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4학기 3주차 공지 '사람은 누구나 깨닫고자 한다'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10-30 13:33
조회
240
드.디.어! 《에티카》를 5부까지 다 강독했습니다~ 이야~ 다만, 정희쌤과 함께 이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하지 못한 게 아쉽네요! 그래도 다음 주에는 다시 뵐 수 있을 테니, (검사는 역시 음성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지성교정론》의 감동을 같이 만끽해보죠.

다음 시간부터는 《지성교정론》을 읽기 시작합니다. ‘각주가 읽을 만하다’는 정수쌤의 코멘트를 따라 김은주 교수님의 번역본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25절까지 읽어와 주세요! 니체의 《선악의 저편》은 3장 〈종교적인 것〉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에세이는 본론의 개요를 챕터별로 한 단락씩 써 오시면 됩니다. 에휴, 이번 주에도 할 게 많네요! 간식은 윤순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간단하게 토론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어찌어찌 읽기는 했지만, 《에티카》 5부 뒷부분은 여전히 어렵네요! 그래도 드문드문 떠오르는 마트롱의 해석에 기대어 아주 약간씩 집중되는 대목이 있네요. 이번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5부 정리39의 주석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스피노자는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사람’과 ‘갓난아이’를 대립시킵니다. 갓난아이는 외부 원인에 최고로 의존하는 신체를 가진 사람이고,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사람’은 자유인 혹은 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자로 살아가기 위해 갓난아이의 신체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스피노자는 좀 더 다른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 생에서 우리는 특히 갓난아이의 신체의 본성이 감당할 수 있고 또 그렇게 기여할 수 있는 한에서 이러한 신체를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자기 자신과 신, 실재들에 대해 커다란 의식을 지닌 정신과 관련되어 있는 신체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자기 자신과 신, 실재들에 대해 커다란 의식을 지닌 정신과 관련되어 있는 신체’란 변용 역량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마트롱의 표현을 빌리면, 이성이 무적이 되는 문턱을 지난 신체겠죠.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그러한 신체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우리 자신의 실존을 지속하려는 노력, 곧 코나투스입니다. 즉, 살아가는 한 모든 인간은 3종의 인식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갓난아이든 현자든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자신의 신체를 이성의 질서에 따라 교정하고자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마트롱은 3종의 인식이 씨앗의 형태로나마 1종의 인식에 잠재해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스피노자가 5부에서 ‘영원한 정신성’ 혹은 정신의 본질 같은 개념을 굳이 얘기한 것이 누구나 정신의 지복을 위한 여정을 떠나기에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됐음을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조금 다른 맥락일 수 있지만, 이번에 읽은 《선악의 저편》에서 사유의 토대로서 젊음과도 통합니다. 31절에서 니체는 젊음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젊음이 좋다거나 젊을 때 잘해야 한다는 식의 뻔한 예찬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젊음은 신체적 나이 같은 게 아니라 기존의 가치 체계, 도덕으로 환원되지 않는 힘 의지에 가깝습니다. 힘 의지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 생명력과 같은 것이듯, 젊음 역시 얼마나 나이를 먹든 아무리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후회하며 자책하더라도 끊이지 않습니다. 니체는 31절 마지막에 “‘젊음’에 반대하는 입장”을 옹호한 사람들 역시 여전히 젊음에 기반했었던 역설을 꼬집죠.

잘 정리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유독 ‘생명력’이란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생명이라 하면 또 ‘파릇파릇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스피노자와 니체의 코나투스 혹은 힘 의지는 그런 것과도 또 다르죠. 생명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철학적으로 생명력을 왜 이해해야 하는지 등 여러 질문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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