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4학기 5주차 공지 '역량을 입증해야 할 과제'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11-13 20:35
조회
190
벌써 5주차 공지를 쓰고 있네요. 일단 저희는 초고를 위해 달리고 있고, 정수쌤은 원고를 넘기셨습니다. 이 외에도 환절기 컨디션 난조, 수능과 대입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고3 보조 등 각자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요즘입니다. 무사히 임인년을 맞이하기 위해 더 힘내보죠!

다음 주에는 《지성교정론》 71절(79쪽)까지, 《선악의 저편》 〈제6장 우리 학자들〉을 읽어 오시면 됩니다. 에세이는 각자 하실 수 있는 만큼 진행해오시면 됩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최소한 서론을 넘어가보죠! 간식은 정희쌤께 부탁드릴게요.

간단하게 토론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지성교정론》을 읽는 데 《에티카》에서 저희를 당황케 했던 ‘형상적 본질’, ‘표상적 본질’ 같은 악명 높은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스피노자는 하나의 관념에 ‘형상적 본질’과 ‘표상적 본질’이 둘 다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 관념이 그 대상과 상이한 이상, [대상만이 아니라] 관념 역시 그 자체로 이해 가능한 어떤 것일 것이다. 다시 말해, 형상적 본질인 한에서의 관념은 다른 표상적 본질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또 이 다른 표상적 본질 역시 그 자체로 볼 때 실재적이며 이해 가능한 어떤 것일 테고, 이렇게 무한정 나아갈 것이다.” - 《지성교정론》 33절

관념에 형상적 본질과 표상적 본질이 동시에 있다는 것은 하나의 관념에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형상적 본질이 있고, 인식, 그러니까 사유 속성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표상적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표상적 본질 역시 그 자체로 볼 때 실재적이며 이해 가능한 어떤 것”이라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설명이 《에티카》 1부 정리28 독특한 실재에도 나왔었죠. 어떠한 실재를 특정한 방식으로 작업하도록 규정하는 실재는 그 역시 다른 독특한 실재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작업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무한하게 나아간다는 내용이었죠. 《지성교정론》에서부터 스피노자는 연장과 무관하게 관념의 고유한 실재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토론 중에는 ‘참된 관념’을 다르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주어진 참된 관념”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참된 관념’이라 할 만한 것이 어딘가에 따로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참됨”이란 그 자신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삶을 조직함으로써만 증명됩니다. “주어진”이란 표현도 ‘초월성’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내재된 인식 역량을 지시합니다. 물론 모두가 인식 역량을 발휘하며 삶의 능동성을 실험하지는 않죠. 다만 인간은 계속해서 참된 관념을 조직함으로써, 그러니까 자신의 고유한 선(善)을 발명하는 인식의 여정을 실험함으로써 내재된 인식 역량을 입증해야 할 윤리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잘 정리되지는 않지만, 결국 관념의 참됨은 그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되는 만큼, 다양한 관념들과 접속될 수 있는 만큼 증명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번에 읽는 니체의 ‘도덕’에 대한 얘기가 스피노자의 ‘참된 관념’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니체에게도 도덕(‘~해야 한다’ 또는 ‘~하지 말아야 한다’의 명령어)은 복종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먼저 제기됩니다. 재밌게도 니체는 도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읽었던 〈종교적인 것〉 부분에서 나왔던 것처럼, 도덕은 강자가 강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요소입니다. 즉, 일상을 그러한 방식으로 규제함으로써 자신에게 보다 더 큰 기쁨으로 느껴진다고 스스로 동의하고 실험하는 것이죠. 그런데 왜소한 근대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에 내재된 정동을 분석하기보다 무작정 복종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힘의지를 실험하기보다 다른 이들을 똑같이 왜소하게 만드는 데서 기쁨을 느끼죠. 따라서 똑같이 도덕에 복종한다고 하더라도 강자와 약자의 양상은 매우 다릅니다. 강자는 자신의 고유한 기쁨을 느끼는 과정에서 도덕에 복종하는 반면에, 약자는 다른 사람을 약자로 전염시키는 데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도덕에 복종합니다. 스피노자의 현자-무지자, 니체의 강자-약자가 여러 지점에서 겹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조금 차이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현자는 다중의 역량을 인식하며 무지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반 위에서 윤리를 고민합니다. 니체의 강자 역시 약자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윤리를 고민하더라도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토론에서는 정치적으로 공동체를 고민하는 철학과 자기 삶을 귀족적으로 만들려는 철학의 차이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만, 음... 좀 더 공부해봐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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