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1.29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01-12 16:38
조회
158
200129 니나노 공지

 

<고담의 풍격을 배척한다>를 끝냈습니다. 안고는 시종일관 ‘육체의 고뇌’를 신경쓰지 않는/않으려 하는 ‘고담의 풍격’을 비판합니다. 이때 ‘고담의 풍격’이란 단지 위선이라든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허세와는 좀 다릅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다!’라고 선수를 치는(?) 풍격이랄까요. 안고가 비판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도쿠다 슈세이의 <여행 일기> 같은 경우 그런 모습이 잘 드러냅니다. 당대 자연주의 작가 중 한 명인 그는 <여행 일기>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씁니다. 나이로 치면 딸이나 다름없는 애인을 데려와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질투하고, 또 그것을 돌이켜 수치심 모르는 짓을 했다고 술회하지요. 어떻게 보면 나이 지긋한 남자답지 않게 자신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는 멋진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고는 그런 ‘솔직함’이야말로 고담의 풍격이며 가장 비겁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함으로써 더 깊은 심연까지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작품이 기록하고 있는 일들이 특별히 인생의 깊은 지점일 리도 없고 더욱이 나이 지긋한 주인공이 얼굴을 붉힌 채 들어온, 딸뻘의 정인에게 술을 마시고 왔겠거니 하고 느닷없이 사람들 면전에서 정색하고 문책하는 그런 고백적이고 가식 없는 태도가 특별히 인생의 농후함을 보여줄 리도 없다. 오히려 고백의 끈질김과 집요함이 부족하다. 아니 양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딸뻘의 연인을 가진 것, 조카가 권유하는 대로 도쿄에서 연인을 부른 것, 좀 질투한 것, 그러한 일들이 언듯 보면 장식 없이 거짓 없이 숨김 없이 쓰여 있다. 하지만 장식 없고 거짓 없고 숨김 없는 까닭에서인지, 맨몸으로 광명을 찾으며 방황하는 고난의 수행자의 모습은 조금도 없다. 뿐만 아니라 장식 없고 거짓 없는 까닭에 구원받아 안도한 고요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고뇌해야 할 것을 고뇌하지 않는 자의 지독함만 있을 뿐으로, 자신의 행위를 모두 당연시하고 긍정하며 마찬가지로 타인의 것도 긍정하여 이로써 타인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긍정하도록 만든다. 긍정이라는 교묘한 약속을 암암리에 강요함으로써 상처와 고통을 입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내성(內省(과 비판조차 새파랗고 미숙한 것으로 생각하려 한다. <여행 일기> 한 편의 저변에 작동하는 도쿠다 씨의 작가적 태도란 이 이상 다른 것이 아니다.

 
“장식 없이, 거짓 없이, 숨김 없이”는 일본 문학 사조 중 하나인 ‘자연주의’의 표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가장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사조인 것이죠. 그런데 안고는 단지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문학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문학은 고뇌해야 할 것을 계속해서 파고들어가 “자신의 속내를 잡음 없이 듣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요. 사실 우리가 아무리 ‘있는 그대로’ 자신의 행위와 심정을 서술한다고 해도 사실 서술하는 것은 이미 무수한 외부 시선이 개입되어 선별된 결과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무수한 ‘솔직함’이라는 상을 헤쳐나가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것에도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안고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사리분별을 잘하기 때문에 갑자기 타인을 배려하고 욕심이 없어진다는 등으로 생각이 모이는 것은 신용할 수 없다. 인간은 살아있기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신체라고는 타고난 것 하나인 이상, 고작 자기 한 사람을 위해서 욕심을 내는 삶의 방식을 취해야 한다. 지독하리만치 철두철미한 에고이즘이 아니라면 훌륭한 것이 만들어지기나 할까? 사회조직의 변혁도 철저한 에고이즘을 토대로 하지 않는 한 결국 적당적당한 것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든 혼자다. 자신의 목소리를 공허한 이상과 사회적 관심 같은 것을 가리는 방해물로 치부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 제대로 구분해 들어야 한다. 자신의 속내를 잡음 없이 듣는 것조차 오늘날 우리에게는 매우 지난한 일이다. 일본의 선배 중 이 고난의 길을 관통하며 걸어간 사람은 에도시대 작가 사이가쿠 외 나는 알지 못한다.

 
1.15, 1.22는 각각 한정샘 사정으로, 설 연휴 관계로 쉽니다.
1.29 9시 30분부터 시작해 오후 3시 반까지 달립니다~

 

다음 과제 첨부파일에 올려 드립니다~

 

그럼 수요일에 만나요.
전체 1

  • 2020-01-14 22:07
    안고 읽기는 늘 세심함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먼저 질문하지 않는 인과에 대한 고민도 허세라고 말한뿐입니다. 진정한 풍격은 자신과의 치열한 사투없이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