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카프카 3월 8일 공지~

작성자
손지은
작성일
2018-02-22 20:59
조회
138

이번 시간은 <유형지에서>와 장편 3부작에 나오는 k들을 심층탐구했습니다. 아주 실한 토론이었는데 강석샘과 승희샘이 함께하지 못해 넘나 아쉬워요. 부족하지만 메모한 걸 중심으로 최대한 충실히 적어볼게요.


# k가 나오기까지- 카프카의 실험들

카프카가 유고로 남긴 미완의 세 장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k라는 글자가 들어갑니다. <실종자>의 카를로스만, <소송>의 요제프k, <성>의 측량사 k. 세 작품을 따로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작품이 쓰여진 순서에 따라 놓고 보니카프카가 k라는 인물을 탄생시키기까지 여러 실험을 했다는걸 알 수 있었어요. 카프카Kafka도 k라는 이니셜을 쓴다는 게 의미심장하죠ㅋ 먼저 작품이 쓰여진 순서를 보면서 카프카의 실험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볼까요.


<실종자(1912)> - <소송(1914)> - <유형지에서(1914)> - <성(1922)> - <<어느단식광대(1924)>>


카프카의 초기작품들은 <변신>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 1912년 <실종자>를 구상하면서부터 주인공 중심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선민샘은 이때쯤 k라는 형태로 여러 실험이 시작된거 같다 하셨어요. <실종자>와 <소송>만 해도 완전 다른 소설 같은게 있죠. <실종자>는 지명이나 인명도 분명하고 사실적 장면이 많이 나오는 반면 <소송>으로 오면 역사적 시간은 완전히 자취를 감춥니다. 이런 실험은 <실종자> 내부에서도 이루어지는데, 주인공은 카를로스만이라는 고유명을 떠나서 니그로라는 보통명사로 가면서 이야기는 마무를 짓죠. <성>으로 가면 출신, 직업, 친인척 관계는 삭제되고 인물의 성격이나 취향이 사건의 변수가 되지도 않습니다. <성>에서 k는 어느정도 익명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죠.


# 닮은꼴, 장교와 요제프k

무지 흥미로웠던건 <유형지에서>의 장교가 <소송>의 요제프k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점이었어요. 카프카는 <소송>을 집필하던 중 <유형지에서>를 썼습니다. (둘 다 1914년에 쓰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 <유형지에서>의 장교를 살펴보면, 그는 법을 궁금해하고 연구하는 존재입니다. 장교가 탐험가에게 처형기계에 대해 설명하는 말들을 보면, 뒤로 갈수록 점차 사법적인 언어가 강화되고 말하면서 스스로 초월적인 위치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법을 알고자 하는 욕망, 그것은 종국에 법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앎이 그 사람을 주조한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지요.

그런 점에서 요제프k는 장교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k는법이 뭐냐고 물었던 사람입니다.그는 소송을 당하고부터 법이라는 세계에 눈뜨고, 법에 대해 질문하고, 법을 알아가는 데 온 시간을 바치죠. 또 k는 법정에서 내리는 판결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소송장을 쓰면서 자기입법자가 되려고 하지요. 헌데 그것은 그를 법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법과 체화된 인간이 되게 합니다. 마치 근대성을 비판하는 자가 오히려 누구보다 근대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주어진 관념 안에서 법을 상대로 다른 방식의 법을 만들어 ‘법과 체화된다’는 점에서 장교와 다르지 않은겁니다.


# 자신이 제도를 작동시키며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자

<소송>에서 <성>으로 가면서 카프카는 장교의 모델을 발전시키지 않고 k를 만들어냅니다. k, 그는 법과 관계하는 방식에 있어 요제프k와는 다른 길을 보여주는 자입니다. 일단 k는 소송당해서가 아닌, 제발로 마을에 걸어들어온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제도를 파괴하거나(유형지), 자신의 법을 세우는(소송)게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으로써 제도 안에서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는가가 문제인 듯 합니다. k는 프리다와 결혼도 하고 고개를 돌려 이웃들이 사는 모습을 봅니다. 마치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듯이. 무대 위에서는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죠.

<유형지에서> 장교가 제도와 하나가 되어 자폭하고, 탐험가가 그 섬을 떠난 것과는 다르게 <성>에서 k는 제도를 부술 생각도, 떠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도 않습니다. 이건 제도에 반하는 것도 아니지만, 제도를 수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을사람 뿐 아니라 자신 또한 제도화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하기에, 제도와 관계의 문법을 다르게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실험이 아닐까요?


# 삶에 대한 다른 독법의 발명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을 살펴보면 부모자식, 스승제자, 친구, 연인과의 관계에도 암묵적인 방식으로 관계가 규정되는걸 이따금 느끼곤 하지요. 우리는 누구나 다 제도의 그물을 통과해 어떤식으로든 법을 작동시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투, 행동, 사고방식, 옷차림, 에티튜드 등으로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제도를 표현하면서 제도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헌데k는 만남의 방식이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매번 다른 방식으로 관계가 달라지지요. 물론 제도의 운동성은 낯선 것을 포섭하여 다시금 제도화시키고 또 포섭해서 제도화시키려 합니다. 이런 제도화의 운동 속에서도 ‘남편답게’ ‘친구답게’ 이웃답게’ 등의 표상에 갇히지 않고, 관계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시점으로 펼쳐지지 않을까요.

세계는 주어진 게 없습니다. <만리장성의 축조>는 세계가 온통 구멍 투성이고 뒤죽박죽이라는걸 잘 보여주지요. 제도라고 믿어온 것은 구멍 투성이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으며, 변할 가능성이 많은 허술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멍뚫린 벽을 막아서 자신의 위치에 안주하려고 하지요. 모두 각자 자기 방식의 제도에 걸려서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그걸 개성 혹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시선을 돌린다는건 자신이 그렇게 제도에 의해 조각되어 사는 것을 ‘인식’하는 것일거예요. 그건 제도를 뒤엎는 것도, 제도를 수용하는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어떤 제도도 나를 완전히 가둘 수 없음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선을 돌리면 보이는 것은 ‘역할’일 뿐 고정된 무엇이 아닐 거예요. 그저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역할을 볼 뿐. 답이 뭔지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담담하고, 또 일상이 낯설게 차이나는 것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삶에 대한 다른 독법을 발명하는 일, 그것이 <성>에서k가 보여준 것인듯 합니다.


- 다음주에 읽어올 텍스트 : <변신>, <어느 단식광대> 단편집(첫번째 시련, 작은 여인, 어느 단식광대, 요제피네)

다음시간에는 k에서 또 한번의 도약이 있어요. 바로 카프카 말년의 작품인 <어느 단식광대> 단편집입니다. 이 단편집은 ‘예술’이라는 테마로 묶인 것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고쳤다는 <단식광대>부터 무대 위에 선 예술가들이 줄줄이 출현합니다.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요. 인간이라는 굴레를 넘어가기 위해 예술이 무엇을 하는지, 예술이 어떻게 인간으로 주조된 일상을 넘어가는 방법이 되는지를 숙고해서 글로 써오시면 되어요.

오늘 선민샘이 강조하신 것처럼, 글을 쓴다는건 내가 아는걸 쓰는 게 아니라고 해요. 카프카의 말처럼 나를 박살내주는ㅋ 책을 읽고 다르게 볼 수 있는 순간을 잠깐이나마 얻는 것처럼, 쓰면서 그 순간 모르겠는 세계를 경험해보는거죠. 두려움 갖지 마시고 망하더라도 망했다!ㅋ는걸 확인하기 위해 뭐든 즐겁게 써서 담 시간에 각자의 여행담을 공유해보아요.


앗참! 다음주는 3·1절이라 휴강입니다.

이번시간 후기는 지니샘
다음시간 간식은 지니샘, 후기는 강석샘~

오늘 진심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나영샘의 질문도, 윤영의 글에서 느껴지는 깎이지 않음(?)도 넘 좋았구요. 고럼 여행 찐하게 하시고 다음시간에 만나요 ^ㅇ^
전체 2

  • 2018-02-24 21:51
    제가 모르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아서 질문이 자꾸 늘어가죠. 아무말대잔치인 글이었지만 뭐라도 쓰니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훨씬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주 카프카 세미나는 여운이 많이 남더라고요.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속에선 몽글몽글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었어요. 다들 기다려 주셔서 고맙고 고민할 문제를 안겨 주셔서 또 고맙습니다.^^

    • 2018-02-24 23:56
      단 한걸음! 새로운 골목길을 펼쳐낸 당신께 박수를 보냅니다. ^^ '길이란 절대로 주어져 있지 않다. 걸어라! 네 걸음으로 세상의 풍경을 펼쳐라!' 바로 이것이 카프카가 보낸 '오래된 메세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