리의 타고난 비관주의의 지평 자체를 조직하는-또한 분해하고 분석하고 반박하는-방식’으로서 이미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여기서 ‘비관주의’를 조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비관주의를 재조직한다해도 결국 비관주의는 비관주의가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비관주의라는 것이 절망적으로 모든 것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뚜렷이 보면서 함께 따라가야하는 희망, 즉 지평 없이 그냥 ‘해보는 것’, 살아있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저지르는 힘이 오히려 비관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라 보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에만 스포트라이트에 비춰진 초점, 즉 그들이 제사하는 지평에 시선을 강탈당하지 않고, 그것이 지나간 뒤의 희미한 빛의 잔존들조차 감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낸 골딘의 사진에서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한 얼굴을 한껏 치장하고 카메라 앞에 앉은 한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았다. 폭행당한 과거는 치욕스럽지만 아직 상처가 남아있는 그 얼굴은 현재의 맥락에 놓여 여전히 꾸미고 치장하고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응시자의 시선은 그것을 억울한 피해자의 증거사진으로 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살아나가는 ‘파괴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으로 볼 수도 있다. 라울스 네메즈 감독의 영화 <사울의 아들>에서도 역시, 독일군에게 쫓기는 와중에서도 시체를 매장하려 애쓰는 한 남자가 나온다. 이성적이지 않아보이는 그의 행위는 우리에게 무언가 하나의 목적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복합적인 인간의 욕망을 읽게 한다. 어떤 행위를 이미지로 남기는 것, 그리고 그것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내려 하는 시선은 모두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행위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적극적인 의식의 발로가 아니어도,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밖에 없는 행위들, 결국 그런 것들이 우리가 잃지말아야 할 잔존의 힘,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잔존의 이미지들이 아닐까 생각해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이미지들은 너무나 미약하고 희미해서 이런 예술가들의 눈이 아니면 찾아내기 힘든 것일까. 어쩌면 작가의 시선과 상관없이 초점 바깥의, 프레임 바깥의 것에까지 우리의 의식이 가 닿을 수 있다면 잔존의 이미지들은 훨씬 더 많이 우리 눈에 띄지 않을까. 예를 들어, 황교안의 삭발식 이미지 등은 한창 매스컴에서 인기인 이미지이지만, 나는 그것에서 삭발이 갖는 기존의 의미가, 그 행위의 권력이 쇠락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희화화 속에서 기존의 행위가 갖던 아우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행위와 결부된 하나의 관념이 떨어져나가고, 그 관념이 자리할 새로운 행위에 대한 감각이 벼려진다. 이런 의미에서 디디-위베르만은 결국 이미지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숨어있는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고,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로 인한 빛과 어둠의 경계에 눈멀지 않는다면 그 이미지들은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낼, 여전히 강력한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전체 1

  • 2019-09-24 21:55
    세미나 시간에 언급된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이번 시즌 동안 '이미지란 무엇인가'를 대한 여러 시선들을 경유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반딧불의 잔존>을 읽으면서 이미지가 단순한 시각적 형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움직임과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베르만에게 이미지는 내적인 빛, 인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역량이나 행위와도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기억하고 표현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의 행위 또한 반딧불의 빛처럼 빛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책만 남았네요. <유체도시를 구축하라!> 읽고 10월 3일 1시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