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 격몽복습 > 公孫丑章句下 - 11장 ~ 14장

작성자
김지현
작성일
2019-08-06 17:09
조회
141
11. 孟子 去齊 宿於晝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시면서 주(晝) 땅에서 묵으셨다.

<集註>

晝 齊西南近邑也

주는 제나라 서남쪽에 가까운 읍이다.

有欲爲王留行者 坐而言 不應 隱几而臥

왕을 위하여 맹자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려는 자가 있어 앉아서 말하였으나, (맹자께서) 응대하지 않으시고 안석에 기대어 누우셨다.

<集註>

隱 憑也 客坐而言 孟子不應而臥也

‘은’은 기댐이다. 객(客)이 앉아서 말하는데 맹자께서 응하지 않고 누우신 것이다.

憑:기댈빙.

客 不悅曰 弟子 齊宿而後敢言 夫子 臥而不聽 請勿復敢見矣 曰 坐 我 明語子 昔者 魯繆公 無人乎子思之側 則不能安子思 泄柳申詳 無人乎繆公之側 則不能安其身

그러자 객(客)이 불쾌해하며 말하였다. “제가(=弟子,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말) 하루 동안 재계(齋戒)한 뒤에 감히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 누워 계시면서 듣지 않으시니, 다시는 감히 보지 않기를 청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앉으시오. 내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겠소. 옛날에 노나라 목공(繆公)은 자사 곁에 (자신의 성의를 전해줄)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편안하게 머물게 하지 못할까봐 염려하였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 같은 사람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자기 몸을 편안히 하지 못하였소.

<集註>

齊宿 齊戒越宿也 繆公 尊禮子思 常使人候伺 道達誠意於其側 乃能安而留之也 泄柳 魯人 申詳 子張之子也 繆公尊之 不如子思 然 二子義不苟容 非有賢者在其君之左右 維持調護之 則亦不能安其身矣

‘齊宿’은 재계하고 하룻밤을 지냄이다. 목공은 자사를 존중하고 예의를 다해서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살피게 하고 곁에서 성의를 도달하게 하여 편안히 머물게 하였다. 설류는 노나라 사람이고 신상은 자장의 아들이다. 목공이 이들을 존중한 것이 자사만 못하였고 이들 두 사람은 의리상 구차하게 용납하지 않았다. 군주의 좌우에 ‘유지(지탱하여줌)’, ‘조호(매만져서 보호해줌)’해주는 현자가 없다면 그 몸을 편안히 여기지 못한 것이다.

子 爲長者慮而不及子思 子 絶長者乎 長者 絶子乎

그대가 나를 위하여 생각해주되 목공이 자사를 생각해주는 것에 미치지 못하니, 그대가 나와 절교(絶交)한 것이오? 내가 그대와 절교한 것이오?”

<集註>

長者 孟子自稱也 言 齊王 不使子來 而子自欲爲王留我 是 所以爲我謀者 不及繆公留子思之事 而先絶我也 我之臥而不應 豈爲先絶子乎

‘長者’는 맹자께서 자신을 칭하신 것이다. 말씀하시기를 제왕이 그대로 하여금 오게 하지 않았는데 그대가 스스로 왕을 위하여 나를 만류하려고 하나 이는 나를 위한 그대의 도모함이 목공이 자사를 머물게 한 일에 미치지 못하여 먼저 나를 끊은 것이다. 내가 눕고 응하지 않은 것이 어찌 먼저 그대를 끊음이 되겠는가라고 말씀한 것이다.

 

12. 孟子 去齊 尹士 語人曰 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 則是 不明也 識其不可 然且至 則是 干澤也 千里而見王 不遇故 去 三宿而後出晝 是何濡滯也 士則玆不悅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시자 제나라 사람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맹자가, 왕께서 탕왕(湯王)․무왕(武王) 같은 성군(聖君)이 될 수 없음을 모르고 왔다면 이는 지혜(智慧)가 밝지 못한 것이고,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왔다면 이는 은택(恩澤)을 바란 것이다. 천 리 먼 길을 와서 왕을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서 떠나가되 사흘이나 묵은 뒤에 주 땅을 벗어났으니, 어찌 이리도 지체한단 말인가? 나(士)는 이것이 못마땅하다.”

<集註>

尹士 齊人也 干 求也 澤 恩澤也 濡滯 遲留也

高子 以告

맹자의 제자 고자(高子)가 이 말을 아뢰자

<集註>

高子 亦齊人 孟子弟子也

고자는 또한 제나라 사람이고 맹자의 제자이다.

曰 夫尹士 惡知予哉 千里而見王 是予所欲也 不遇故 去 豈予所欲哉 予不得已也

“윤사가 어떻게 나를 알겠는가? 천 리 먼 길을 와서 왕을 만난 것은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만, 뜻이 맞지 않아서 떠나가는 것이 어찌 내가 원한 것이었겠는가? 나는 부득이해서 그렇게 한 것이네.

<集註>

見王 欲以行道也 今道不行 故 不得已而去 非本欲如此也

왕을 만나봄은 도를 행하고자 해서였으니, 이제 도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부득이해서 떠나가는 것이요 본래 이와 같고자 함이 아니었다.

予 三宿而出晝 於予心 猶以爲速 王庶幾改之 王如改諸 則必反予

내가 사흘을 유숙(留宿)한 뒤에 주 땅을 벗어났지만, 내 마음에는 오히려 이것도 빠르다고 생각했으니, 그것은 왕께서 행여 마음을 고치시지 않을까, 왕께서 만일 마음을 고치신다면 반드시 나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네.

<集註>

所改 必指一事而言 然 今不可考矣

‘고친다는 것’은 반드시 한 가지 일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이나 지금은 상고할 수가 없다.

夫出晝而王不予追也 予然後浩然有歸志 予 雖然 豈舍王哉 王由足用爲善 王如用予 則豈徒齊民安 天下之民 擧安 王庶幾改之 予日望之

그러나 주 땅을 벗어나도 왕께서 나를 쫓아오지 않으시기에 내가 그런 뒤에야 담담하게 떠날 뜻을 두었네. 내 그렇다 하나 어찌 왕을 저버리겠는가? 왕께서는 오히려 충분히 선(善)을 행하실 수 있으니, 왕께서 만일 나를 등용하신다면 어찌 제나라 백성만 편안해질 뿐이겠는가? 천하의 백성이 모두 편안해질 것일세. 왕께서 행여 마음을 고치시기를 나는 날마다 바라네.

<集註>

浩然 如水之流不可止也

‘호연(浩然)’은 물의 흐름이 그칠 수 없는 것과 같음이다.

楊氏曰 齊王 天資朴實 如好勇, 好貨, 好色, 好世俗之樂 皆以直告而不隱於孟子

양씨가 말하기를 제나라 왕의 하늘에서 물려받은 자질은 질박하고 성실하여, 용기를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고, 색을 좋아하고, 세속의 즐거움을 좋아한다고 맹자에게 솔직하게 고하고 숨기지 않았다.

故 足以爲善 若乃其心不然 而謬爲大言以欺人 是人 終不可與入堯舜之道矣 何善之能爲

그러므로 충분히 선을 행할 수 있다. 만약 그 마음이 그렇지 않으면서 거짓으로 큰소리 치고 사람을 속인다면 그 사람은 끝내 요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가 없으니 어찌 능히 선을 행할 수 있겠는가.

予豈若是小丈夫然哉 諫於其君而不受 則怒 悻悻然見於其面 去則窮日之力而後 宿哉

내가 어찌 소장부(小丈夫)처럼 임금에게 간하다가 임금이 받아주지 않으면, 노하여 얼굴에 노기를 나타내어 떠나면 하루에 힘닿는 데까지 간 뒤에야 머물겠는가?”

*행(悻): 성낼 행.

<集註>

悻悻 怒意也 窮 盡也

‘悻悻’은 노하다는 뜻이다. ‘窮’은 다함이다.

尹士 聞之曰 士 誠小人也

윤사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나는 진실로 소인(小人)이다.”

<集註>

此章 見聖賢行道 濟時汲汲之本心 愛君澤民惓惓之餘意

이 장은 성현이 도를 행하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급급한 본심과 군주를 사랑하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려는 나머지 뜻을 보여준다.

李氏曰 於此 見君子憂則違之之情 而荷蕢者所以爲果也

이씨가 말하기를 여기에서 군자가 근심스러우면서 떠나가는 심정을 볼 수 있으니, 이 때문에 삼태기 멘 자의 과단함이 되는 것이다.

13. 孟子 去齊 充虞 路問曰 夫子 若有不豫色然 前日 虞 聞諸夫子 曰 君子 不怨天 不尤人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실 때에 충우(充虞)가 가는 도중에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 있으신 듯합니다. 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자하니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集註>

路問 於路中問也 豫 悅也 尤 過也 此二句 實孔子之言 蓋孟子嘗稱之以敎人耳

‘路問’은 路中에 물은 것이다. 豫는 기뻐함이다. 尤는 허물함이다. 이 두 句는 실로 공자님의 말씀이니, 맹자께서 일찍이 칭하여 사람을 가르치신 듯하다.

曰 彼一時 此一時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네.”

<集註>

彼 前日 此 今日

‘彼는 지난날이고, 此는 지금이다.’

五百年 必有王者興 其間 必有名世者

500년마다 반드시 왕업(王業)을 이루는 자가 나오는데, 그 사이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자가 있네.

<集註>

自堯舜至湯 自湯至文武 皆五百餘年而聖人出

요순부터 탕왕에 이르기까지와 탕왕으로부터 문왕, 무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5백 여 년 만에 성인이 나왔다.

名世 謂其人德業聞望 可名於一世者 爲之輔佐 若皐陶, 稷, 契, 伊尹, 萊朱, 太公望, 散宜生之屬

명세는 덕업과 명성이 한 세대에 이름날만한 자가 그를 보좌함을 칭하는 것이다. 고요, 후직, 이윤, 래주, 태공망, 산의생 같은 등속이다.

由周而來 七百有餘歲矣 以其數則過矣 以其時考之則可矣

주나라 이래로 7백여 년이 되었으니, 그 수는 이미 지났는데 시대를 고찰해보면 지금이 기하다.

<集註>

周 謂文武之間 數 謂五百年之期 時 謂亂極思治 可以有爲之日 於是而不得一有所爲 此孟子所以不能無不豫也

주는 문왕과 무왕 사이를 이른다. 數는 오백년의 시기를 이른다. 時는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하여 다스려질 것을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때를 말함이다. 이러한 때에 할 바를 조금도 하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맹자께서 기뻐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夫天 未欲平治天下也 如欲平治天下 當今之世 舍我 其誰也 吾何爲不豫哉

하늘이 아직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으니, 만일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려 한다면 지금 세상에 나를 버리고 그 누구이겠는가?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지 않겠는가?”

<集註>

言 當此之時 而使我不遇於齊 是天未欲平治天下也 然 天意 未可知 而其具又在我 我何爲不豫哉

‘이때를 당하여 나로 하여금 제나라에서 뜻이 합하지 못하게 하니, 이는 하늘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으시니, 그러나 하늘의 뜻은 알 수가 없고, 그 도구는 나에게 있으니, 내 어찌하여 기뻐하지 않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然則孟子雖若有不豫然者 而實未嘗不豫也

그러나 맹자께서 비록 기뻐하지 않은듯하였으나 실제로는 기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蓋聖賢憂世之志 樂天之誠 有並行而不悖者 於此見矣

성현이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과 천리를 즐거워하는 정성이 병행하여 어긋나지 않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14. 孟子 去齊居休 公孫丑 問曰 仕而不受祿 古之道乎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 추(鄒)나라로 가시면서 휴(休) 땅에 머무셨는데, 공손추가 여쭈었다. “벼슬하면서 녹봉을 받지 않는 것이 옛날의 도리입니까?”

<集註>

休 地名

‘休’는 지명이다.

曰 非也 於崇 吾 得見王 退而有去志 不欲變 故 不受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숭(崇) 땅에서 내가 왕을 만나 뵙고 물러 나오면서 곧 떠날 생각이 있었으니, 이 마음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녹봉을 받지 않은 것이네.

<集註>

崇 亦地名 孟子始見齊王 必有所不合 故 有去志 變 謂變其去志

崇은 또한 지명이다. 맹자께서 처음 제왕을 만나보셨을 적에 반드시 합하지 않은 바가 있어서 떠날 마음을 두셨을 것이다. 變은 떠날 마음으로 바꿈을 이른 것이다.

繼而有師命 不可以請 久於齊 非我志也

계속해서 군대의 출동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떠나가겠다고 청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제나라에 오랫동안 머문 것은 나의 본의(本意)가 아니었네.”

<集註>

師命 師旅之命也 國旣被兵 難請去也

‘師命’은 군대의 명령이다. 국가가 이미 병난을 입었으니 떠나겠다고 청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 孔氏曰 仕而受祿 禮也 不受齊祿 義也 義之所在 禮有時而變 公孫丑欲以一端裁之 不亦誤乎

공씨가 말하기를 벼슬을 해서 녹을 받는 것은 예이다. 제나라의 녹봉을 받지 않는 것은 義 이다. 義가 있는 곳에서 禮는 변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공손추가 한가지로 재단하려고 했으니 그것이 잘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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