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4.1 니나노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03-21 16:11
조회
142
<나는 누구> 끝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사카구치 안고가 글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글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사실 '무뢰파'라고 한다면 어쩐지 술이나 마시고 작품은 격렬한 것 몇 개...뭐 이런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멀쩡한(?) 글을 아주 많이 남겼던 것이죠.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솔직합니다. <청춘론>에서 계속 이어져 온 것처럼 어떤 미사여구로 자신이 하는 행위를 꾸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은 자기 자신을 고찰하는 <나는 누구>에도 드러나죠. 안고는 글쓰기를 그 자체로 생활이라고 합니다. 생활은 안고의 주제라고 할 수 있지요. 누가 시켜서, 가르쳐줘서,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윤리 그 자체.

안고는 <나는 누구>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나는 나를 모른다'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 전에 생활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밝힙니다. 내가 누구인지, 실재하기는 하는지 모른다, 실재한다면 내가 쓴 글밖에 없다고요. 이런 태도는 '언젠가 누군가 알아주겠지' 같은 태도와는 다릅니다. 안고는 '언젠가 대예술가가 될 자신'을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는 스스로의 그림자를 서성이며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런 서성거리며 쓴 것이 전부이고 그 외 다른 것을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안고의 글을 보며 어떤 망상도 섞이지 않는 자기긍정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구 뱉어내듯 써대면서도 자기 '자신'이라고 할만한 것을 계속 쳐내며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나는 쓴다. '아아, 그런 내가 있었던가?' 하면서. 나는 딱히 나를 발견하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편집자가 기뻐할만한 재밌는 소설을 쓰자고 다짐할 때도 있다. 아무래도 좋다, 그냥 써보자, 이판사판이다 할 때도 있다. 그때, 바로 그때 아무렇게나 이런저런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하기와 쓰기는 다르다. 쓰기는 그 자체가 생활이다. 스탕달 선생은 "읽고, 쓰고, 사랑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쓰고, 사랑했다." 읽기도 생각하기도 쓰기의 부차적인 것이다. 어쩌면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다. 나는 정말 확실하게 사랑했던가? 어쨌든 내가 오로지 했던 일은 쓰기 뿐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죄다 되는대로 마구 써댔다. 정말 마구 쓴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쓸 때는 쓰기만이 생활의 전부였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역시 쓰기는 재밌고, 그 자체로 쾌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쾌락은 불안한 것이고 항상 사람을 배신하는 것인데(왜냐하면 쾌락만큼 사람을 공상에 빠지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쓰기에 배신당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힘이 부족해, 쓸 수 없어, 이런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썼다. 썼기 때문에 쓴 것이 실재하고, 쓰지 않으면 실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구별만이, 그 구별에서 나의 생활이 실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

왜 나는 써야 하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모두 진실 같기도 거짓 같기도 하다. 지식도 자유도 불안하기만 한 것들이다. 모두 그림자 같다. 내 안의 나 자신의 '실재'적인 안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나를 긍정하는 것이 전부이며, 그것은 즉 스스로를 내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의미이다.




<에고이즘 소론> 강독을 위해 2주 정도 더 세미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다음주는 한정샘 사정으로 쉬고, 4월 1일에 만나요//


전체 1

  • 2020-03-24 07:42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저 문학자로써 두려움 속에서도 오직 쓰기만 했다는 안고. 그게 안고이죠.
    구절 구절이 살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안고를 만나게 되다니 너무나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