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2월 22일 카프카 세미나 후기

작성자
gini
작성일
2018-02-24 20:29
조회
165
K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 ‘K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성]의 주인공인 K, 그의 직업은 측량사다. 그러나 작품 어디에서도 K는 측량을,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측량을 하지 않는다. K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따라서 측량사에 대한 다른 개념-카프카적 개념일-을 찾는 문제이고, 나아가 그러한 측량사가 측량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가능하다면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늦은 밤 성이 있는 마을로 K가 찾아들면서 시작되는 『성』은 마치 ‘K가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가 실현되는 것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이야기가 계속된다. 카프카의 여느 작품처럼 주인공 K는 돌연 죽지도 않기에 이야기는 끝날 수가 없고 그래서인가 『성』은 끝나지 않은 미완성이다. 여기서 측량과 측량사에 대한 어떤 힌트를 찾기는 어려웠다.

 

K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라고 [성]과 함께 제시된 책들이 [소송], [신임변호사], [변호사], [유형지에서]이다. 우리들 중 몇몇은 ‘유형지’를 ‘성’의 축소판이라고 보는데 동의하는 것 같다.(이번 학기에 처음 카프카세미나를 함께한 ‘윤영’은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유형지’, ‘성’같은 현실을 아주 충분히 느끼고 있는 듯하고) 유형지와 성의 공통점은 원칙이 지배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공간을 유지하는 구성요소들이 있다. ‘지은’이가 발제문에서 구분해주었다. ①원칙을 만들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 신화적 존재, ②원칙을 잘 알고, 내 몸처럼 소중히 여기는 그래서 그 공간을 원칙이 잘 작동되는 공간으로 만드는 존재, ③원칙에 무지한 존재들 그래서 ②의 경우와는 반대의 이유로 원칙의 작동을 돕고 유지시키는 존재다.

 

[성]의 베스트베스트백작이나 [유형지에서]의 전임사령관이 ①에 해당되는 존재다. 성 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②와 ③에 해당될 것이고, [유형지에서]는 장교가 ②에, 죄수와 사병은 ③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②의 장교 같은 부류가 카프카에게는 아주 심각한 연구대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카프카 개인의 아버지이길 넘어서 아버지라는 캐릭터의 문제다. 이 캐릭터는 각자의 위치에서 원칙을 너무도 잘 수행하는 모든 ‘위치들’이다. 우리가 읽은 [신임변호사]는 과거에는 알렉산더라는 영웅의 준마로서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고서에 법전에 고개를 파묻고 연구하는 자로서 자신의 위치값을 준수하고 있다. 각각의 시공간들을 작동시키는 원칙들을 자기 위치에서 성실하게 수행하는 존재들. 카프카에게 모든 ‘이름’들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이름들과 불가분인 역할들, 시대와 공간이 요구하는 그 역할들이 결국 법과 제도가 되어 우리 삶의 원칙들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②의 부류들은 그 역할을 열심과 성실로써 익히고 그 역할과 한 몸이 되어 그 역할로 인해 즐거이 죽을 수도 있는 자들이다. 역사 속 모든 영웅들은 그런 부류가 아닌가.

 

이 세 구분에 포함되지 않는 예외적인 존재가 「유형지에서」의 탐험가와, K다. 둘은 원칙이 지배하는 공간을 기준으로 바라볼 때 같은 부류, 원칙을 타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원칙에 무심하다. 원칙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 그러나 무지자(③)와는 아니다. 원칙들을 세세히 알려고 하는 ②의 부류와도 다르다. 이들은 다만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만 느끼고 있다. 자신을 불편하게 감싸고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거미줄 같은 그 무엇을 그들은 감각한다. 탐험가는 유형지에서 처형과정을 본다. 탐험가는 그런 방식의 처형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원칙들이 유형지를 지배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인식할 뿐, 그 이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탐험가는 처형에 간섭하지 않는다. 어차피 몰락할 것이라면 자신이 아니어도 몰락할 거라는 것이 탐험가의 생각이었고, 그것은 ‘일개인이 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소송?)’는 카프카의 일관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탐험가는 유형지의 원칙에 개입하기를 거부했고, K는 성의 원칙이 있다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탐험 후 탐험지(유형지)를 빠져나오는 것이 탐험가의 본령일 것이다. 탐험가는 유형지와 유형지를 떠도는 방랑자로서의 삶을, 하나의 원칙에 매몰된 삶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 마을에 살기로 한 K는 계속 성에 도달하려고 한다. ‘성에 도달할 수 없음’이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이면 모두가 다 아는 원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K는 그 원칙을 학습하지 않는다. (보영의 발제처럼) K는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측량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K가 측량하는 것은 주어진 것, 확실한 것, 원칙이 있는 곳이 아니다. K는 원칙들이 작동하는 사이사이, 원칙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원칙 때문이지만 원칙을 벗어나는 미세한 효과들, 원칙의 그림자들이랄 수 있는 어둡고 작은 길들, 골목길들을 그린다. K는 공간들을 넘나드는 탐험가와 달리 하나의 유형지 내에서 탐험가로 사는 방법을 보여준다.
전체 5

  • 2018-02-25 00:02
    카프카의 세계에서'탐험'과 '측량'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지? 아직 더 논의해야 할 장면들이 많습니다.
    측량사로서 도처의 벽들을 응시하던 K가 어째서 '단식 광대'같은 '예술가'로 변신하는 걸까요? 그 점도 풀어보고 싶습니다. <성>의 마지막에 나오는 K의 관찰씬과 함께 <단식광대>를 읽어보면 어떻까요? 다음주도 완전 흥미진진입니다. ^^

  • 2018-02-25 13:33
    오오 지니샘의 말로 정리된 후기를 보니 또 새롭네요~ 원칙들이 작동하는 그 사이사이에서 발견되는 원칙들을 벗어나는 효과들! 선민샘이 여기에도 깨알같은 힌트를 흘리고 가셨군요ㅋ k에서 예술로의 비약은 또 무엇일까나. 킁킁 토론이 기대기대됩니당

  • 2018-02-28 08:37
    K. 누구인가? 저는 투쟁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무엇과 투쟁하냐구요. "알수 없는 법"이지요. 법은 인식되지 않은 것, 자신의 몸에 새겨지더라도 그 자신은 그것을 결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성처럼 점령하여야 할 대상이나 끝내 점령은 커녕 다가갈 수조차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카프카를 읽는데 그 결말은 허무가 짙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늦깍이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는 준엄한 하느님의 명령에 그대로 복종하였듯이 아버지의 선고-명령 한마디에 죽음으로 망설임없이 내던져야 하는 실존의 무기력함입니다. 그 무기력함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기를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구원이, 부활이 있는 것인가. 어디에서 이승이 아닌 곳에서. 투쟁하는 인간 K여, 절망을 .... .

    • 2018-02-28 11:02
      강석 선생님 안계셔서 엄청 서운했었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그런데 저는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 카프카와 매번 만나고 있답니다. 이번주에는 강석 선생님과 제가 서로를 넘어서기 위한 투쟁을 하게 될 것 같네요. 오호호! 기대기대!!

      • 2018-03-02 07:49
        절망하지 않는 카프카! 감사합니다.