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 격몽복습 > 등문공장구 상 1장 ~ 2장

작성자
지현
작성일
2019-08-23 19:15
조회
184
  1. 滕文公 爲世子 將之楚 過宋而見孟子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세자(世子)였을 때에 초(楚)나라로 가는 길에 송(宋)나라를 지나다 맹자를 뵈었다.

孟子 道性善 言必稱堯舜

맹자께서 사람의 본성이 선(善)함을 말씀하셨는데, 그때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예로 들었다.

世子 自楚反 復見孟子 孟子 曰 世子 疑吾言乎 夫道 一而已矣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맹자를 뵙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십니까? 도(道)는 하나일 뿐입니다.

成覵 謂齊景公曰 彼丈夫也 我丈夫也 吾何畏彼哉 顔淵 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 亦若是 公明儀 曰 文王 我師也 周公 豈欺我哉

성간(成覵)이 제(齊)나라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저 성현(聖賢)도 장부(丈夫)이고 저도 장부이니, 제가 어찌 저 성현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였으며,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임금은 어떠한 분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하는 자는 이 순임금과 같아질 수 있다.’ 하였으며, 노나라의 현인(賢人) 공명의(公明儀)는 말하기를 ‘주공(周公)께서 「문왕(文王)께서는 나의 스승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하였습니다.

今滕 絶長補短 將五十里也 猶可以爲善國 書 曰 若藥 不瞑眩 厥疾 不瘳

이제 등나라는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을 보충하면 거의 50리가 되지만 그래도 선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약이 독하여 정신이 어지럽지 않으면 그 병이 낫지 않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2. 滕定公 薨 世子 謂然友曰 昔者 孟子 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今也不幸 至於大故 吾欲使子 問於孟子 然後 行事

등나라 정공(定公)이 죽자, 세자가 연우(然友)에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맹자께서 일찍이 저와 함께 송나라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제 마음에 끝내 잊히지 않습니다. 이제 불행히도 상(喪)을 당하였으니, 제가 사부를 시켜 맹자에게 물은 뒤에 장례를 치르고자 합니다.”

然友之鄒 問於孟子 孟子 曰 不亦善乎 親喪 固所自盡也 曾子 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諸侯之禮 吾未之學也 雖然 吾 嘗聞之矣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 共之

연우가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묻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지 않습니까? 부모상은 진실로 스스로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섬기기를 예(禮)로써 하며,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하기를 예로써 하고 제사하기를 예로써 하면 효(孝)라고 이를 수 있다.’ 하셨습니다. 제후(諸侯)의 예는 제가 아직 배운 적이 없으나 제가 일찍이 들은 적이 있으니, 3년 상에 거친 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미음과 죽을 먹는 것은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하․은․주 삼대(三代)가 공통이었습니다.”

然友 反命 定爲三年之喪 父兄百官 皆不欲曰 吾宗國魯先君 莫之行 吾先君 亦莫之行也 至於子之身而反之 不可 且志 曰 喪祭 從先祖 曰 吾有所受之也

연우가 돌아와 보고하여 3년 상을 하기로 정하자, 종친(宗親)과 백관(百官)이 모두 반대하면서 말하였다. “우리의 종주국인 노(魯)나라 선군(先君)께서도 3년상을 행하지 않으셨고, 우리 선군께서도 행하지 않으셨으니, 임금의 대(代)에 이르러 이것을 뒤집는 것은 불가합니다. 또 옛 기록에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는 선조를 따른다.’고 하였으니, 이는 우리들이 전수받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謂然友曰 吾 他日 未嘗學問 好馳馬試劍 今也 父兄百官 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 子 爲我問孟子 然友 復之鄒 問孟子 孟子 曰 然 不可以他求者也 孔子 曰 君薨 聽於冢宰 歠粥 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 必偃 是在世子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였다. “제가 지난날에 일찍이 학문은 하지 않고 말 달리기와 칼 쓰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지금 종친들과 백관들이 저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으니, 대사(大事)에 예를 다하지 못할까 염려스럽습니다. 사부는 저를 위하여 맹자에게 다시 물어보십시오.” 연우가 다시 추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묻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데서 방법을 찾을 것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죽으면 총재에게 명령을 듣는다. 그리하여 세자가 죽을 먹고 얼굴이 짙은 흑색이 되어 상주(喪主) 자리에 나아가 곡을 하면, 백관과 담당관리들이 감히 슬퍼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세자가 앞서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은 그것을 좇아 반드시 그보다 더 심하게 좋아하는 법이다.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으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일은 세자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然友 反命 世子 曰 然 是誠在我 五月居廬 未有命戒 百官族人 可謂曰知 及至葬 四方 來觀之 顔色之戚 哭泣之哀 弔者 大悅

연우가 보고하자, 세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은 실로 저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는 5개월 동안 여막(廬幕)에 거처하고 명령과 경계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백관과 종친들이 다 말하였다. “세자께서 예(禮)를 아신다.” 장례 때에 이르러 사방에서 와서 구경하였는데, 세자가 얼굴빛을 슬프게 하고 울기를 애처롭게 하자, 조문 온 자들이 크게 흡족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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